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로..집·가족·자연만 한 게 있으랴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2021. 1. 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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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30주기 기념전]
강렬함에 깃든 간략·섬세함
일제 식민지·전쟁 겪으며 느낀
장욱진만의 시대정신 담겨져
자화상·밤과 노인 등 50여점
내달까지 현대화랑서 전시
장욱진의 1951년작 '자화상'. /사진제공=현대화랑
[서울경제]

황금 빛 들녘을 가로지르는 붉은 길을 따라 세련된 턱시도 차림의 신사가 걸어와 앞에 섰다. 빨간 넥타이와 왼손에 든 검은 장우산까지 한껏 멋을 부렸다. 1951년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그린 화가 장욱진(1917~1990)의 ‘자화상’. 지독하게 역설적인 그림이다. 전쟁의 아픔과 불안, 혼란의 현실을 떨치고자 작가는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황금 들판을 택했다. 점령 당한 서울에서 북한군의 선전용 그림 제작에도 동원됐던 그는 부산 피난 시절을 거쳐 고향인 충남 연기군으로 가 머무를 무렵 이 그림을 그렸다. 고통은 모조리 그림 밖으로 몰아낸 작품에 예술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인 희망 만을 담았다.

장욱진의 1990년작 '밤과 노인'. /사지제공=현대화랑

자연을 관통하는 붉은 길은 장욱진의 1990년작 ‘밤과 노인’에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밤의 산길이다. 그 길을 따라 달려가는 어린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라 불러도 됨직하다. 어느덧 노인이 된 화가 자신은 달 옆, 언덕 위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 콧수염 흩날리던 젊은 시절의 멋쟁이 화가는 턱수염 희끄무레한 노인이 되어, 평생의 기력을 그림에만 쏟아부은 뒤 승천하는 것만 같다. 장욱진은 이 그림을 그리던 그 해 세상을 떠났다.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가족,자연 그리고 장욱진' 전시 전경. /사진제공=현대화랑

장욱진 30주기를 기념하며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한창인 대규모 유작전 ‘집,가족,자연 그리고 장욱진’은 바로 이 ‘자화상’으로 시작해 ‘밤과 노인’으로 끝을 맺는다. 한 자리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욱진의 대표작 50여 점을 모았다. 애초 장욱진의 기일인 12월 27일에 맞춰 준비된 전시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식 개막이 미뤄져 해를 넘겼다. 방역 수칙 때문에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객 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2월 초까지 이미 예약이 꽉 찼을 정도로 미술 애호가들의 반응이 뜨겁다.

장욱진의 1973년작 '가족' /사진제공=현대화랑

그림이 내뿜는 강렬함과 달리 실제 작품은 손바닥 만하다. 관람객들은 그림 크기에 한번 놀라고, 가까이서 감상하며 간략함 속에 담긴 섬세함과 깊이감에 또 한번 놀란다.

"나는 심플하다"를 강조해 온 장욱진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어린아이의 붓질 같은 정감 있는 형태로 그리면서도 특유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드러낸다. 집,가족,자연은 작가가 평생을 두고 그린 것들인데 이 안에는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 산업화 등의 시기를 살아낸 장욱진 만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집은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나와 가족을 보호하는 안식처요, 가족은 고마운 존재이자 사랑의 표상이며, 자연은 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평화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작품은 집이나 나무를 중심으로 해와 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좌우 대칭을 이루며 균형을 지키는 게 특징이다. 화가 자신의 가족을 자주 그린 것은 물론, 동물을 그리면서도 소·개·돼지·닭을 한 가족처럼 그렸다.

장욱진의 1978년작 '가로수' /사진제공=현대화랑

오로지 그림 그리는 일만 좋아해 서울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장욱진은 가족을 서울에 두고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지금의 남양주시)에 시멘트 집을 짓고 작업실로 삼았다. 1963년부터 시작된 이곳 '덕소화실' 시기에 작가는 자연주의의 완성을 이뤄냈다. 당시 장욱진은 화실의 실내 가구를 직접 디자인 했고, 외부에는 김봉태·김종학 등 서울대 제자들과 함께 벽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 때 실내 벽화로 그린 '동물가족'(1964)은 고스란히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옮겨갔고, 지금 현대화랑에도 카피본이 벽화처럼 전시 중이다.

장욱진 1973년작 '새와 아이' /사진제공=현대화랑

장욱진은 덕소에 공장과 국도가 들어서 한적함이 훼손되자 1975년 서울 명륜동에 낡은 한옥을 구해 1평 남짓의 부엌을 개조한 작업실을 꾸몄다. 마당에는 양옥으로 스며드는 물기를 잡기 위해 연못을 만들고 작은 정자를 세워 '관어당'이라 불렀을 정도로 자연을 그리워했다. 이후 1980년 봄, 충북 수안보에 시골집을 얻어 담배 말리던 토방을 화실로 꾸미고 지내다가 말년인 1986년 경기도 용인 신갈에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마지막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작가는 작업장을 옮길 때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자연 친화적이며 도가적인 작품을 숙성시켰다.

전시를 마련한 현대화랑 측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사는 관객들에게 집의 소중함, 가족에 대한 사랑, 자연의 고귀함과 아름다운 동화적 세계를 생각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월28일까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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