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때 기조 유지하면 한미 균열..'DJ 실패' 재연 말아야"

윤경환 입력 2021. 1. 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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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외교 원로 특별좌담]
▶한미관계
文 '싱가포르 선언' 발언 비현실적
바이든 행정부 정책과도 안 맞아
▶북미관계
"대북정책 서두르면 北에 말려들어
전술핵·핵잠수함 등 배치 검토를"
▶한중관계
'D10' 참여 등 中 눈치보지 말고 한미동맹 강화 필요
[서울경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미는 물론 남북·북미·한중·한일 관계가 모두 변곡점을 맞았다. 이에 외교 안보 원로들은 한미 간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과 북핵 위기에 맞서야 한다는 외교 원칙을 강조했다. 이어 한미일 삼각관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만큼 한일 관계 회복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윤병세 전 장관은 한미 관계에 대해 “바이든 정부의 요구에 맞춰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보 핵심축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나아가 “(미국과 함께) 전술핵 재배치, 핵순항미사일을 구비한 핵잠수함 배치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해 바이든 정부와 핵우산 강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숙 전 유엔 대사는 “우리도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중 대사를 지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보여주기 식 정상회담을 추구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 때와 같은 기조로는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경제가 24일 서면 질의와 답변(전화 및 대면 인터뷰 포함)을 통해 진행한 ‘바이든 정부 출범 외교 안보 좌담회’에서 원로들은 “바이든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진영 간 연대·동맹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의 외교 안보 전략도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야 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한미관계

쿼드 플러스 참여 동맹외연 넓히고

핵잠수함 추진 등 아태 핵심축 충실

전작권도 시한보다 조건에 초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정부가 싱가포르 선언을 북미 대화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이라고 보는가.

△윤병세 전 장관=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대폭 수정할 것을 이미 예고했다. 당연히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도 주요 재검토 대상이 될 것이다. 다만 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일부 요소들이 수정돼 활용될 가능성은 있다. 아마도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숙 전 유엔 대사=문 대통령이 트럼프 정부에서 이뤘던 성과를 언급했는데 그 성과가 뭔지 의문이 든다. 트럼프 정부와 아주 명확한 차별화를 시도하는 바이든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회담은 TV 리얼리티쇼와 같은 ‘톱다운’ 외교의 전형인데 이것을 모델로 삼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싱가포르 회담은 당시 훨씬 유리했던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회담이다. 합의 내용 자체도 완전한 비핵화는 후 순위로 밀려 있고 매우 추상적이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 교섭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권영세 의원=바이든 정부는 정상끼리 보여주기 식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과거 이란 핵 합의 때처럼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접근법을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가 트럼프 정부 때와 같은 기조로 바이든 정부를 대한다면 처음부터 한미 동맹 간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나.

△김 전 대사=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민주주의 연대, 쿼드 플러스(미국·일본·호주·인도 다자 안보협력체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 국가들을 추가하려는 구상) 등에 적극 참여해 동맹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현 정권 내에 성급히 추진하면 커다란 실수가 될 것이다. 시한을 못 박지 말고 양국이 합의한 조건을 충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윤 전 장관=미국은 중국을 가장 커다란 도전이라고 보고 있는 만큼 현 정부 임기 중 북핵 관련 한미일 협력 강화, 대중국 공동전선 참여 등을 강하게 기대할 것이다. 우리는 포괄적 전략 동맹의 일원으로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보의 핵심축(린치핀)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안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와 협력할 방법이 있나.

△윤 전 장관=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국방력 강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우리의 안보 전력 강화는 시급한 문제다.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확장 억제력 전진 배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협의 장치 고도화 등을 병행하는 전략을 조속히 협의해야 한다.

△신 전 대사=재래식 무기 분야에서는 북한을 압도할 전력을 상당 부분 구비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비하는 데는 현저히 뒤처졌다.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한미 공동관리 아래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핵순항미사일을 구비한 핵잠수함을 한반도 연안에 배치하는 방안 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구입과 배치, 미사일 방어 체제 운용에 필요한 한미 정보 공유 체제 구축 등도 추진해야 한다.

△김 전 대사=북한은 핵·미사일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도 발전시켜왔다. 핵탄두를 탑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은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개발도 공식화했다. 북한 SSBN에 대처하는 관점에서 우리도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북미관계

美, 北 비핵화 진전 없으면 압박 틀 유지·강화 전망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 북한 요구 단호하게 거부해야

-북한이 향후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있을까.

