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채권시장 뒤흔든 1650억 CERCG 채무불이행..법원 "파킹거래 있었다"

정희영 2021. 1. 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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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證, 신영·유안타에 어음 보관"
운용한도 초과하는 불법 거래..파장 예상
과거 파킹거래 펀드매니저에 형사 처벌
연관 금융사, 발행주관사 상대 소송도 진행중

한국 채권시장을 뒤흔들었던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 채권 채무불이행 사태에서 증권사간 '파킹거래'가 있었다고 법원이 인정했다. 파킹거래는 운용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으로 상품을 매수하고, 이를 다른 증권사에 맡겨 처분 때 수익을 나누는 불법적 거래 형태다. 과거 파킹거래를 했다 손실을 입은 증권사 직원에게 형사처벌이 이뤄진 사례도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앞서 CERCG 사태가 일어난 뒤 뒷돈을 받고 채권을 국내로 들여온 직원과 불완전판매 논란 등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금감원 조사 등이 진행됐으나 파킹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민사12-3부(부장판사 이승한)는 지난 20일 신영증권과 유안타증권이 각각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낸 매매대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 판결과 달리 현대차증권이 매매대금의 70%인 104억과 68억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대차증권 직원 A씨는 자사 내부 보유한도 600억원을 초과한 360.5억원어치 어음을 다른 회사에 일시적으로 보관했다"며 "일정 기간 내에 다시 매수하거나 제3의 매출처로 하여금 매수하도록 하는 전제 아래 신영증권과 유안타증권으로 하여금 기업어음을 매수해서 보관하게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행위는 어음에 대한 매매계약이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를 부여했는데도 이유 없이 매매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이어서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증권 직원이 신영증권·유안타증권에 보유한도 초과분 어음을 맡기는 '파킹거래'를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증거로 제출된 전화통화에는 A씨가 "난 이거 일단 다 돌려야해", "난 지금 돌리는 거 세팅중" 등 파킹 상대를 찾는 정황이 드러났다. CERCG 채무불이행 사태 이후에는 상대방에게 "제가 그 100개(100억원) 넣어 놓은 게 있지 않나, 이게 공식적으로 문제가 됐을 경우 형(신영증권 직원 B씨)도 회사에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며 "그런데 상대방의 물건을 잠시 받아줬다 그러면 더 크게 다친다"며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한 내용이 담겼다. B씨는 "다시 가져가주는 게 제일 깔끔한데 그럴 방법을 찾아봐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재판부는 "신영·유안타증권도 기업어음의 법률적 보유자로서 위험을 일부 분담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 부합한다"며 배상 책임은 70%로 제한했다. 또 "기업어음 보관행위는 직원들 사이의 개인적 친밀관계를 이용한 비정상적 행위"라며 "이에 가담한 신영·유안타증권도 손해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며 이들에게도 파킹거래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채권시장은 이미 한 차례 파킹거래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2015년 6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당시 부장검사 박찬호)는 파킹거래를 하다 펀드 자금에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전 채권운용 펀드매니저 C씨 등을 재판에 넘겼다. C씨는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상고심은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에서 3년 넘게 심리 중이다. 검찰 수사 이후 파킹거래 관행은 채권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법원 판단으로 다시 파킹거래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2018년 5월 CERCG 자회사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한화투자증권 등 주관으로 한국에 발행됐다. 그러나 같은해 6월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자 채권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기업 부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관사와 CERCG 어음에 신용등급 'A'를 준 신용평가사,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금융당국 등에 대해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후 사태는 금융사들간의 책임 공방에서 소송전으로 확대됐다. 이번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의 현대차증권 상대 소송 외에도, 기업어음을 사들인 KB증권·현대차증권·하나은행·BNK부산은행 등이 주관사 한화투자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소송은 서울남부지법에서 1심 진행 중이다.

한편 CERCG로부터 뒷돈을 받고 위 어음을 국내 증권사에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화투자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 직원에게는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상태다. 다만 이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도 회사와 함께 추가로 기소돼 다시 처벌 받을 가능성이 남아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허선아)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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