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도적의 나라
"부자 것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자." 역사에서 이 말처럼 평민들을 유혹한 말도 드물다. 매 시기 각 국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나서 백성들을 현혹시켰다. 실제 칼을 들고 남의 물건을 뺏는 도적, 산적들마저 이런 말을 내세우며 주위 백성을 꼬드기기도 했다. 소위 의적(義賊)들이다. 의로운 도적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데 의롭다니? 사실 역사 속 의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잠깐 의적인 척을 해도 도적은 언제나 도적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의적은 적지 않은 경우가 소설에서 미화된 경우다. 이들 소설 속 의적은 두고두고 인간사에 회자돼 민중 항거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서양의 의적 '로빈훗'이 그렇고, 동양의 의적 '양산박의 영웅들'이 그렇다. 우리에게도 임꺽정이나 홍길동이 있다.
그럼 왜 소설 속 의적과 달리 현실 속 의적은 존재하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남의 물건만 탐하는 도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적들의 역사, '강호(江湖)의 역사'에 잘 드러난다. 동서양을 통털어 강호사의 첫 장을 장식한 인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도척(盜拓)이다. 장자, 맹자는 물론이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기록된 인물이다. 대략 기원전 750년 춘추시대의 인물이다. 노나라의 귀족으로 알려져 있다. 형도 유명하다. 노나라 현인으로 꼽혔던 유하혜(柳下惠)다. 도척이 어찌나 대단한지 중국에서는 신으로 모셔진다. "도적질에도 도가 있다. 먼저 위험에 들고, 제일 나중에 나온다."는 중국 흑사회(중국 마피아)의 도(道)를 만들었다고 한다. 장자는 그가 역사가 꼽는 4대 성인 중 한 명인 공자(孔子)를 훈계해 오금을 펴지 못하게 했다고 기록했다.
다른 역사책에서 도척은 인육(人肉)을 먹는 괴물로 나오기도 한다. 칼을 든 부하만 대략 9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춘추시대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당시 전쟁은 '사(士)'라 불리는 귀족들만 나서 하는 것이었다. 병사(兵士)의 사다. 무기가 대단히 귀하던 시절이어서 사라는 귀족계층만이 무기를 가질수 있었다. 그런 병사가 9000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위세가 당대 한 나라를 위협할 정도였다. 실제 도척 무리가 나타나면 나라가 성문을 닫고 전전긍긍했다고 기록돼 있다.도척은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졌다고 한다. "천하인에게 빼앗아 자신들만 즐기는 황제와 귀족들에게 충성하는 공자야 말로 위선자"라고 공자를 세워놓고 욕을 했다고 한다.
요즘 세간에 나오는 '이익공유제' 논란을 보면서 문뜩 생각 난 '강호의 역사'다. "돈을 버는 이들이 수익을 내놔야 한다." 어딘가 도척의 주장과 닮았다. 그런데 현실 속 수많은 의적들은 어찌됐을까? 당장 도척을 따르던 도적 무리는 역사 속에 종말의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다. 도적은 도적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도적은 물건을 훔칠 부자가 존재해야 존재할 수 있다. 도적질은 모두가 다 가난해지는 순간, 모두가 도적이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도적의 도(道)는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도다. 백성만 불쌍해지는 게 도적의 도다. 우리 정치권의 이익공유제 논의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그럼 도척이 말한 '천하인의 것을 도적질 하는 황제와 귀족'의 나라는 왜 존속했을까? 한 마디로 오해다. 도적들이 사회적 증오를 키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선전)일 뿐이다. 도적질 하는 황제와 귀족 역시 오래 못 갔다. 파도 치는 바다처럼 분노한 민중에 의해 소멸됐다. 천하가 가난지면서 자연히 사라졌다. 도적질과 나라의 운영은 분명 다르다. 달라야 한다.
아쉽게도 나라와 도적은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맹자의 말을 빌면, 나라는 선(善)을 행하고 도적은 이(利)만을 추구할 뿐이다.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사람은 순임금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도척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순임금과 도척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는가, 선을 추구하는가의 차이이다"(맹자(孟子) 진심상) 우리 정치권이 진정으로 이 나라를 생각하는지, '당선(當選)'이라는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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