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아니고 여객기입니다
[경향신문]
날개가 짧은 가오리형 ‘매버릭’
날개에 승객 태우는 ‘플라잉 브이’
상용화 땐 연료 절감 효과 기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비행’이라는 인간의 꿈을 상징한다. 그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팔에 날개를 만들어 붙인 뒤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밀랍이 태양열에 녹으면서 결국 추락해 죽었다. 신화 속 얘기이긴 하지만, 현대의 항공기도 기본 형태는 자신의 팔에 날개를 붙인 이카로스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항공기의 이런 모습은 100여년 전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때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선 날개와 동체 구분이 모호하게 설계된 비행기가 구상되고 있다. 이런 설계는 항공기 덩치를 줄이면서도 승객은 더 많이 태울 수 있어 연료를 절감하고 특히 엔진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줄인다. 조만간 가오리나 영문 ‘브이(V)’처럼 괴상하게 생긴 여객기를 공항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영국 매체 BBC는 유럽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가 최근 몇 개월간 기존에 없던 형태의 항공기 시험을 비공개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버릭’이란 이름이 붙은 이 항공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가오리를 닮은 겉모습이다.
현재 대부분의 비행기는 마분지를 둘둘 만 것 같은 날씬한 동체에 기다란 날개가 좌우로 붙어 있다. 동체가 크면 클수록 날개도 커진다. 날개는 오로지 양력을 발생시키거나 연료를 저장하는 용도다. 이곳에 승객을 태우거나 화물을 넣는 건 불가능하다.
매버릭은 다르다. 동체를 날개 쪽으로 최대한 넓혔다. 이 때문에 항공기 전체의 덩치는 줄이면서도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다. 개발사인 에어버스는 최대 20%의 연료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매버릭은 2017년 개발이 시작돼 2019년 폭 3m짜리 축소 모형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대중에게 선보였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진은 ‘플라잉 브이(V)’라는 독특한 항공기를 개발 중이다. 플라잉 브이는 사람이 머리 위로 두 팔을 들어 올린 것과 같은 형태다. 꼭짓점에 해당하는 부위에 조종석이 있고, 후방으로 이어진 두 개의 동체 겸 날개에 승객을 태운다. 지난해 7월 날개 길이가 2.7m인 축소 모형을 띄우는 데 성공했으며, 매버릭처럼 20% 수준의 연료 절감이 기대된다. 매버릭과 플라잉 브이 모두 연구진의 핵심 과제는 비행 역학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과학계에선 설계 개선을 통한 연료 절감이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중요한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190여개국이 참여한 유엔 전문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27년부터 국제 항공사들의 탄소 배출량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협정을 채택했다. 에어버스 업넥스트의 샌드라 부르세퍼 최고경영자는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현 상황에서 최선의 답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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