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성희롱'은 성폭력이 아니다? 사이버공간 피해 분석해보니
[경향신문]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으로 지난해 한국사회가 들끓었지만, 그 사이에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에 지난해 피해 상담을 접수한 사람은 120명이다. 한사성 활동가들의 업무량 과중으로 인한 소진을 예방하기 위해 6~8월 4개월간 신규상담을 중단한 상황에서의 수치다. 1명의 피해자가 여러 피해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례 건수로 따지면 162건이 된다.
한사성 피해지원팀이 상담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지난 22일 공개했다. 상담 통계 분석은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특징과 흐름을 파악해 적정한 문제제기와 피해자 지원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피해 유형에 따라 분류해보면 ‘불법 촬영’이 21.6%로 가장 많았다. ‘성적 괴롭힘’이 20.4%로 근소한 차이로 뒤를 따랐다. ‘비동의 유포’(13%), ‘유포 협박’(11.7%), ‘온라인 그루밍’(8.6%), ‘불안 피해’(7.4%), ‘성적 합성’(1.9%) 순이었다. ‘불안 피해’는 촬영·유포가 됐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촬영·유포됐을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는 피해를 말한다.
‘단톡방’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이 대표적인 예인 ‘성적 괴롭힘’ 사례가 증가한 게 특징이다. ‘성적 괴롭힘’은 2018년엔 7.8%였지만 2019년 19%로 늘었다.
한사성은 ‘성적 괴롭힘’이 법적으로 ‘성폭력’으로 다뤄지지 못해 ‘성적 괴롭힘’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이를테면 단톡방이 아니라 가해자들간의 개인 메시지로 1 대 1 대화에서 피해경험자에 대한 언어 성폭력을 했을 때는 피해경험자에게 직접 도달하게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성폭력처벌법의 통신매체 이용음란죄가 성립하지 않는 등 실제 피해와 법에 정해진 범죄 성립 요건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상담 통계 분석에서도 ‘성적 괴롭힘’의 44.2%는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 28.8%는 형법상 모욕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처벌법의 통신매체 이용음란죄에 해당하는 사례는 5.8%(3건)에 불과했다.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적용하더라도 공연성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사성은 “단톡방 내 성폭력 사건을 성폭력처벌법으로 진행할 수 없는 현실에서 피해경험자는 형사소송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지위를 얻지 못한 채 공연성의 성립, 공익의 목적, 피해경험자 개인 특정, 명예가 실추되었거나 모욕감을 느꼈다는 근거 등과 같이 엉뚱한 지점에서 씨름하게 된다”며 “사이버 공간 내 성적 괴롭힘의 영역이 성폭력처벌법으로 포섭돼 성폭력의 개념으로 사건을 진행할 수 있도록 입법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했다.
‘비동의 유포’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비중이 줄었다. 한사성은 “비동의 유포 피해 비율이 2017년 48.5%, 2018년 22.2%, 2019년 16.4%에 이어 2020년 13%로 줄어들고 있다”며 “이는 2018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가 개소된 이후 지속적으로 보이는 감소세”라고 분석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 피해경험은 전 연령층에서 나타났다. 피해경험자의 연령대는 20대(38.3%)가 가장 많았고, 30대(20%), 10대(18.3%)였다. 40대 이상 피해자도 5%로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존재했다. 피해경험자의 95%는 여성이었다. 남성 피해경험자는 2명이 있었다.
피해가 발생하는 플랫폼은 카카오톡·라인·텔레그램 등 메신저가 41%로 가장 많았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는 20.5%로 그 다음이었다.
‘성적 괴롭힘’의 경우 20대 비율이 60.6%로 많이 나타났다. ‘온라인 그루밍’은 10대에서 78.6%로 가장 높고, 20대도 21.4%였다. 한사성은 “유포 협박에서의 피해경험자 비율은 20대 31.6%, 10대 36.8%로 10대와 20대에서 온라인 그루밍에서 이어지는 유포 협박의 사례가 많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해자와의 관계는 ‘애인관계’가 28.3%로 가장 많았다. ‘신원 불상’(24.2%), 채팅 상대(14.2%), 지인(10.8%) 순이었다.
‘불안 피해’와 관련한 부분은 과제로 남았다. 가해자가 불법촬영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피해경험자는 ‘유포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사성은 촬영물이 유포됐는지를 확인하는 모니터링을 지원했다. 유포 시 어떤 키워드가 게시물 제목이나 내용으로 사용될지 상상해 이를 바탕으로 촬영물이 발견되는지를 사이버 공간 안에서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이다.
한사성은 “기술적인 접근에도 늘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주의 상담지원의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며 “단체 내외부에서 깊은 연구가 필요하고, 향후 국가의 사이버성폭력 피해지원 정책에 녹아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성폭력처벌법의 불법촬영물 소지죄 처벌 조항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한사성은 경찰 신고 절차를 안내하지만 피해경험자 중 경찰에 실제 신고한 경우는 34.2% 뿐이었다. 미비한 법의 적용이나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을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 신고했을 때 가해자가 자신을 보복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있는 경우에 피해경험자가 신고를 주저하게 된다고 한사성은 설명했다. 증거가 부족하거나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경우, 신고가 반려되거나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n번방 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양형기준이 만들어지는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제도가 정비돼 앞으로 피해경험자의 신고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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