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미 군사훈련은 성역 아니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전 국회의원 2021. 1. 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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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한반도 평화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을 신년 기자회견에서 거론했다. 대통령은 “남북 간에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논의하게끔 합의돼 있다”며 “필요하면 남북군사위원회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불완전하게 합의된 한·미의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전략적 도발의 중단이 교환된 암묵적인 모라토리엄에 기초하고 있다. 만약 3월에 한·미 군사훈련이 대규모로 재개된다면 북한은 핵실험을 하거나 신형 전략로켓 발사로 응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한은 지난 14일의 심야 열병식을 통해 그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북한은 바이든에게 지금의 불안한 평화라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협상의 판을 짤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인 충돌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거다.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경황이 없으니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문제는 남북이 만나 이야기해보자”며 대화를 위한 문 하나를 열었다. 북한의 관심 영역을 겨냥한 전략적 메시지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전 국회의원

그런데 대통령의 이 말이 나오자 야당과 보수언론은 일제히 문 대통령이 연합훈련 재개를 “북한의 허락 받고 하겠다는 거냐”며 “대통령의 굴욕적인 발언”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억지주장이 아닐 수 없다. 1976년에 처음으로 ‘팀스피리트’로 알려진 한·미 군사훈련이 시행된 이래 우리는 북한이 원한다면 연합군사훈련을 참관하도록 초청을 한 적도 있고, 북한이 위협을 덜 받도록 군대의 기동을 남북 방향이 아니라 한반도 남단에서 동서 방향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또한 훈련 이전에 북한에 훈련계획을 통보하기도 했다. 그래도 큰 효과가 없자 조지 부시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아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해 버렸다. 트럼프 이전에도 여러 번 한·미 군사훈련을 유예하거나 조정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미 군사훈련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지, 이것이 마치 불가침의 성역으로 신성시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유럽의 50개국을 포괄하는 안보협력회의(OSCE)는 헬싱키 최종의정서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 군사활동에 대해 여타 회원국에 최소한 42일 전에 통보하여야 하며, 대규모 군사훈련에는 회원국의 참관단을 초청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과 중앙아시아 일대의 평화의 초석이다. 헬싱키 의정서는 완전한 평화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점진적으로 평화 프로세스를 이끌어 온 주역으로 지금도 인정받고 있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바로 이 틀을 원용해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단계적 군축으로 나아가자고 남북 정상이 9·19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남북 군사대화가 중단되었지만 1월의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도 이 합의를 파기했다는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즉 아직까지 버젓이 살아 있는 평화의 자산이다. 그 연장선에서 남북 간에도 한·미 군사훈련과 전략무기 개발과 배치를 당연히 의제로 올려야 한다. 그런 노력조차 없다면 거침없이 진군하는 북한을 과연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는가. 전략적 인식이 필요한 시기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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