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진형 전기요금제 정착하려면

손철 기자 2021. 1. 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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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전기료 '연료비 변화' 반영 못해
가격 왜곡·비효율적 소비 유발
'연동제' 도입으로 요금체계 개선
투명성 강화, 사회적 논란 없애야
[서울경제]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관리 가능한 자연력으로 민법상 물건에 해당한다. 전기를 판매하는 행위는 따라서 상법상 기본적 상행위로 인정된다. 상행위의 객체인 전기는 세법상 재화로 분류된다. 재화는 경제적 교환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가격에 원가가 반영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기는 재화로서의 성격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특히 전기사업법 등 법령에 따라 적정 원가를 산정하더라도 요금 결정 시 ‘물가 안정’이라는 지도 원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전기 생산원가의 상당 부분은 연료비다. 한국은 전기 생산에 필요한 석탄, 천연가스(LNG) 등 연료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도시가스와 지역난방 등 다른 에너지 공급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연료비 변동을 요금에 적시에 반영하는 연동제는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전기는 유독 예외로 취급됐다.

연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산유국의 생산 수준, 소비국의 재고 수준 등에 따라 국제 유가의 변동성은 확대됐지만 전기 요금은 연료비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에너지원 간 상대적인 가격 왜곡 현상이 생기면서 비효율적 전기 소비를 유발하고 에너지 수입 비용을 증가시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체 비용을 연간 7,8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전기 요금이 경직성을 띠면서 한국전력의 차입금도 급증해 이자 비용만 매년 2조 원에 이른다. 이는 모두 전기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며, 전기 요금 조정이 한전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소모적 논란도 반복적으로 초래했다.

이제 연료비연동제 도입으로 전기 요금에 연료비 변동이 적기에 반영되게 됐다. 요금 예측 가능성을 높여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고 에너지 낭비를 유발하는 대체 소비를 감소시켜 국가적으로 에너지 효율도 높일 것이다. 무엇보다 요금 조정의 투명성을 강화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방지하고 전기 요금이 전기라는 재화의 적정가격으로 인식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등장으로 경기가 회복돼 유가 상승의 기미가 보이자 당장 전기 요금이 오를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유가 변동이 전기 요금에 반영되려면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고 환율 등 다른 요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요금 인상 등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때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국민에게 알려 이해를 구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유가 상승과 맞물려 시행을 미루다 결국 철회했던 과거의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실 연료비연동제는 현행 요금 체계 및 조정 방식과 동일해 소비자 부담을 늘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연료비 변동이 요금에 반영되는 주기가 연간 단위에서 분기 단위로 짧아져 가격 기능이 더 강화된다. 게다가 연료비가 급등락하더라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요금 변동에 상·하한선을 둬 변동 폭을 제한하고 있다. 비상시에는 정부가 변동 자체를 유보할 수도 있어 이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연료비연동제는 요금 인상 측면보다 가격 신호 기능이 미약했던 기존 전기 요금 체계의 합리적 개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지금, 새롭고 투명한 전기 요금 제도가 마침 도입됐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정부는 제도가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국민 생활에 스며들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특히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비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이 완화된 만큼 한전은 국민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신축년 새해,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처럼 새로운 요금제가 느리지만 꾸준한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효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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