劍에 바친 청춘.. 37년의 집념으로 '鐵의 역사' 되살리다 [나의 삶 나의 길]
일본 시마네현 타타라의 제철장인 기하라 아키라(85)의 말이다.
손으로 도검을 만드는 기술은 본디 우리 선조가 지녔던 뛰어난 능력이었지만 국내에선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부흥한 지 오래다. 국내에는 현대식 제철소에서 제련된 특수강으로 칼과 검을 만드는 도검장(刀劍匠) 예닐곱 명이 있을 뿐이다. 특수강이 아닌, 전통방식으로 철을 제련하고 정련해 수공으로만 도검을 만들어 내는 이는 이은철(64)씨가 유일하다. 그를 단순한 ‘도검장’이 아닌 ‘전통제철 도검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농가 주택을 작업장으로 개조해 쇠와 불을 다루며 37년째 외길을 걸어온 그를 만나러 경기도 여주를 찾았다. 한국전통철문화연구소 ‘대장간’ 문을 밀고 들어서자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그가 손풀무로 바람을 넣어가며 숯불을 피우고 철을 제련해 내기 시작한다. 철광석에서 쇠를 뽑는 것을 제련, 그 쇠에서 이물질을 없애는 작업을 정련이라 한다.
“칼날을 불빛에 비춰 보세요. 구름이 보이나요? 노을 같기도 하고 지평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연마하느냐에 따라 소나무, 느티나무 같은 문양들이 나타나요. 지금은 일본의 명장들이 이 분야에선 독보적이죠. 우리가 백제 때 일본에 전수했던 이런 기막힌 칼 만드는 능력을 이제 되찾았어요. 차갑고 빛나기만 하는 현대 특수강으론 복원할 수 없습니다. 검 날에 발현된 무늬는 바로 우리 선조의 기상이자 혼백이에요.”
선굵게 확연히 드러나는 일본도의 문양보다 장검의 날부분 0.8㎜ 간격 안에 발현시키기가 더 힘들다. 일본 장인들도 그의 도검해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리고 2004년 마침내 그는 국내에서 사라지고 없었던 전통제련방식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일제강점기 때 명맥이 끊긴 우리 고유의 전통 철 제작방식을 복원한 것이다. 쇠에 미쳐 부상을 마다하지 않고 생계조차 팽개친 채 집념으로 매달린 지 20년 걸려 이룬 ‘장한 일’이었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칼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지곤 했는데 사실 ‘전통철 만드는 사람’이 더 가까운 표현이다. 굳이 도검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예로부터 당대 첨단 기술은 무기에 적용했어요. 농기구는 강함이나 견고함에서 도검 등에 밀립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하면서 부러지지 않는 쇠로 무기를 만들어야 했을 테죠. 칼과 검은 철이 낳은 최고의 예술품입니다. 전통 제철기술의 핵심이 담겨 있어요. 이를 재현하기 위해 도검을 연구하고 만듭니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4세기부터 철기를 사용했다. 삼한시대의 변한이나 가야 등은 우수한 철기를 생산해 일본 등 주변국에 수출했다. 일본의 국보 15호 칠지도(七支刀)는 백제가 야마토국에 하사한 보검이다. 일본 나라현 덴리시(天理市)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전해져 오는 철제 검이다.
“일본의 우파들은 ‘칠지도’까지 왜곡합니다. 오히려 일본이 한반도에 전한 신검이라는 거죠. 또는 단조가 아닌 주조로 만들어졌다며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기술을 갖췄기 때문에 반박하고 바로잡아야 해요. 장인과 학자가 한뜻으로 하나되어 복원에 나설 때입니다. 단순한 복원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학술적으로도 정리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전통제철복원연구단에서 활동 중인 그는 “동아시아 고대 철문화 비교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일본이 고대 철의 역사마저 뒤바꾸고 있는데, 칼 문화에 대한 원조싸움은 동북아의 소리없는 전쟁”이라고 경고한다.
이제는 후계자가 중요하다. 수익이 없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떠나가 버린다. 우리 것을 복원하는 일은 개인이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다. 관계 기관과 기업, 지자체 등이 나서서 계승을 도와야 한다.
“제 스스로가 적이다고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외부의 적은 일본에 있어요. 국내 유일이기 때문이죠. 일본엔 국보급 장인 10여명과 300여명의 고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경쟁자인 거죠. 장인은 끝없이 작품의 격을 높여 나가야 하는데 꾸준한 연마만이 답이에요. 그런데 슬슬 나이가 부담됩니다. 보통 20∼30년 걸려야 이룰 수 있어요.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전수할 수 있는 아카데미 시스템을 갖추겠습니다. 고대사에서 철기문화는 중국 유입설에 대한 부담이 없어요. 한반도에서 자생해 크게 융성했습니다. 제철소도 많았고 일본에도 전승했어요. 위대한 한반도 철기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품은 채 이를 계승할 청년들을 기다립니다.”
여주=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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