△김 전 대사=미국 민주당 측 전문가 중에서도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므로 핵 능력 증강 억제를 위한 소위 ‘중간 단계 합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등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만든 용어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목표를 완화하면 특히 동북아시아에 핵이 확산할 빌미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윤 전 장관=북한은 그간 세계적 핵 대국, 동방의 핵 대국을 지향하면서도 ‘최소한의 억제력’에 입각한 핵 군축 협상을 오래전부터 염두에 둬 왔다. 북한이 당대회에서 핵을 36회나 언급하면서도 싱가포르 합의 사항인 완전한 비핵화는 한마디도 안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새 외교 안보팀 대부분이 관여했던 이란식 모델을 한반도 상황에 맞춰 변형하는 협상안을 주로 검토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비핵화 진전이 없다면 동맹 공조와 다자주의 강화 차원에서 압박의 틀을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3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남북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우리 정부가 연합 훈련 축소 등을 추진할 경우 바이든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라고 보나.

△신 전 대사=북한이 북핵 교섭에 응하지 않는 채 핵 전력 증강에 몰두하는 상황에서는 연합 훈련을 연기·축소할 이유가 없다.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 훈련 없는 군대는 전투력이 약화돼 방위 능력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주한미군도 이 점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남북 관계를 핑계로 한미 동맹, 한미 연합 방위 체제에 간섭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김 전 대사=남북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두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논의하자고 합의했다는 점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도 군사훈련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협의한다고 했지 금지한다고도 안 했다. 더욱이 그 위원회는 가동된 적도 없다. 만약 우리 정부가 별도로 바이든 정부에 연합 훈련 중단·축소를 제안하면 바이든 정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윤 전 장관=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일본 자위대와 미군은 지난해 말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 ‘킨소드’를 실시했다. 정작 한미 연합 군사훈련만 중단하면 한미 동맹의 군사적 준비 태세에 큰 차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어떠한 형태의 북미 관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보나.

△권 의원=문재인 정부도 임기 종료 시점이 다가왔으니 기존 기조를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친북·친중 기조로는 바이든 정부 아래에서 우리가 고립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모든 문제를 봐야 한다.

△김 전 대사=건전하고 합리적인 상식에 입각한 상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한미정상회담도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실무 접촉을 먼저 추진하고 국무·국방장관 방한을 조속히 끌어내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윤 전 장관=현시점은 우리 정부 임기가 1년여 남았고 바이든 정부는 4년 남았다는 점에서 과거 김대중 정부 말기, 부시 정부 초기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2001년 새로운 미국 지도자의 정책 방향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첫 정상회담을 서둘러 가졌다가 햇볕정책과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협정 문제로 (한미 양국이) 삐걱거린 경험이 있다. 과거 사례를 유념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신 전 대사=북한의 도를 넘는 행동에 무반응으로 일관하거나 대북전단금지법과 같이 북한의 턱없는 주문에 곧바로 응하는 것은 남북 관계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당분간 남북이 접촉조차 힘든 상황에서 일방적인 제안을 남발하는 것도 피해야 하고, 대북 정책은 서두를수록 북한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중관계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권 의원=주중대사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께 “중국과의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돈독히 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과거 사드 문제를 협상할 때도 ‘북핵의 위협’을 명확히 중국에 전달하고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않으면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면 명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중국도 그런 식의 경제 보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 전 대사=미중 갈등에 따른 우리의 대응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1953년 한미 동맹을 맺으면서 미국을 선택했고 우리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제공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중국과의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범주로 다루는 게 순리다.

△김 전 대사=중국은 북한과 전략적으로 가까운데다 한국과 공유하는 근본적 가치가 없다.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 낮은 인권 수준, 1당 독재 등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주변국을 대하는 패권적 태도도 우리에게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적 모호성 유지 등을 말하는데 그것은 일반론적인 담론이다. 사드 배치와 대북 제재, 완전한 비핵화 추구, 미사일 방어(MD) 체계 등 구체적 현안에 들어가면 궁극적으로 선택을 피할 수가 없다.

△윤 전 장관=통일을 달성할 때까지 동맹이 중심축이 될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미 동맹의 기조에 확고히 입각해 한중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대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균형 외교나 등거리 외교는 이러한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선택을 요구할 경우 우리 정부가 가져야 할 외교 원칙은 무엇인가.

△김 전 대사=우리는 원칙적으로 주권과 국익, 가치의 입장에 서야 한다.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 체제 참여, 한미일 안보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한중 간 약속)’ 등 임기응변 식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면 우리 입장만 더 약해진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해칠 의향이 없다는 걸 말하고 우리의 핵심 이익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D10(주요 민주주의 10개 국)에 참여하는 데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그게 중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우리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참여하지 않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중국이 그렇게 중시하는 보아오포럼에 이사장으로 헌신하고 있다.

△윤 전 장관=한미 동맹뿐 아니라 한미일 3국 협력, 쿼드 등 다양한 수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반도를 넘어 역내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를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간다는 포괄적 한미 전략 동맹의 발전 방향과도 부합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윤경환·김인엽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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