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 방어선이 뚫리면 환경 난민 10억명
[경향신문]
온난화 진행 막는 노력 안 하면
30년 안에 지구 기온 1.5도 상승
해수면 상승해 인간 터전 소멸
지정학적 큰 변화 불러 올 수도
2004년 개봉한 미국 영화 <투모로우>는 기후변화로 촉발된 온난화가 만드는 뜻밖의 재난을 배경으로 삼는다. 따뜻해진 기후가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이로 인해 지구 전체를 온화하게 유지하는 해류가 끊기면서 미국 등 중위도가 극한 추위에 휩싸인다.
영화 속 미국인들은 혹한 속에서 죽음을 맞거나 좀 더 따뜻한 멕시코를 향해 대량 이주에 나선다.
■ 30년 뒤 환경 난민 10억명
기후변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인간이 즉각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30년 뒤 환경재해를 피해 자국을 떠나는 인구가 최대 10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중순 미국과 호주, 멕시코 등의 대학과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 17명은 국제학술지 ‘프런티어 인 컨서베이션 사이언스’를 통해 지구를 생태학적으로 들여다본 논문 150편을 종합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환경 난민 발생의 주된 이유는 역시 기후변화다. 현재 상업적 에너지의 85%와 절대다수의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에서 뽑아낸다. 중산층 인구가 증가하며 동반 상승하고 있는 육류 소비는 탄소 배출 확대를 부채질한다.
특히 소나 양은 트림을 통해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능력이 20배 강한 메탄을 배출한다. 연구진은 인류가 이렇다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2030년부터 2052년 사이에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기온이 1.5도 높아지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5도’는 온난화를 막기 위한 유엔 산하 국제조직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금세기 말까지의 제한선으로 정한 온도 상승폭이다. 계획보다 최대 70년 일찍 온도 방어선이 뚫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는 이상 기온과 해수면 상승을 유발해 인간의 터전을 소멸시킨다.
■ 인구 폭증으로 유행병 증가
연구진이 밝힌 환경 난민 발생의 또 다른 이유는 인구 폭발이다. 현재 78억명인 지구 인구는 2050년 100억명에 육박하며 증가 추세는 다음 세기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연구진의 예측이다.
늘어나는 인구는 공기와 물의 질을 떨어뜨리고, 식량 부족과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인구 폭증으로 인해 특정 국가나 지역에 사회적인 의미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인구는 유행병도 증가시킨다. 국제학술지 ‘월드 디벨롭먼트’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인구가 늘어날수록 숲처럼 야생이었던 공간을 인류가 더 많이 침범하고, 이에 따라 이전에 없던 바이러스와 맞닥뜨릴 위험도 커진다. 연구진에 따르면 새로운 감염병의 4분의 3은 동물과의 접촉 과정에서 발생한다. 통제되지 않은 인구 증가는 사회의 안정성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 국제정치 변화 요인 가능성
환경 난민이 연구진의 예측대로 30년 뒤 최대 10억명까지 폭증한다면 세계는 국제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 난민 확대의 조짐은 이미 감지된다. 이달 중순 프랑스 법원에선 자국의 대기오염이 너무 심해 귀국할 수 없다는 한 방글라데시 남성에 대해 추방 명령을 철회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해 1월에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의 한 국민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국토 침수 가능성을 호소하며 뉴질랜드에 난민 보호 신청을 하자 임박한 위험이 있다면 강제 송환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직 난민의 일반적인 정의는 정치적 박해나 폭력 등을 피해 자국을 떠난 경우이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가 독재 같은 정치적인 사안 때문이라고만 보는 인식이 있다”며 “하지만 가뭄 등 기후변화로 농민들의 생계가 막막해지면서 생기는 사회 불안이 바닥에 깔려 있다고 분석하는 해외 연구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난민이 지정학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향후 10여년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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