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재정건전성의 역설 / 최한수

한겨레 2021. 1. 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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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최한수 ㅣ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아비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경제학자와 관련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지적했다. 경제학자와 일반 대중 사이에 매우 큰 인식의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가 미국에 유익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아이비리그 대학의 경제학자들은 단 한 명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평범한 미국인들은 3분의 2나 동의했다.

이처럼 동일한 사회문제를 전문가와 평범한 일반인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의 한 원인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 학자나 관료와 같은 이른바 전문가들은 이 두 사건의 경제적 결과가 그 열렬 지지 세력에게조차 해로울 수 있음을 경고해왔다. 그런데 사실 대중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오해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말을 하는 전문가들을 불신한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목도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득세는 이런 ‘기득권자’에 대한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의 불신과 반감을 분노로 변화시켜 ‘우리와 그들’의 갈등 구도를 만들어내는 정치전략의 성공 결과이다. 트럼프가 대중들에게 외친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대변한다”(I am your voice). 이 모든 사실은 전문가 혹은 정책결정자와 대중 사이 인식의 간극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간극에 대한 연구 중 하버드대학의 스테파니 스탄체바 교수의 분석은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전문가와 다른 방식으로 정책을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증세의 경우 관료들은 소비세 인상을 선호한다. 소득세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다르다. 이들에게 증세란 공정성의 문제이다. 이는 중산층에게 내가 아닌 ‘상위 10%’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득역진적 성격을 갖는 소비세 중심의 증세에는 거부감이 크다. 이것이 일본이나 독일의 사례에서 관찰된, 소비세 중심의 증세 시도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이다.

이는 재난지원금에 대한 보편/선별지원 논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코로나19에 따른 가구지원 효과에 대한 연구들은 선별지원이 보편지원보다 소득보전이나 경기부양에 있어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왜 전국민 지급에 대한 지지는 여전한 걸까?

이는 국민들의 눈에 재난지원금 정책의 성패는 효율성이나 건전성이 아닌 적극성과 충분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별지원이었던 2차 재난지원금이 전면지원인 1차 지원금보다 더 컸다면 더 많은 국민들이 선별지원에 동의했을 것이다. 선별의 정당성은 돈을 아꼈다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나보다 더 어려운 자에게 주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선별지원의 논리는 백낙청 교수의 주장대로 “정부 관료가 서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속마음으로 재난 극복에 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신”을 효과적으로 잠재우지 못했다.

자영업자 보상도 마찬가지이다. 자영업자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협조 때문에 어려워졌다면 보상의 제도화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더 큰 갈등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 갈등의 비용은, 코로나 이후 재정건전성의 복원을 위해 정부가 추진할 세출 구조조정이나 증세 동력의 상실이 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기획재정부는 오랫동안 어려운 시기 힘든 자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재정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내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그 시기가 왔음에도 여전히 인내를 요구한다면 도대체 재정건전성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금융연구원 송민기 박사의 지적대로 유로존 재정위기 상황에서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친 아이슬란드가 소극적으로 재정을 집행했던 나라에 비해 빈곤율과 자살률이 낮았고 국가 채무 비율 역시 위기 전으로 회복할 수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계적인 재정건전성의 강조는 역설적으로 기재부가 그토록 걱정하는 재정 포퓰리즘의 지지 기반을 넓혀줄 뿐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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