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어른에게 베푸는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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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귀엽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린이들의 위대함이 있다.
자기가 매번 나가는 시간을 바투 잡아놓곤, 왼쪽 오른쪽을 알맞게 배열하고 신발 뒤축이 구겨지지 않게 발꿈치를 집어 넣는 과정을 왜 너는 매번 빨리 못하느냐고 윽박지르는 이 못난 어른에게, 우리 집 어린이는 늘 엉거주춤 신다 만 채로 걸어 나오며 너그럽고 정중하고 쾌활한 표정을 잃지 않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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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귀엽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린이들의 위대함이 있다. 두 어린이와 함께 사는 나는 그 위대함을 아스라이 감지하면서도 일상의 분주함과 피곤에 몰려 그것에서 배울 기회를 놓쳐버린다.
아침 바쁜 출근길에 느릿느릿 신발을 신는 아이에게 매일 분통을 터트리는 일, 휴지심·빨대·클레이 등으로 열심히 만들어 선물해준 작품들에 “오~ 멋있네” 성의 없이 반응하고 이내 몰래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도와줄까요?”라며 부엌으로 달려오는 아이에게 “저리 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하며 내쫓아버리는 일들이 그렇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여느 자녀 양육서처럼 이런 부모의 행동을 ‘반성’하게끔 꾸짖지 않는다. 대신 그토록 신경질적이고 무례한 성인들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는 어린이들의 너그러움, 정중함, 쾌활함을 어른들이 영영 까먹어버리지 않게끔 넌지시 환기해준다. 자기가 매번 나가는 시간을 바투 잡아놓곤, 왼쪽 오른쪽을 알맞게 배열하고 신발 뒤축이 구겨지지 않게 발꿈치를 집어 넣는 과정을 왜 너는 매번 빨리 못하느냐고 윽박지르는 이 못난 어른에게, 우리 집 어린이는 늘 엉거주춤 신다 만 채로 걸어 나오며 너그럽고 정중하고 쾌활한 표정을 잃지 않고 말한다. “엄마, 미안해요.” 이토록 옹졸한 어른의 세계에서, 이토록 위대한 어린이의 세계라니.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는 어린이책 편집자이자 어린이 독서교실 선생님이다. 거기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말, 글, 행동이 책 속에 오밀조밀하게 배치돼 있다. ‘아이에게 배운다’는 말 속의 가식을 한 꺼풀 벗겨내더라도 여전히 어린이의 세계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
조금 작고 느리고 서툰 그들에게 어른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세상의 ‘일반 기준’이라는 것이 갖는 폭력을 발견해낼 수 있고, 무례한 어른들에게 베푸는 어린이들의 호의와 환대를 보면서 보드랍고 따뜻한 마음씨들이 지닌 힘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서툴게 신발을 신는 어린이(혹은 여러 가지 상황의 약자들)에게 “천천히 해도 돼”라는 말을 해줄 줄 아는 사람들의 세계가 바로 ‘어린이의 세계’에게 한 수 배운 세계일 것이다.
올해 특히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 까닭은, 2020년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많이 빚진 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가장 헌신적으로 희생한 이들이 바로 어린이들이다. 어른들이 유흥주점과 친목 모임을 포기하지 못할 때 어린이들은 놀이와 학습의 권리를 몽땅 빼앗긴 채 집안에서 숨죽여 1년을 보냈다. “미안하다”며 안타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말에 마음과 귀를 기울여보는 일이 2021년 우리 어른들의 책무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그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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