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좋은 중소기업을 찾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2021. 1.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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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린 콘텐츠로 회자된 것은 웹드라마 <좋좋소>입니다. 열악한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경험과 제보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알려온 ‘중낳괴(중소기업이 낳은 괴물)’ 이과장 채널에서 새로 선보인 이 드라마를 총감독한 분은 여행 유튜버로 유명한 ‘빠니보틀’님입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고”를 기치로 오지와 험지를 여행해 총 조회수 1억을 넘긴 유튜버가 코로나 시대, 이 땅의 오지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오피스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첫편은 “실제 사연을 각색한 내용입니다”라는 쉰들러 리스트급의 비장함으로 시작합니다. 당일 전화로 면접을 오라해 가본 회사에는 면접자가 올 것을 아는 사람도 제대로 없습니다. 사무실 한쪽 소파에서 시작한 면접은 취업 준비가 덜 된 지원자와 아예 면접을 볼 준비조차 안 한 면접관들 사이의 아무말 대잔치로 점철됩니다. 면접 중간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던 사장님이 이력서에 노래가 취미라는 것을 발견하고 면접자에게 노래를 시킵니다. 과장님이 전깃불을 껐다 켜며 만든 수동 사이키 조명 아래 무반주 열창이 끝나자 바로 ‘산지직송 합격통보’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tvN의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속 짠한 내용조차 낭만적으로 보일 만큼 열악한 작은 기업의 현실 고발이 촘촘히 쌓여 만들어진 이 웰메이드 드라마는 ‘웃픈’ 우리네 일상을 이스터 에그처럼 심어놓았습니다. 누가 잔뜩 입다 퇴사한 듯한 조끼를 입고 사무실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며 컴퓨터 화면에는 소프트웨어가 정품인증이 되지 않았다는 경고문이 뜨고, 신입은 컴퓨터조차 없어 집에서 쓰는 기계를 당분간 가져오라 하는 이야기까지 부조리한 일화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들이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열악한 중소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깨알같이 고증해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디테일이 살아있어 “<미생>이 판타지라면 <좋좋소>는 다큐”라는 반응이 나오며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직장인 커뮤니티부터 대학생들의 게시판에 이르기까지 온통 토론에 불이 붙습니다. 고교시절 웹툰 <복학왕>을 보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좋좋소>를 보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 준비를 더욱 가열차게 하겠다는 각오들이 올라옵니다.

이 드라마가 현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고발하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기차역 앞에서 노숙하는 분들을 보여주며 너도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협박을 하던 예전 부모님의 비정함은 이제 당연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분들의 삶을 바라보며 적어도 나는 그처럼 전락하고 싶지 않다는 위안을 얻는 것 역시 옳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금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듯이 작은 기업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다니고 있는 사람의 인격과 존엄을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게시판을 훑어보다 아래의 문장에서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봉준호의 기생충급이다. 한국 사회의 치부를 극사실주의로 표현한 명작임.” 영화 <기생충>은 우리 시대의 불합리와 결핍을 세계에 공명시켰습니다. 젊고 멋진 상속자 실장님들이 언제나 주인공인 주말과 아침 드라마들보다 사실적이라 호평받은 <미생>보다 더 사실적인 <좋좋소>를 전 국민이 보았으면 합니다. 보고 나서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시절의 부족함은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나간 시절의 잘못됨을 지금도 반복하는 것은 부당함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자신은 큰 기업 출신으로 이 회사를 일구느라 부단히 노력했다는 <좋좋소> 사장님의 공허한 연설을 뒤로하고, 모든 회사의 사람들에게 사장님이 처음 다녔다는 큰 기업에서와 같은 처우를 만들어주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우리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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