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심'이 그들의 상품이다
[[토요판]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토요판]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소셜 딜레마
트위터에서는 투쟁하는 노동자와의 연대를 호소하는 글이나, 성차별 해결을 위한 청원에 동참하자는 글이 종종 공유된다. 내 타임라인에는 주로 그 연대 운동에 참여했다고 인증하거나, 청원을 알리기 위해 리트위트하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하지만 동일한 사안을 다룬 대형 포털 사이트 속 기사의 댓글은 사뭇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내 타임라인은 내가 구축한 세상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마도 기사에 댓글을 쓴 사람들도 내 타임라인을 보면 자신의 세상과 전혀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아마도 이 간극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더 커질 것 같다. 점점 더 우리는 정반대의 정보들을 습득하고 전혀 다른 세상을 인식한 채 살아가고 있다.
제프 올로스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유튜브 등에서 일해 온 정보통신(IT) 업계 종사자들을 통해 소셜미디어 산업 내부를 성찰적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은 놀라운 것들을 이루어냈다. 거대 미디어 기업이 아닌 개인들이 전하는 새로운 소식을 빠르게 알 수 있게 되었고, 헤어진 가족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해시태그 운동으로 약자와의 효과적인 연대 역시 가능해졌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이제 정보통신 기술 없이는 인류는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는 더욱 인류에게 밀착되는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실제 인류의 민주주의에 미치는 악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가짜뉴스 같은 허위 정보가 판을 치고,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선동한다. 그의 언동은 최근 그의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끔찍한 상황을 촉발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처음엔 이럴 줄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속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라는 말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플랫폼에서 우리는 자기 관심사를 클릭 하나로 표현하고, 그 클릭은 상품이 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업계는 광고주에게 우리의 ‘관심’을 팔아낼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쇼핑몰에서 카메라 장비를 검색하니 인스타에서 관련 수업을 들으라는 광고가 뜨는 방식은 모두가 이미 경험하고 있어서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구글에서는 친환경 정책을 검색했던 사람에게는 기후위기의 위험에 대한 정보를 좀 더 많이 노출시키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후위기론이 음모라는 정보를 노출시킨다고 한다. 정치적 논쟁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전에는 생각이 다르다면 각기 다른 정보를 발신하는 매체를 구독했던 사람들이, 이젠 하나의 매체 안에서 알고리즘에 따라 정반대의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구글은 효과적이고 단순한 검색엔진이 아니다.
주요 출연자인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구글이 가진 윤리적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캘리포니아의 20~35살 백인 남성 디자이너 50명이 20억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구글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핵심 인력이 사실상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구축한 ‘좋아요’ 같은 시스템은 특히 성별화되어 작동되기 쉽다. 현실 속 미의 기준은 소셜미디어 속에서 더 강력하게 10대 여성의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통계지수는 충격적이다. 2009년 이후 미국에서 10대 후반 소녀들의 자해로 인한 병원 입원율이 그전보다 거의 3배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 증가는 소셜미디어의 성장 그래프와 유사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기술은 우리의 상황을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기존의 불합리한 차별과 억압을 더 극대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없는 삶은 이제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대안이 있을까? 소셜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보자는 이 글 역시 트위터로 공유할 텐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다큐멘터리 속 소셜미디어 업계 종사자들도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위한 법률적 규제, 자신이 접속하는 정보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성찰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이기에, 인간을 믿는 것밖에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 기술이 누구의 입장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업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더 다양한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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