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칼럼] '외교실패론'의 근거를 묻는다

한겨레 2021. 1. 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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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칼럼]비판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 비판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편견과 억측, 매도를 위한 비판은 민주주의를 권력투쟁의 비극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앞으로의 1년5개월간 한국 외교가 성과를 이뤄내길 원하는가.

문정인 ㅣ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시간이 빠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이제 1년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3년7개월이 흡사 롤러코스터처럼 흘러갔다. 2017년의 위기에서 출발해 2018년 희망의 한해를 만들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좌절하면서 한반도는 다시 얼어붙었다. 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안과 밖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진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언론의 이른바 외교 실패론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애초 내세웠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제가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일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이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이룬 것도 많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 남북 군사합의서를 채택했고, 이로 인해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같은 군사적 위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구두와 서면으로 북측 지도자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동을 가능케 한 것은 결코 사소한 성과가 아니다. 북한의 핵 보유가 본격화된 이래 역대 어느 정부가 이 정도 성과를 냈는가. 비핵화와 평화를 모색했던 2018년의 외교 노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욱이 파탄났다는 한-미 동맹은 여전히 견고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양자뿐 아니라 다자외교에서 이룬 성과도 적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운신의 폭은 더 넓었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다음으로 일부 일본 언론인과 보수 논객들은 문 대통령의 포퓰리즘이 한-일 관계를 망쳤다고 비판한다. 여기에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문제를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실과 다르다.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던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일관된 태도를 지켜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기부터 역사 문제는 우리 국민에게 집단 기억과 상처로 남아 있으므로 치유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따라서 역사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구하면서 점진적으로 풀어나가고, 북핵, 중국의 부상, 경제협력 등 시급한 전략적 사안부터 협력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들 분야에서 성공적 협력이 이루어지면 국민을 설득하기도 쉬워진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본 지도부는 역사 문제의 선결 없이 한-일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만 하더라도 김정은 총비서는 아무 조건 없이 만날 용의가 있다면서도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는 징용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참석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한국은 삼권분립이 명확한 민주주의 국가다.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해왔다. 민주주의 제도와 원칙에 입각한 이러한 외교정책의 어디에 포퓰리즘이 자리하고 있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세번째는 최근 등장한 미국 언론의 비판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살포 금지의 기준, 대상, 주체, 방법 등을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어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기본권까지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일부 인사들이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으니 최종 판단을 지켜볼 일이지만, 그 입법 취지를 복기해 보면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와 북한 인권의 증진이라는 보편적 가치 못지않게 200만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법을 입안한 의원들은 남북이 전단살포를 포함해 상호 비방을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이행을 위해서도 해당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살포전단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기간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전단과 시디(CD), 달러화 등이 북측 지역에 얼마나 도착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처벌을 두려워하는 주민들은 전단을 발견하면 곧바로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한계가 명확한 행동을, 접경지역 주민의 불안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부 인사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방임하는 게 정부의 적절한 태도인가. ‘국제 인권규범과 한국의 주권 사이의 충돌’이라는 일각의 프레임이 지나친 과장이라는 생각을 피하기 어렵다.

비판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 비판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편견과 억측, 매도를 위한 비판은 민주주의를 권력투쟁의 비극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앞으로의 1년5개월간 한국 외교가 성과를 이뤄내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책임있는 비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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