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보상법 난제 둘..손실 파악 어떻게? 보상 재원 어디서?
보상하려면 소득·손실부터 정확한 파악이 우선
소득·손실 파악 시스템 2025년에야 구축 예정
與 "최대 年 300조 지원", 깜깜이 보상 우려돼
[이데일리 최훈길 최정훈 기자] 정치권에서 앞다퉈 요구하는 자영업 손실보상법 제정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원 조달도 문제지만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얼마나 손실을 봤는지 파악할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법으로 보상 방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 손실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준을 정하는 데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릴지 가늠하기 힘든 만큼 재난지원금으로 우선 두텁게 지원하고, 손실보상법은 시간을 두고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영업제한·금지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에 시급히 보상해야겠지만 법제화가 핵심이 아니다”며 “자영업 소득·손실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하는 게 손실보상법 제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여권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잇따라 손실보상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손실보상법 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자 불과 한 달도 채 안 돼 관련 법안이 8건(민주당 민병덕·강훈식·이동주·전용기 의원, 국민의힘 권명호·홍석준·최승재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나 발의됐다. 여당은 이르면 2월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보상을 위해서는 정확히 피해를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정책 논의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자영업자의 월소득을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시스템조차 없는 실정이다. 종합소득세는 매년 5월에 한 차례, 부가가치세는 매년 1월·7월 두 차례 신고가 이뤄진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행 신고 시스템에선 실시간으로 자영업자 소득을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보니 지난해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에도 재난지원금 대상·방식·금액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았지만, 문제는 적용 시기가 너무 늦다는 점이다. 영국은 실시간 소득 파악 정보(RTI·Real Time Information) 시스템을 2013년부터 도입했다. 이같은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면 자영업 소득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노출돼 재난 위기 시 피해 규모도 쉽게 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시스템이 현재로서는 2025년에나 도입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3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논의를 거쳐 발표한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따르면, 실시간 소득 기반 시스템을 구축해 우리나라 자영업에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시기가 2025년이다.
정부 관계자는 “실시간 소득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기재부·고용부·국세청·근로복지공단 간에 업무소관 영역을 놓고 신경전이 없어야 한다”며 “자영업자들이 소득 노출을 꺼릴 수도 있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홍남기 신중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이런 상황에서 보상액을 법적으로 규정하면 논란만 커질 수 있다. 여당은 집합금지업종·집합제한업종·일반업종에 직전 3년 평균 매출액 대비 손실액의 50~70%까지 보상하는 법안(민병덕), 집합금지·제한 기간에 최저임금 수준의 비용을 지원하는 법안(강훈식) 등을 발의했다.
이 두 법안이 처리되면 지원 규모는 각각 연간 296조 4000억원, 14조 4000억원에 달한다. 법제화를 하면 피해 규모를 정확히도 모르는데 앞으로 재난이 올 때마다 천문학적인 ‘깜깜이 보상’을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법 제정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는 “자영업 소득·손실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조차 없는데, 정치권이 현실성 없는 법제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라며 “손실보상법이 처리되면 보상 기준·대상·액수를 놓고 집행 과정에서 엄청난 부작용과 논란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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