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의 균형'이라는 정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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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회랑〉의 주제는 '자유'다.
근대국가가 강력해질 때, 사회가 따라 강해진 나라에서만 자유는 살아남았다.
반대로 자유를 누르는 강한 사회에서는 국가가 강해져야 자유를 지킨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은 너무 약해서 종교와 종족에 기반한 사회의 전횡에 자유가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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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회랑〉의 주제는 ‘자유’다. 국가는 자유에 필수다. 동시에 자유를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족쇄를 차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국가와 사회가 서로 경쟁하며 만들어내는 아주 좁은 길(회랑)이 있다. 서로 압력을 받아 둘 다 강해지지만, 어느 쪽도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고 팽팽한 상태. 여기서만 자유는 살아남는다. 근대국가가 강력해질 때, 사회가 따라 강해진 나라에서만 자유는 살아남았다. 정당에 노동자들이 몰려들고, 여성이 목소리를 낸 곳이다. 반대로 자유를 누르는 강한 사회에서는 국가가 강해져야 자유를 지킨다. 미국 남부 사회의 인종차별에 맞서 연방정부는 민권법을 도입해 흑인의 자유를 지켰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핑퐁이 언제나 좁은 회랑에 안착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이 길은 너무 좁아서 많은 문명이 길 밖으로 추락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은 너무 약해서 종교와 종족에 기반한 사회의 전횡에 자유가 붕괴한다. 반면 18세기 프로이센부터 나치 시대까지의 독일, 서구화 이후 현대까지의 러시아, 그리고 공산당 치하의 중국은 국가가 너무 강해서 자유가 무너졌다. 자유는 양쪽 위협에 다 취약하다. 자유의 열쇠는 균형이다.
이것은 기존 관점과 무엇이 다른가? 하이에크를 비롯한 일군의 자유주의자들은 강한 국가는 그게 뭐든 자유의 적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복지국가도 자유의 적이다. 반대로 강한 국가를 자유의 열쇠로 보는 일군의 좌파들도 있다. 국가는 민권법과 차별금지법을 만들 주체이고, 불평등을 바로잡고 물질적 자유를 보장해줄 보루다. 둘의 논쟁은 양자택일이다. 지적으로 간편하고 실천적으로 명료하다. 〈좁은 회랑〉은 이 구도를 뿌리부터 바꿔버린다. 이제 문제는 ‘국가와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로 바뀐다. 이것은 지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훨씬 고단하고 매 순간 고뇌해야 한다. 지금 우리 위치가 회랑의 왼쪽 절벽인지 오른쪽 절벽인지 늘 새로 물어야 한다. 법칙은 없다. 언제나 당대의 현실 인식과 실천에 역사의 경로가 달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더 고단할 필요가 있다.
〈좁은 회랑〉은 경제학의 관점을 방대한 역사와 결합한다. 약점도 있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 하나만 존재한다. 역사는 책의 주장을 검증하도록 핵심 변수를 이리저리 바꿔가며(그리고 다른 변수를 주의 깊게 고정시키며) 실험한 결과들의 묶음이 아니다. 이런 도전은 숙명적으로 논증에 이르지 못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에 머문다. 진지한 연구자가 선택하기엔 위험이 너무 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현대 사회과학은 이런 ‘큰 질문’을 다루는 힘을 잃어간다. 〈좁은 회랑〉은 근본적인 약점을 알고도 큰 질문에 정면으로 덤비는, 드물게 야심찬 책이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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