[최영미의 어떤 시] [4] 낙타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1935- )
절창이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시. 처음 잡지에 실린 ‘낙타'를 읽을 때 마흔 무렵의 나는 “모래만 보고 살다가”에 꽂혔다. 보지 않는 듯하면서 다 보고 계셨구나. 십수 년이 지나 다시 시를 읽는데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이 가슴에 박혔다. 어려운 말 하나 쓰지 않고 깊은 곳을 찌르는 언어. 어떤 경지에 오른 시인만이 그런 거룩한 살인을 할 수 있다.
1990년대, 마포와 인사동 언저리에서 신경림 선생님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언성을 높여 누군가와 다투는 선생님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늘 허허 웃으며 옆에 앞에 뒤에 사람과도 잘 지내시는,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문 분이었다.
시집 ‘돼지들에게'를 펴내며 신경림 선생님에게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세대는 다르나 내 시를 편견 없이 봐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추천사를 주신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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