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43년 만에 컬러판으로 다시 돌아온 '고우영 삼국지'

김현길 2021. 1. 24. 06: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우영 화백 차남 고성언 실장이 직접 채색해 컬러판으로 출간
고(故) 고우영 화백의 차남 고성언 실장이 지난 21일 경기도 김포시 사무실에서 ‘고우영 삼국지’ 캐릭터 조조(왼쪽), 유비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고 화백은 작품에서 유비를 자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쪼다’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포=권현구 기자

“작가의 말을 보면 애틋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느껴집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고(故) 고우영 화백의 차남 고성언 실장은 ‘고우영 삼국지’ 1권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최초 신문 연재(1978~1980년) 당시 검열로 인해 무더기로 잘려나갔던 고우영 삼국지는 2002년 완전한 모습으로 재출간됐다. 당시 고 화백은 작품을 아이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당시 군용 트럭 비슷한 것에 깔려 팔 다리 몸통이 갈가리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비 되는 내가 애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절통했던 것은 그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는 사실이다.”

2002년 24년 만에 본래 모습을 되찾은 ‘고우영 삼국지’가 2021년 들어 컬러판으로 새단장했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은 작품에 색을 입힌 것은 고 화백의 차남인 고 실장이다. 2008년 컬러로 신문에 연재하다 중단됐으나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컬러판으로 완성시켰다. 지난 21일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고우영 화실 사무실에서 고 실장을 만났다.

‘고우영 삼국지’는 하나의 판본이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원작을 따라가면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고 화백만의 독특한 해석과 입담이 더해졌다. 해석의 과감함과 자유로움, 위트는 2000년 이후 등장해 삼국지를 새롭게 해석한 만화들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고 실장은 고 화백이 삼국지를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를 접하시고 많이 좋아하셨는데, 본인 머릿속에 삼국지가 완전히 들어 있었던 거죠. 연재를 하시면서 양념도 치고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채워 넣어 각색이 된 거죠.”

헤밍웨이를 우상으로 꼽을 정도로 만화가보다 문학가를 꿈꿨다는 고 화백의 강점이 반영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아버지 작품 특징으로 그림과 함께 글을 많이 꼽는데, 인물 간의 관계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돼있는 건 문학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고우영 삼국지는 인물 및 사건 묘사에서 그 전까지 나온 삼국지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중 제갈량과 관우의 새롭게 해석한 것이 대표적이다. 고우영 삼국지에선 둘을 경쟁 관계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제갈량이 관우의 죽음을 방조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삼국지에서 고 화백은 어떤 인물에 끌렸을까. 다른 인물과 달리 관우 묘사에 공을 들이고, 이름 ‘우’의 한자가 자신과 같다고 작품에서 강조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 실장은 고 화백이 관우와 함께 조조를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조조에 대해서 남자답고 리더의 본보기라며 좋게 보셨다”고 말했다. 일반 독자와 달리 고 실장에게 작품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작품을 보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아버지의 분위기가 드러나요. 아버지가 이때 이렇게 생각하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인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관우 유비 장비 조조 같은 여러 인물들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모두 보입니다.”

‘고우영 삼국지’ 3권에 실린 인물 소개도 흑백 원화(왼쪽)와 이를 채색한 후의 그림. 고성언 실장 제공

작품에 색을 입히는 것은 생전 아버지의 작업이 바탕이 됐다. 이전에 출간된 고우영 삼국지 표지에 고 화백이 채색한 것과 생전 수채화 물감으로 작업한 것을 참고해 비슷한 톤으로 하려고 했다. 고 실장은 2012년에도 고 화백의 ‘십팔사략’ 채색 작업을 마무리해 출간한 적이 있다. 이번 작업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판형이 커지면서 원래의 서체가 달라진 점이다. 고 실장은 “판형이 커지면서 기존 서체를 확대할 경우 깨지는 문제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일러스트레이트를 공부했던 그는 2002년 귀국해 한동안 아버지와 작업하기도 했다. 고 화백이 세상을 떠난 후엔 고우영 화실을 운영하며 작품 재출간을 비롯한 기념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 코로나19로 개최하지 못했던 아버지 작품 전시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고우영 화실에는 고 화백이 생전에 작업했던 원고가 작품별로 상자에 담겨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작업은 고 실장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고 화백이 작업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일을 떠올렸다. “아마 문하생들도 아버지 작업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기회가 없었겠지만, 저는 자주 봤어요. 그 얇은 펜을 잉크에 찍은 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인물들이 나오는데, 평생 하신 일이라 그랬겠지만 저에게는 마술 같았습니다.”

김포=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