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철수 위기' LG전자..협력업체는 '폭풍 전야'

조미덥 기자 입력 2021. 1. 24. 22:19 수정 2021. 1. 2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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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술 경쟁’으로 타사와 거래 못해
매각 현실화 땐 설비들 무용지물
하청 수백곳 ‘도미노 파산’ 우려
베트남 따라간 업체도 철수 위기

“LG전자 휴대전화만 10년 넘게 만들었는데, 우린 어떻게 하죠.”

수도권에 위치한 LG전자 휴대전화 협력업체 A사의 임원 B씨가 2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지난 20일 모바일 사업 철수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힌 이후 LG전자에 휴대전화 부품 등을 납품해 온 협력업체들은 일거리가 끊길까 싶어 불안해하고 있다.

모바일 사업 철수가 현실화할 경우 피라미드식의 재하청 구조에서 1차 협력업체부터 2차, 3차로 이어지는 도미노 피해가 우려된다. LG전자 모바일 부문 협력업체는 수백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모바일 사업 철수는 수만명의 직원 및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사는 2000년대 후반 초콜릿폰, 프라다폰부터 2014년 G3 등 LG전자 휴대전화의 역사와 함께했다. B씨는 “그때는 물량 주문 맞추느라 정말 바빴다”고 회상했다. 휴대전화 제조사 간 기술 경쟁이 극심한 터라 삼성전자 등 경쟁사의 일감은 수주할 수 없었다. LG전자의 물량이 끊기면 기존 인력이 손을 놓고, 생산 설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B씨는 “우리 제품은 볼트나 나사처럼 하나 만들어서 여기저기 팔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LG전자 휴대전화에만 맞춰 생산을 했기 때문에 LG가 모바일 사업을 접으면 우리도 아예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하청 구조에서 A사 같은 1차 협력업체의 일감이 사라지면 2차, 3차 업체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본다. 수도권에 위치한 2차 협력업체 C사의 임원 D씨는 “안 그래도 LG전자가 2년 전에 베트남으로 휴대전화 생산 공장을 옮긴 후 일감이 확 줄었는데, 아예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C사의 매출에서 LG전자 휴대전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다. D씨는 “우리만 피해를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 원재료를 납품하던 3차 협력업체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LG전자 사이언스파크에 함께 들어간 회사나 2019년 생산 설비를 들고 함께 베트남으로 간 회사들도 몇년 만에 설비를 철수해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현재 업계에서는 인수 업체로 베트남의 빈스마트와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 폭스바겐 등 완성차 제조사까지 거론된다. 만약 모바일 사업을 인수하는 기업이 LG전자의 협력업체를 승계한다면 어떨까.

B씨는 “기존에 있던 제품 생산은 승계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제품에 대해선 자기네와 맞는 업체를 새로 구할 것”이라며 “일거리 끊기는 타이밍이 조금 늦춰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모바일 사업 매각이 아니라 ‘일부 축소’로 결정해도 피해는 예상된다. B씨는 “그럼 매각보다는 낫겠지만 사업 축소로 단종된 모델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의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전자는 모바일 사업이 2015년 이후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위기 속에 여러 차례 협력업체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2016년 스마트폰 G5가 부진한 책임을 협력업체에 전가했다는 반발과 2019년 국내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겼을 때의 반발이 대표적이다.

권 사장은 지난 20일 직원들에게 ‘고용 유지’를 약속하며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10년 이상 함께해 온 협력업체들에 대한 메시지는 아직까지 없다. B씨는 “답답해서 LG전자에 문의해도 ‘아직 알 수 없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다”고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날 “사업 운영 방향이 정해지면 협력사들에도 안내할 예정”이라며 “사업 운영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현재로선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LG전자가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협력업체의 부당한 피해가 없는지 들여다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LG전자와 협력업체 간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지, 그 법적 효력이 어떤지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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