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원로 특별좌담<4>] "中 눈치 보지 말고 한미동맹 강화해야.. 선택의 문제 아냐"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협상할 때도 ‘북핵의 위협’을 명확히 중국에 전달하고,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않으면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면 명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중국도 그런 식의 경제 보복을 하지 않았겠죠.
과거 독일에서도 유사 사례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당시 소련이 ‘SS20’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은 ‘퍼싱-2’ 미사일 배치를 논의했습니다. 이때 독일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소련이 미사일을 철거하지 않으면 퍼싱-2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협상 전략을 짜면 중국을 대할 때도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숙: 경제와 안보에 있어 중국의 중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커졌고 앞으로 더 커질 것입니다. 향후 남북통일 과정에서도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고요.
하지만 그건 원칙적인 얘기일 뿐입니다. 중국은 북한과 전략적으로 가까운데다 한국과 공유하는 근본적 가치가 없습니다.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 낮은 인권 수준, 1당 독재 등은 한국과 전혀 다릅니다. 주변국을 대하는 패권적 태도도 우리에게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고요. 일각에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적 모호성 유지 등을 말하는데 그건 일반론적인 담론이죠. 사드 배치, 대북 제재, 완전한 비핵화 추구, 미사일 방어(MD) 체계 등 구체적 현안에 들어가면 궁극적으로 선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드의 경우도 북한에 대해서만 운용하겠다고 했는데 롯데 등 한국 기업들에 제재를 가했잖아요.
▶신각수: 미중갈등에 따른 우리의 대응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중갈등은 분야마다 대립의 정도, ‘제로 섬 게임’ 여부 등이 달라 포괄적으로 단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우리는 1953년 한미동맹을 맺으면서 미국을 선택했고 우리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제공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물론 시장, 북한 문제 해결, 지정학 관점에서 중국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범주로 다루는 게 순리입니다.
한미동맹은 안보의 관점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의 기본가치에도 부합합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하고요.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압도적 존재감을 감안할 때 한미동맹과 자유로운 인도·태평양은 우리에게 전략적 공간을 만드는 데에도 필수입니다.
한미관계가 튼튼할 때 사드 사태와 같은 중국의 고압적 자세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보다 평평한 토대 위에서 관리해 갈 수 있고요. 중화질서의 수직적 관계를 재현하려는 중국몽 가능성을 방어하는 차원에서도 우리는 한미동맹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한미동맹 중시가 반드시 중국과 대립관계에 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원칙·가치·국익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대응하면 단기적 손실이 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미중갈등에서 오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윤병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장기 투쟁을 강조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장기전을 경고한 상황입니다. 한국은 보수·진보 정부를 떠나 미중 간 장기 갈등을 상수로 삼고 외교 안보 정책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큰 부담을 지게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 발전이 한미동맹을 토대로 이뤄져 왔다는 점입니다. 또 앞으로 통일을 달성할 때까지 동맹이 중심축이 될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미동맹의 기조에 확고히 입각해 한중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대원칙을 견지해야 합니다.
균형외교나 등거리 외교는 이러한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미중 간 선택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도 적절치 않죠.
미중갈등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동맹의 핵심 이익·가치와 관련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는 잘 구분해야 합니다. 가급적 이해관계가 충돌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안이 생길 때마다 양측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쿼드 플러스((미국·일본·호주·인도 다자 안보협력체(쿼드)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 국가들을 추가하려는 구상), D10(주요 민주주의 10개국)에 참여하는 데도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중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참여 하잖아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중국이 그렇게 중시하는 보하우포럼에 이사장으로 헌신하고 있잖아요. 중국과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양국 인식을 확대해야 합니다. 중국이 좀 더 경청해야 돼요.
▶신각수: 미국이 민주주의 연합이나 쿼드 플러스를 확대해 가는 목적이 중국의 부당한 행위를 견제하려는 데 있다면 이를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에게는 민주주의 확산이 평화와 번영의 관점에서 유리한 것이잖아요. 적극 참여해서 적절한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외교 자산을 풍부하게 할 겁니다.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될 것이고요. 한국은 이미 1990년대 말 미국과 함께 민주주의공동체(CD)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민주주의 국가 연합체 결성에도 적극 협조해야 합니다.
쿼드 플러스의 경우에도 중국 봉쇄나 완전한 탈동조화가 아니라 중국의 부당한 행위를 전환하려는 목적으로 참여하는 게 타당해요. 다른 중견국가들과 함께 바이든 정부가 실용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대중정책을 구사하게 할 필요도 있어요. 동맹 결속을 강화하고 미중갈등도 완화하는 활동이지요. 중국의 반발과 미중관계의 파국을 막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미중갈등에 따른 우리의 외교적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국론 분열 방지입니다. 결정에 따른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 국익을 확보하겠다는 국민의 결집된 의지가 중요하죠. 정부가 초당파적 소통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과는 가치·무기를 공유하고, 중국과는 지리·경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량은 우리 총 교역량의 25% 정도를 차지합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기본적인 원칙을 갖추고 한중 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 나라를 선택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을 견고하게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발전도 공고하게 만든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윤병세: 중요한 건 (미중 간 선택 요구 때마다 그 사안이) 한미 동맹의 핵심가치나 이익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2015년 한국은 AIIB에 가입하는 게 우리 기업 진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설립 명분에 찬성하고 있었고요. 다만 미국이 민감해 한다는 점을 감안해 미국 외교·재무 당국과 인내심 갖고 투명하게 협의했습니다. 호주 등 비슷한 입장을 가진 나라들과 공동 대응을 하면서 한국은 결국 AIIB 창립회원국이 됐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인정한 좋은 사례죠.
미국이 올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는 구체화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이 회의는 중국만을 겨냥하기보다는 전세계 권위주의 인권 탄압 국가 전반을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부담은 적을 것으로 봅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도해 온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참여하지 않으면 불명예가 되는 것이죠.
반면 쿼드는 현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연계돼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합니다. 최근에는 공동군사훈련까지 하는 등 협력 영역을 확대하고 있어 (참여하기에)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다만 비동맹 주도국인 인도는 쿼드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이것이 중국을 겨냥하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천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개방된 협의체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호주·일본도 대외적으로는 쿼드가 중국 봉쇄라는 점을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도 한미동맹뿐 아니라, 한미일 3국 협력, 쿼드 등 다양한 수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를 넘어 역내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포괄적 한미 전략동맹의 발전 방향과도 부합하는 길입니다.
/윤경환·김인엽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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