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보복에.. 애꿎은 이웃만 고통

이종민 2021. 1. 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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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에 2020년 층간소음민원 61%↑
윗층 보복하려 우퍼 스피커부터
곡소리 음원·고무망치까지 동원
주민들 "보복소음, 벽타고 울려"
"당했다고 보복할 권리 갖지 않아
입주자 회의 적극활용 해결해야"
서울 성동구에 사는 A씨는 요즘 윗집에서 나는 소음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윗집 남성이 밤낮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윗집 남성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소리치는 이유는 ‘윗집이 시끄럽다’는 것이다. 윗집 남성은 자신의 윗집을 향해 층간소음에 항의한다며 천장을 두드리며 소리치거나 가끔은 드릴로 천장을 울린다.

이 같은 ‘층간소음 보복’은 어김없이 벽을 타고 애꿎은 A씨 집까지 내려온다. 보복 소음에 지친 A씨가 윗집 현관문에 ‘조용히 해달라’는 메모까지 붙였지만, 윗집 남성은 “소음은 우리가 아니라 윗집에서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층간소음 스트레스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윗집의 반응도 지나친 것 같다”며 “윗집이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에 대항해 고의로 소음을 발생시키는 ‘보복성 층간소음’이 또 다른 피해를 낳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늘어난 실내 생활로 층간소음 관련 갈등이 증가하는 가운데 같은 보복이 상황을 악화한다는 지적이다.

24일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층간소음 보복’을 검색하면 천장에 설치하는 우퍼스피커 등의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낮은 음역의 소리를 내는 우퍼스피커를 천장에 설치하면 윗집에 역으로 소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스피커를 통한 층간소음 복수에 사용하라며 ‘제우스의 천둥소리’나 ‘귀신 곡소리’ 등의 음원을 올리는 이들도 많다. 최근에는 층간소음 보복용 스피커 설치가 불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무망치로 천장 두드리기’ 등 법망을 피하는 보복법도 공유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보복성 행위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웃의 층간소음 보복으로 피해를 봤다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입주민은 “층간소음이 아무리 스트레스여도 벽이나 천장을 치지 말아 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보복 소음이) 윗집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벽을 타고 모든 집에 다 울린다. 결국 똑같은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며 “애들 뛰는 소리보다 벽을 쾅쾅 쳐대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린다. 아주 고역”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파주의 한 공동주택 입주민도 “누군가 설치한 보복 스피커 때문에 귀신 울음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온다. 다른 집 간의 갈등에 고통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보복이 노골화한 것은 최근 층간소음이 늘어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은 총 4만2250건으로 전년보다 60.9%나 급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과 이로 인한 분쟁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층간소음에 보복하기 위해 고의로 소음을 내는 것은 폭행과 협박 등의 혐의를 적용받을 수도 있는 불법 행위다. 또 갈등을 더욱 심화시켜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지난해 8월 인천지방법원은 위층의 층간소음에 대항해 보복성 소음을 낸 아래층 거주자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김윤호 변호사(법무법인 라온)는 “내가 먼저 당했다고 보복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보복 소음의 정도가 심하면 사람에 대해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과 동일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송이나 보복성 소음보다는 입주자 회의 기구 등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희경 변호사(법무법인 도영)는 “층간소음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소송에서 이긴다고 한들 소음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아파트 주민들이 갈등 해결기구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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