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찾은 도시 농업의 미래[Monday DBR]
식재료 사재기가 일어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 기간에도 싱가포르의 수입 식품 가격이 급등했었고, 사재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의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은 채 수입 채널만 다각화했다.
연이은 식량 부족 위기를 겪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싱가포르 정부는 2019년 3월 자국 내 생산을 통한 식품 공급을 2030년 현재의 10%에서 30%까지 확대하겠다는 ‘30 by 30’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자국내 식품 생산을 늘리기 위해 관련 연구개발에 1억4400만 싱가포르달러(약 1200억 원), 농업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도입 지원에 6300만 싱가포르달러(약 524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싱가포르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국토 면적이 서울시의 약 1.2배 크기이며 이 중 농업용 부지가 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런 식품 수급 불안정과 토지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전통적인 농업의 여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 농장’이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아치센(Archisen)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농업 테크 스타트업이다. 실내에 수직으로 설치된 플랫폼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아치센은 현재 연간 100t 정도의 신선한 채소를 공급한다. 아치센 창업자들은 도시 국가의 토지와 노동력이 매우 비싸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실내에서 채소나 곡물을 재배하는 수직 농장이 해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싱가포르 사람들이 자주 구매하는 50종의 작물에 집중하는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아치센은 기존 농장보다 같은 면적당 40배 높은 수확량을 거두면서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목표는 연간 5000t 생산이다. 현재 주 고객은 대형 마트와 온라인 신선 식품 플랫폼이다.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에도 납품한다.
싱가포르의 고질적인 식량 자급률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투수로 떠오른 이 회사의 전략은 크게 2단계다.
첫째,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고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한다. 6년 전 사업 초기부터 전용 연구개발 시설을 운영하면서 재배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고, 작물의 성장 단계(발아, 생장, 과실 단계)에 맞는 조명의 세기와 습도, 온도 등을 각종 센서를 통해 실시간 조절할 수 있는 제어 시스템을 갖췄다. 전력 효율이 좋고 수명이 긴 LED 광원을 활용하며, 재배와 수확에 활용할 로봇도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인건비를 50% 이상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선주문 재배 방식으로 물류 비용을 절감했다. 이 회사는 고객사로부터 선주문을 받아 국내에서 재배 및 배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럼으로써 운송, 보관, 재고, 유통 과정에서의 파손 등 물류 비용을 크게 낮춰 해외 수입 농산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또 무농약 재배 표시를 브랜드 홍보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수입 농산물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싱가포르는 정부 차원에서 국가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를 혁신할 만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아치센은 이런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농업 기술을 고도화했다. 농업 테크는 전 세계적으로 미래 산업으로 꼽히는 만큼, 이 분야에서 기회를 탐색하는 한국의 기업과 인재들이라면 도시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싱가포르와 아치센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13호에 실린 ‘기존 농장의 40배 효과…기적을 수확하다’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권혁태 파인벤처스파트너스 대표 hyuktae.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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