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공공기관 승진심사때 군필자 우대조항 전부 없애라"

양연호 2021. 1.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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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개 기관에 공문, 역차별 논란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직원 승진 자격에 군복무 기간을 반영하는 규정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다.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이 구조적으로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불합리한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도지만 역차별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잡음이 예상된다.

24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기획재정부가 '승진 시 남녀 차별 규정 정비'라는 공문을 지난 13일 산하 기관에 내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 공공기관 340곳에 보낸 공문에서 기재부는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 승진에서 남녀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군 경력이 포함된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 자격을 정하면 이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니 각 기관에서는 규정을 확인해 필요하면 조속히 정비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재부의 조치 배경에는 일부 공공기관이 내부 승진 시 필요한 최저 근속연한을 산정할 때 군복무 기간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에너지 공기업과 금융권 공공기관은 승진 심사를 할 때 재직 연수에 3년 이내 군 경력을 추가로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차가 같은 군필 동료에 비해 군복무 이력이 없는 직원은 2년가량 승진에서 밀리게 되는데, 이것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근로 조건을 달리하거나 기타 불이익 대우를 금지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반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양연호 기자]


[단독] "軍경력 인정이 남녀차별?"…기재부가 불지핀 역차별 논란

공기업 승진서 군경력 배제

부사관·장교출신 여성도 불만
군복무 남성은 정년서 역차별

기재부 공문에 공기업 화들짝
허겁지겁 해당 심사기준 수정

기재부 "군복무경력 호봉 인정
승진까지 반영은 과도한 혜택"
군복을 입은 한 군인이 2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부대에 복귀하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직원 승진심사에 군 복무기간을 반영하는 규정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승환 기자]
승진 심사에 군대 복무기간을 반영하던 공공기관과 공기업 관행에 기획재정부가 직접 '경고장'을 날리면서 승진에 군 복무기간 반영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군 복무기간 가산점 논란은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과 남녀차별금지법이라는 두 현행법의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이어서 상당 기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권고를 받아 든 공기업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병역을 마친 남성 직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보는 시선과 고질적인 직장 내 남녀 차별 요인이 되고 있는 만큼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권고 공문을 보낸 기재부 측은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등이 수년째 법규 위반을 지적하며 시정 조치를 요구했는데도 아직까지 잘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문이 내려가자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의식한 일부 공기업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해당 기준을 손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수 공공기관 사이에서는 "군 복무기간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승진에 필요한 기초 연한을 계산할 때 포함하는 것일 뿐이지 군 복무 자체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것은 아닌데 이를 싸잡아 남녀 차별로 간주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 공기업 재직자는 "지금은 여성 역시 부사관 또는 장교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며 "대다수 남자들이 국방의 의무라는 미명하에 2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20대에 희생하도록 강요당하는데 공기업 재직 정년은 남녀 모두 동일 연령으로 규정된 것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남녀 차별 아니냐"고 토로했다. 모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공공기관 차장 승진 소요 연수에는 자질 변수 중 학력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며 "최근에는 남성이 군복무를 하는 동안 여성은 학부를 빨리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애초에 승진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남성뿐 아니라 ROTC(학군) 출신 여성 역시 승진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승진에 군필 유무를 반영하지 않기로 했지만 여전히 월급과 연봉에 군필 유무는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는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무복무로 인해 사회 참여에서 배제되는 데 대한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해 호봉을 가산하고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차별'의 범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8월 기준 의무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인정하는 비율은 공공기관·공기업 89.9%, 일반 사기업체 40.3% 수준이다.

이미 승진 과정에서 수혜를 받은 직원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서울 소재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군복무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아 승진을 눈앞에 둔 직원들이 갑작스러운 기재부 공문으로 인해 승진에서 대거 미끄러질 경우 박탈감이 상당할 것"이라며 "또 이미 군필자 동기보다 승진이 늦어진 여성직원이나 군미필 남성직원 사이에서도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전했다.

이런 정부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의무 군복무를 마친 남성은 여성 또는 군복무를 하지 않는 남성에 비해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이로 인해 임금·경력 등에서 손해를 보는 구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군 복무 기간만큼 추가 호봉을 인정해주는 것이 그나마 사회적으로 해줄 수 있는 보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 등 인사가 이루어지는 곳은 일부 공공기관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며 "합리적인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서라면 공공기관 조직도 민간처럼 불합리한 차별 요소를 줄여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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