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잊지 않는 학원 이사장.. "한일관계 한줄기 빛은 義人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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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최악이라고 말하는 한일관계에 한줄기 빛이 있다면 이수현이란 존재가 아닐까요."
2001년 1월 26일 저녁 도쿄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1974~2001)씨.
아라이 이사장은 "보통의 부모라면 장례식에서 '내 아들 돌려달라'며 울부짖고 원망을 표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이씨 부모님은 기자회견에서 '좋은 일을 하고 떠났기 때문에 수현이를 칭찬해 주고 싶다'면서 일본인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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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각계 후원에 장학금 수혜자 1,000명 눈앞
"이수현 기억하는 이들이 교류 증진활동 원동력"
"모두가 최악이라고 말하는 한일관계에 한줄기 빛이 있다면 이수현이란 존재가 아닐까요."
2001년 1월 26일 저녁 도쿄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1974~2001)씨. 오는 26일로 한국 유학생의 의로운 행동이 한일 양국에 커다란 울림을 준 지 20년을 맞는다. 사고 후 일본에서 그의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와 추도행사를 도맡아 온 아라이 도키요시(新井時贊) 아카몬카이일본어학교 이사장은 "양국관계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한국과 일본의 가교가 되고자 했던 이수현의 꿈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가 다녔던 일본어학교 이사장인 그는 사고 당일 신주쿠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고 신원확인을 위해 시신을 수습했다. 재일교포 2세인 그가 이씨가 이루지 못한 뜻을 잇기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한 부모 이성대(2019년 작고)씨와 신윤찬(72)씨를 도우며 같은 길을 걸은 지도 20년이 흘렀다. 사고 당시와 이후 20년 간 활동을 가장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22일 도쿄 아라카와구 아카몬카이일본어학교에서 만난 아라이 이사장은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즉시 행동에 옮기긴 쉽지 않다"며 "일본 사회는 정작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려다 숨진 한국 청년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한국에 호감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와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한 제1차 한류붐을 거치며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일본 언론들은 이수현의 행동을 대서특필했고 비보를 듣고 일본에 달려온 부모님 취재로 이어졌다. 아라이 이사장은 "보통의 부모라면 장례식에서 '내 아들 돌려달라'며 울부짖고 원망을 표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이씨 부모님은 기자회견에서 '좋은 일을 하고 떠났기 때문에 수현이를 칭찬해 주고 싶다'면서 일본인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
한일 가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던 한 청년의 죽음이 알려지자, 일본 각지에서 성금이 이어졌다. 이씨 부모가 기부한 1,000만엔과 함께 장학회 설립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까지 이씨 또래의 외국인 유학생 998명에게 장학금이 전달됐고, 20년이 되는 올해 10월에 1,000명을 넘어선다.
장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 아라이 이사장은 "사고 날짜인 1월 26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매달 1만2,600엔씩 정년 퇴직할 때까지 10년간 장학금을 보내준 한 고등학교 교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소개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수현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씨 부모와 함께 한일 교류 증진을 위해 땀을 쏟게 한 원동력이었다. 2019년 3월 이씨 아버지가 별세하자,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은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조의를 표했다.
그러나 26일 20주기 추도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머니 신씨의 참석이 어려워졌다. 그는 “올해가 20주년이라 큰 행사를 준비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간소한 행사로 열게 됐다"며 "10월 장학금 수여식은 어머님을 모시고 많은 이들에게 이수현 정신을 알릴 수 있는 행사로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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