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뚫고 中·유럽 누볐는데..또 멈춘 이재용의 글로벌 행보

노현 2021. 1.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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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8,이충우기자
"일본도 가야 한다."

지난해 10월 23일, 닷새 간의 베트남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취재진들에게 건냈던 유일한 한마디다. 당시 이 부회장은 "일본도 고객들을 만나러 한번 가야 한다.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한 뒤 곧바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기 위해 김포공항 인근 임시 진료소로 이동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일본도 가야한다"고 밝힌 배경에 NTT도코모·KDDI 등 일본 1·2위 통신사들을 방문해 5G 사업 확대를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었을 것으로 바라봤다.

이 부회장은 베트남 출장에서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 누볐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단독 면담을 가졌고, 하노이에 짓고 있는 삼성전자 베트남 연구·개발센터 공사 현장도 찾았다. 박닌과 타이응웬에 위치한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생산공장을 점검했고, 호찌민도 방문해 삼성전자 TV 및 생활가전 생산공장을 살펴봤다.

이 부회장은 베트남 출장에 앞서 같은달 8일부터 6박 7일간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EUV 장비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네덜란드 업체 ASML을 방문해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ASML 경영진과 만나고 EUV 장비 생산 현장을 둘러보며 삼성에 장비 공급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지 닷새만에 베트남으로 향하며, 10월 한달에만 12일을 해외 현장을 누빈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재계에서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개를 앞두고 시급한 과제들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행보"라고 해석했다.

이르면 지난해 11월로 예상됐던 이 부 회장의 일본 방문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베트남 출장에서 돌아온 뒤 이틀만에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했고, 11월부터는 한달에 세 차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18일,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재수감됐다. 이로써 이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행보도 올스톱됐다.

2017년 2월 구속돼 수감됐던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이후 활발하게 해외 현장을 누볐다. 3~4월 유럽·북미 출장에 나서 글로벌 사업을 점검하고 인공지능(AI) 핵심 인재 영입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10개월간 해외 출장만 10차례 다녀 왔다.

유럽·북미 출장을 다녀온 뒤 5월에는 중국과 일본을 잇따라 방문해 BYD, 화웨이, 샤오미, 비보, NTT도코모, KDDI 등 주요 고객사 경영진들을 잇따라 만났고 6월에는 일본을 다시 방문했다. 하반기에는 인도를 두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해 유럽, 북미, 베트남 출장을 다녀 왔다.

이 부회장은 이듬해인 2019년에도 2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점검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아랍예미리트와 인도,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10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한국을 찾은 글로벌 거물들과 만나 관계를 다진 것도 13차례였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뚫고 브라질과 중국, 유럽,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사업을 점검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졌다. 2018년 석방 이후 채 3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24차례 글로벌 현장 행보를 이어왔던 것이다.

2019년 10월 일본 KDDI와 2조 4000억원 규모 5G 장비 납품 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지난해 9월 미국 버라이즌과 7조 9000억원 규모 5G 장비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AI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영입하는 등 그간 삼성전자가 거둬온 굵직한 성과들은 이 부회장의 활발한 해외 행보와 이를 통해 다져진 글로벌 네트워크 때문이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실제로 버라이즌과의 5G 장비 납품 계약은 이 부회장과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 사이의 신뢰관계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 각각 삼성전자 부사장과 스웨덴 통신기업 에릭슨 회장 자격으로 나란히 참석해 첫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 부회장이 베스트베리 CEO를 서울 한남동 리움 미술관 비공개 만찬에 초청하는 등 이후 10여년간 수시로 만남을 가지며 사업 협력을 모색해 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계약 당시에도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방문이 여의치 않자 베스트베리 CEO와 수 차례 전화, 영상회의 등을 거치며 삼성의 장점을 어필해 계약을 따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위기 때도 빛을 발했다.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이슈로 한·일 관계가 냉각돼 있던 상황에서도 한국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의 국가적 행사인 럭비월드컵 개·폐막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으며, 일본 비즈니스 리더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는 등 한일 재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재계 관계자는 "2019년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하자 이 부회장이 곧바로 일본을 방문, 현지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긴급 물량을 확보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반도체 생산 차질을 막았던 것을 다들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며 "이 부회장의 재수감으로 총수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위기 대응이 어려워진 만큼 삼성의 경영 불확실성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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