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만적인 '민주와 인권'의 세상..김진숙 복직·보상은 정부와 자본의 최소한의 책무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운영위원장·리멤버희망버스 운영팀장 2021. 1. 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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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신문기사를 통해 한진중공업 사측이 밝힌 김진숙 지도위원의 해고사유는 ‘무단결근’이었습니다. 과거 군부독재 시기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들씌운 해고사유는 위장취업, 업무방해, 폭행, 불법파업 등이었습니다. 언론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김진숙이라는 사람은 불성실한 노동자이었거나 노조를 이유로 특혜를 누리는 인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줄 수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도보투쟁 이틀째인 2020년 12월 31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을 향해 걷고 있다.그는 자신의 복직을 위해 청와대 앞에서 동조 단식 중인 동료들과 중대재해기업 피해 유가족들을 위해 청와대까지 도보투쟁에 들어갔다. 김 지도위원은 12월 30일 부산 호포역을 출발했다. 권도현 기자


김진숙은 왜 무단결근으로 해고된 것일까! 노동자 김진숙은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헌법적 권리인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비인간적인 근무조건에 대해 노동조합 집행부에 문제를 제기하며 선전물을 배포했습니다. 회사도 아닌 국가 경찰이 그 이유로 김진숙을 대공 분실로 연행했습니다. “누가 선전물을 썼는가, 누가 배포하자고 했는가” 물으며 고문하고, 폭행했습니다. “대의원을 사퇴하라, 회사를 퇴사하라’고 경찰이 강요하고 회유했습니다. 이후 회사는 김진숙을 경찰에 연행되어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위험인물로 탄압하며 업무를 배제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습니다. 몇 차례의 부서이동에도 꿈쩍 않자 급기야 경찰과 회사 간부가 김진숙 지도위원의 집으로 몰려와 출근하지 못하게 집에 감금을 하고선 무단결근이라는 이름으로 해고했습니다.

과거 대한민국 사회는 국가 공권력과 자본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몸으로 위법하게 부정결탁한 공권력과 자본에 의해 김진숙은 해고를 당해 35년간 고통받아 왔습니다. 이런 부당한 공권력과 기업의 탄압 속에서도 헌법에 보장된 민주노조를 지키려고 있는 힘을 다해 투쟁해 온 노동자 김진숙의 35년에 이르는 투쟁은 한국 역사를 자랑스럽게 만든 어떤 민주주의 투쟁보다 고통스러웠고, 가혹하고 지난했습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2월4일


1997년 정리해고와 파견법이 도입된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가장 큰 탄압의 무기는 정리해고, 계약해지였습니다. 근래도 그렇습니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기한이 없는 무급휴직을 받지 않았다고 정리해고 당했고,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회사의 갑질과 횡포, 저임금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업체 계약해지 방식으로 모두 해고됐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노동자들은 매일 해고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거리로 내쫓기는 것이 노동자들의 여전한 현실입니다.

이런 잘못된 역사와 굴레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을 죽음 아니면 무한정 해고의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현실에 대한 단절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 과제 중의 하나인 적폐청산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영남대의료원 박문진 해고자의 투쟁은 우리시대 일터가 빼앗고 찢기고 쫓겨나는 일터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이 살아나는 일터로 변해가야 한다는 생을 건 호소였습니다, 현재 항암치료도 거부하고 복직을 위한 마지막 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의 요구는 개인의 이해를 넘어 과거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는 사회적 과정입니다. 부산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진숙의 행진에 전국 각지에서 거리로 내쫓긴 노동자들이 함께 걷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5년 부당해고자 김진숙 복직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장애물이 김진숙을 해고한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 놀랍지도 않습니다. 무단결근이어서 정당한 해고였다며 회사가 단호하게 거부한 것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투쟁 그 자체입니다. 그것을 바로잡는 일을 ‘업무상 배임’ 범죄로 보는 한진중공업 사측과 법정관리사인 산업은행장 이동걸과 이를 어쩔 수 없다는 청와대의 모습은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강제로 연행하고 물리적으로 막아선 그때 그 자본과 정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2월29일


이런 역사적 성찰을 통과하며 아주 최소한의 정의나마 회복하라는 전 사회적 요구를 거부하는 현재 한진중공업 사측과 대주주들의 모습 역시 우리 사회가 민주와 인권이란 이름 앞에 얼마나 기만적인 세상인지를 보여줍니다. 35년간의 해고 기간의 고통과 삶의 단절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일을 다시 ‘돈’의 문제로 몰아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존중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광주항쟁에 대한 보상이나 학생지식인 중심의 민주화 보상을 통해 최소한의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 민주주의 근원을 강화해온 실제의 투쟁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고,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노동자 김진숙의 사례에서 보듯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엔 정부와 자본이 결탁해 무법적으로 노동자 민주주의 투쟁을 노골적으로 불법탄압해 왔다면, 현재는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악법을 정부·의회가 만들고 자본이 이용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모든 이들의 헌신과 노고, 투쟁을 외면하고 탄압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지금 노동자 김진숙의 명예회복과 복직을 즉각 이행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좀 다릅니다. 노동자들의 현실적 고통을 다 해결하진 못한다고 하더라고 역사에서 이미 판명된 고통과 고난은 해결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마저 거절당하고 그 거절을 어쩔 수 없다는 정부의 모습은 촛불항쟁으로 어렵사리 다시 세워놓은 최소 민주주의에 대한 ‘재앙’이자, 또 다른 ‘재난상황’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인식에 의하면 현재 은행관리사인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 사측의 이해와 입장은 과거 군부독재의 연장이자, 현재도 여전히 자본독재를 꿈꾸는 반사회적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노동자 김진숙의 부당해고 35년만을 짓밟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역사와 공공선을 짓밟고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자 하는 반공공적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하여 결단코 ‘복직 없이 정년 없다’는 노동자 김진숙의 정의는 바로잡혀져야 합니다. 정부와 의회,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 사측의 성찰과 반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피해에 대한 책임과 회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35년전 노동자 김진숙에게 가해진 국가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노동탄압과 고문 사실 등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현재 한진중공업의 은행관리사인 국책은행 산업은행을 통해 그 책임에 답하는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합니다. 이런 국가의 책임과 더불어 한진중공업은 즉각 김진숙 지도위원을 복직시키고 부당해고 기간에 준하는 피해보상에 나서야 합니다. 그게 한진중공업 사측이 우리 사회 역사에 대해 더 큰 죄를 짓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김진숙 희망버스 기획단’ 단원들이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단식 투쟁에 돌입하고 있다. 1월24일 기준 34일째 단식 중이다. 이준헌 기자


한 발 더 깊게 나아가 김진숙 지도위원이 청와대를 향해 걸어오며 들고 걷는 부채에 적힌 ‘반복되는 상처를 그치라’는 요구를 주목해야 합니다. 눈앞의 보이는 자본의 이해에만 충실한 행위는 언제나 비인간적이고 반역사적이었습니다. 현재 34일째(1월 24일 기준) 청와대 앞에서 단식 중인 정홍형 금속노조부양지부 수석부지부장,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 서영섭 신부, 송경동 시인, 그리고 그 곁에서 수백일째 노숙 중인 세월호의 진실, 그리고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외치며 굶던 청년노동자 김용균, 이한빛 등 피해자 가족들이 외치던 요구를 우리 사회는 무조건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일의 민주와 인권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운영위원장·리멤버희망버스 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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