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 '무색'하게 만든 반포 재건축

주영재 기자 2021. 1. 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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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시세 급등에 분양가 상한제 하에서도 역대 최고가 분양

“분양가상한제를 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시한 분양가보다 5~10% 낮아질 것이라는 발표를 믿고 기다렸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한 부동산 카페 게시글)

“HUG가 제시했던 분양가보다 높아져 조합원 분담금이 내려가니 아무래도 반길 수밖에 없다. 이곳 시세가 평당 1억원이라 그래도 불만인 조합원이 있지만, 이 정도면 서로 윈윈하는 것 같다.”(재건축 사업지 인근의 공인중개사)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 재건축인 ‘래미안 원베일리’의 분양가격이 역대 최고가인 3.3㎡당 5668만원으로 결정된 후 시장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분양가가 너무 높지 않도록 가격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 시세를 고려했다지만, 분양가가 이렇게 높아서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의미가 사라진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은 1월 21일 수도권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이 통계를 작성한 2012년 5월 이후 8년 8개월 만에 최고로 올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분양가상한제 무색하게 만든 원베일리

분양가상한제는 주택 분양가격을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택지비는 토지 감정평가액과 택지가산비, 건축비는 기본형 건축비와 건축가산비다. 가산비용은 택지 개발을 할 때의 암반공사나 지능형 설비, 친환경 설비 등의 비용을 반영한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심의위원회로부터 분양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서초구청은 지난해 12월 말 분양가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원베일리 분양가격을 결정해 조합에 통보했다. 분양가는 택지감정평가액 4204만원에 기본형 건축비 798만원, 택지·건축 가산비 666만원을 더한 값이다. 지난해 7월 HUG로부터 받은 4892만원(3.3㎡ 기준)보다 약 16% 올랐지만 1억원 내외인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60~70% 수준이다.

분양가상한제는 건설사와 조합의 폭리를 차단해 고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자극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택지비 등 주변 시세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는 분양가상한제도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해 7월 HUG의 심사는 인근 지역에서 2019년 분양된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지만, 서초구는 분양가 심사 요청 시점의 택지비 등의 감정평가액을 기초로 한 만큼 1년간의 토지가치 상승분이 일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수요자의 기대와 달리 분양가상한제 하에서 HUG보다 분양가가 높아진 이유에 대해 기본형 건축비와 가산비가 과다하게 책정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기본형 건축비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가산비가 터무니없이 높다”면서 “건축비는 현재 견적서를 갖고 산정하는데 견적서는 실제 비용과 많이 달라 더 엄격히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천시 분양가심의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하는 이 변호사는 분양가심의위원회에서 심도 있는 검증이 이뤄지도록 자료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제공돼야 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서초구의 특수성이 작용했다고 봤다. 분양가심의위원회 구성상 택지평가와 건축비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분양가 심의위원에 시장가격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참여하고 있다.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만 들어가다 보니 위원회가 있으나 마나 한 요식행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초구 분양가 심의위원의 인력풀에 래미안 원베일리 시공사인 삼성물산 출신 인사가 포함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택법 시행령에 따라 분양가상한제 심사위원으로 등록사업자의 임직원과 임직원이었던 사람으로서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위촉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란에 서초구청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최초에 토지감정평가를 했을 때 평당 5000만원으로 결정됐는데 주택법 개정으로 국토부가 택지비 감독을 강화하면서 한국부동산원에 재의뢰했고, 그 결과 평당 4200만원으로 낮아졌다. 조합에서 지난해 6200만원에 분양가 심사를 요청했을 때도 구청이 460만원 넘게 깎았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출신이 분양가 심사위원의 인력풀에 포함된 것과 관련해 이 인사가 심사에 참여한 적이 없고 퇴직 후 3년이 지나 문제가 없지만 지난 15일부로 예비 인력풀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땅값 급등이 고분양가의 원인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분양가상한제의 분양가격이 높다면서 그 기준으로 HUG가 제시하는 분양가와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분양가상한제 분양가격이 높다라는 결론만 볼 것이 아니라 가격을 구성하는 요인에서 무엇이 올랐는지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토지비가 계속 올라가고 있고 최근 지어지는 주택은 특화설계나 친환경, 에너지 절감 설계로 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를 고려하지 않고 최종 가격만 말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친환경 설계로 건축비가 증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업자의 비용을 보상해 최종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수요 억제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하려는 방향으로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과 분양가상한제를 연결짓는 해석도 있다. 분양가상한제로 무조건 가격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신호를 줌으로써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랩장은 “(원베일리의 분양가는) 가산비와 금융비용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터무니없이 비싸게 분양은 하지 않도록 조정하겠다는 걸 시장에 보여준 것”이라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이전처럼 사업이 완전히 중단되거나 후분양을 고민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공급자의 공급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도 분양가상한제의 의미를 살리는 중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로 분양가가 올랐다는 주장에 대해선 전문가 대다수가 연관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택지비 감정평가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초로 산정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감안해 보정하기 때문에 공시지가 현실화 자체가 감정평가액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평가는 시세를 반영하는데 애초에 공시지가는 시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강훈 변호사는 분양가 상승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땅값 상승을 억제하려면 토지 보유에 대한 세금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분양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 분양가상한제가 너무 느슨해 분양가를 적절히 규제하는 장치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게 맞는 설명”이라면서 “건축비보다 땅값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토지 가격에 영향을 주는 세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분양가심의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고, 심의 결과를 사후에 관리감독하는 기능을 둘 필요도 있다. 현재 국토부는 주택법에 따라 지자체 분양가심의위원회가 심사한 결과를 분기별로 통보만 받을 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심의위원회가 의결하면 이를 참고해 최종적으로 지자체가 승인한다”면서 “분양가가 적정한지 국가가 일일이 조사해 잘잘못을 판단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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