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수현 의인 어머니 "현장선 韓日 손잡고 눈물, 높은 분들은.."
“내 개인의 아들이라기보다 이젠 한일우호의 상징처럼 됐네요. 남겨진 사람들이 그 뜻을 잘 이어가야 될텐데…”
‘후두둑 후두둑'. 23일 오전 11시30분쯤 부산 금정구 선두구동 부산영락공원 안 ‘의사자 이수현 묘소'엔 비가 내렸다. 고 이씨의 모친 신윤찬(72)씨가 우산을 받힌 채 묘소 앞 작은 향로에 향을 피웠다. 모친 신씨는 이씨의 2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두고 우중에 묘소를 찾았다.
“수현이 생각요? 처음엔 길가다 보는 유치원, 초등학생만 봐도 얼굴이 겹쳐 보였어요. 휴가 나온 군인을 보면 눈물이 왈칵했지요. 어리고 젋은 사람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 그냥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일본에서,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수현씨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신씨는 “수현이가 여기보다 더 높은, 좋은 곳에 있다 생각하니 아픔, 슬픔이 잦아들었다”며 “일본에 가면 ‘수현 상'이라며 기려주고 오만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처럼 기억해주는 수현이에게 불쌍하거나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신씨는 최근 1년여간 코로나 탓에 가지 못했지만 그 전엔 몇주기 등 이씨 관련 행사에 참석하느라 종종 일본을 다녀오곤 했다. 지난 2017년 2월 개봉한 이씨의 다큐멘터리 영화 ‘가케하시'(가교, 떨어진 양쪽을 잇는 다리)의 여러 지역 상영회에도 초대됐다. 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요 몇 년 한일간 관계가 안 좋으니 사람들과 만날 때 뭔가 분위기가 싸해져 너무 힘들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다.
신씨는 “얼마 전만 해도 살갑게 잘 지내던 사이였는데 드러내놓고 말을 못하지만 마음이 힘들고 어렵게 됐다는 것이었다”며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나 시집, 장가온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냐 싶어 마음이 아릿해진다”고 말했다.
“아이고, 우산 쓰고 절해라. 감기든다.”
20년째 이씨 추모 활동을 하고 있는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이 우산을 쓰지도 않은 채 묘소에 술을 올리자 신씨가 한마디했다. 이날 추도식엔 모친 신씨와 노씨, 이씨가 생전 어학연수를 받던 곳으로 LSH장학회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 도쿄의 아카몬카이일본어학교 윤길호 부산사무소장 등 3명이 참석했다.
“주루룩, 주루룩.” 빗줄기가 굵어졌다.
“대기업이 큰 돈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320명의 일본인들이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낸 후원금으로 만든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거의 1000명이예요.”
노씨는 LSH장학회 얘기를 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무수히 지나간 폭설, 지진, 쓰나미 등 어려운 일들이 지나갔지만 꾸준히 거르지 않고 장학금을 주어오고 있다는 게 대단하지 않으냐”며 “정치하시는 분, 높으신 분들이 보이지 않는 낮은 곳에 퍼져 있는 이런 소소하지만 진실한 삶의 현장을 알게 된다면 지금의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씨의 묘소는 영락공원 장례식장 건물 맞은 편 좀 떨어진 곳에 있다. 지난 2019년 3월 작고한 이씨의 부친, 이성대씨도 그 옆에 안장됐다. 신씨와 LSH장학회 측은 그 둘레를 따라 매화, 장미를 심었다. 이 묘소와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의 부산 해운대에 사는 신씨는 이 묘소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노씨는 “봄이 되면 매화도 피고, 장미꽃들도 예쁘다”며 “올 봄에는 수현이란 사람을 기억하고, 나라와 나라의 우호를 간절히 바라는 분들의 염원이 매화처럼, 장미꽃처럼 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이수현씨는 당시 21살로 고려대를 휴학하고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지난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지하철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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