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호구가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입력 2021. 1. 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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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가끔 눈시울이 적셔졌다.

저자와 같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몇 회사를 전전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조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는 자신의 일을 호구로 연결하는 일은 적지 않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임에도 저자는 담담하게 그 줄을 잇고 있다.

저자는 첫 장 '디자인의 배신'을 통해 호구들이란 적절한 단어를 통해 신랄하게 현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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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바라는 세상에 던지는 신선한 한 방, 석중휘의 《호구의 사회학》

(시사저널=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책을 읽으며, 가끔 눈시울이 적셔졌다. 저자와 같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몇 회사를 전전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조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힘들어하던 아이가 저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한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들은 견적서에 '디자인'이란 항목을 넣지 못한다"는 말에서는 고개가 떨궈졌다. 사실 디자인만 그럴까. 컨설팅을 비롯해 상당수 창의적 노동이 그렇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조금 먹먹해졌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장과 강의를 겸하고 있는 석중휘 작가의 《호구의 사회학》은 이 시대의 중요한 인식의 그림자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호구의 사회학│석중휘 지음│도도 펴냄│304쪽│1만8000원

창의적 노동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짜 요구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는 자신의 일을 호구로 연결하는 일은 적지 않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임에도 저자는 담담하게 그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그 일과 무관하게 읽는 내내 많은 공감을 가게 하는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다.

우선 사람들은 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이라는 말에 뭔가 획기적인 생각을 한다. 우선은 '침대는 과학입니다' 같은 유명한 카피나 다양한 소주 광고의 신화부터 떠올린다. 또 이제는 정치가로 변신한 광고인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저자는 디자인의 역할을 '기억을 바꾸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 과정을 통해 디자인을 하면 돈을 번다는 이 공식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장에서 디자인은 떳떳하게 견적서에 가격도 넣지 못하는 작업이라는 현실을 대입한다. 그런 현상은 현장에서 수많은 '웃픈' 현실을 만든다.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바닥을 누비며 느꼈던 무언가는 '갑'과 '을'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고, 착하고 일 잘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다면 종종 '호구'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내 것(디자인)을 가져가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것이 흔한 세상을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저자는 첫 장 '디자인의 배신'을 통해 호구들이란 적절한 단어를 통해 신랄하게 현상을 드러낸다. 두 번째 장에서는 의외의 공간에서 디자인과 독특한 창의력이 살아나는 순간들을 포착하려 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디자인이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우선 그림을 하고, 디자인을 한다면 하루에 10건에서 50건까지 다양한 공짜 요청을 받는다. 그래서 공짜로 일하지 않는 7가지 이유를 만들었다. 시간이 든다, 대가를 지불하는 고객들에게 피해가 간다, 내 창의력이 떨어진다 등이다. 공짜는 한 번에 끝나지도 않고, 또 진짜 고마움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연줄이 희망이라는 식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익숙함'과 '새로움'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 하는 '호구' 또는 '을'이라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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