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떠나 흙에 살리라?.. 살아보고 결정하세요 [이슈 속으로]

김희원 2021. 1. 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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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귀농·귀촌 증가세
도시민 41% "귀농·귀촌 의향 있다"
감염 불안 덜고 자연친화적 생활 추구
귀농 67%가 5060.. 귀촌은 2030 절반
비대면 마케팅 등 활용.. 마을에 활기
정부, 트렌드 따라 지원책도 변화
지자체 '한달살기' 등 체험 프로 마련
일자리 탐색·주민과 교류.. 정착률 높아
2021년 89개 시군서 500여가구 지원 계획
준비없는 귀농 '백전백패'
영농기술·농지 마련 등 '공부'는 필수
초기 정착금 2억 소요.. 지원금도 체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변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밀집의 공포. 사람들은 감염 위험이 낮은 저밀도 공간을 선호하게 됐다. 둘째, 언택트 시대. 출근하지 않아도 일할 수 있고, 대형마트·쇼핑몰을 찾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셋째, 건강·환경에 대한 관심. 사람들은 자연친화적 환경과 건강한 먹거리를 찾고 환경보호를 실천하게 됐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은 물론 사람들의 인식과 삶의 태도까지 바꿨다. 각각의 변화의 끝엔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지만 공통적인 해법이 될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농촌’이다.
 
귀농·귀촌을 고려하는 도시인이 실제로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농촌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민 중 은퇴 후 또는 여건이 될 때 귀농·귀촌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41.4%였다. 전년 대비 6.8%포인트 뛴 수치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 방문자가 299만명으로 전년(208만명) 대비 44% 증가했다. 코로나19가 귀농·귀촌 흐름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은퇴자에서 청년으로, 귀농에서 귀촌으로

유다님(26)씨와 박기완(34)씨는 이달 말 경남 밀양으로 귀농한다. 환경을 해치지 않는 자급자족 생활을 꿈꾸며 지난해 토종 벼농사를 짓는 농장에서 농업기술, 목공기술, 설비·가공 등을 배웠고, 이후 전국 농촌을 돌아보다 밀양 감물리의 다랑이논에 반했다. 귀농 첫해인 올해는 한 마지기 정도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유씨는 “지역 농업기술센터와 귀농관련 부서를 찾아 정보를 얻었고 살 곳도 마련했다”며 “두려움보다 기대가 더 크다. 동네 어르신들께 농사법, 요리법 등을 배우고 ‘자급연구소’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급하는 법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귀농은 농업인이 되기 위해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 귀촌은 농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
2019년 귀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귀농인은 1만1504명, 귀촌인은 44만4464명이었다. 귀농인의 경우 30대 이하가 10.5%로 적고 50대가 37.3%, 60대가 30.3%로 5060세대가 67% 이상이었다.

반면 귀촌인은 49.7%가 30대 이하로 5060세대(27.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통계로 보면 은퇴한 5060의 귀농보다 사회생활 시작 단계인 2030의 귀촌이 훨씬 많은 것이다.
물론 도시에 인접한 농촌의 신축 아파트단지에 젊은 층이 대거 입주하면 귀촌인이 되는 ‘통계적 허점’이 포함됐지만, 지자체의 귀농·귀촌 담당자들은 “이전보다 젊은 사람들 유입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경북도청 귀농·귀촌센터 담당자는 “5060 세대 유입이 여전히 많지만 도시에서 돌아와 가업을 잇거나 지역의 유치사업을 통해 자발적으로 귀농·귀촌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청년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며 비대면 마케팅에 강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면서 마을에 활기를 주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 “귀농·귀촌 정책을 전면 전환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영농정보를 제공하는 귀농 지원에 더해 젊은 층 수요가 높은 귀촌으로 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 박람회 등 간접체험 지원을 현지 직접체험으로 전환하고 일자리 탐색형 귀농귀촌 교육 과정을 늘릴 방침이다.
◆귀농·귀촌 고민이라면 “살아보고 결정하세요”

귀농·귀촌 준비는 보통 2∼4년 정도가 걸린다. 결심하고, 살고 싶은 곳을 정하고, 지역 분위기를 탐색하고, 농지나 집을 구하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농림수산식품교육정보원은 상담부터 정착까지 단계별로 수많은 교육을 제공한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각 지역에는 도시민들이 농촌 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곡성에서 2019년 시작된 ‘청춘작당’은 청년들이 100일 동안 농촌에서 생활하며 귀농·귀촌을 미리 체험하고 일자리를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2019년 30명, 지난해 24명 총 54명이 참여했다. 그중 20명이 프로그램을 마친 뒤 곡성에 정착했다.

결혼하면서 귀촌해 청춘작당 대표를 맡은 민찬양(27)씨는 “귀촌한 뒤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 정착한 청년들도 지역 기업, 사회적기업에 취업하거나 사진관, 공방, 교육 등 자신의 특기를 살려 창업하는 등 즐겁게 일하며 생활한다”고 설명했다.

전남도는 2019년부터 ‘전남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5일에서 50일까지 농촌을 미리 체험해보는 이 프로그램에 2년 동안 1280명이 참여했다. 그중 16%인 210명이 인근 농촌으로 완전히 이주했다.

전남도 귀농·귀촌 담당자는 “미리 체험하면 귀농·귀촌을 결심하거나 이주 후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살아보기 후 정착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며 “체험 기간 해당 지역을 충분히 탐색하고 지역민들과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집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더라”고 전했다.
농촌 인구 유입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자 농식품부도 올해부터 ‘농촌에서 살아보기’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귀농·귀촌 실행 전 도시민들이 농촌에 장기간 거주하며 일자리, 생활을 체험하고 지역 주민과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성공적인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체 89개 시군에서 약 500가구를 지원한다. 참가자는 최장 6개월의 주거(농촌체험마을·귀농인의집 등)와 연수 프로그램, 월 30만원의 연수비를 지원받는다. 주 2회 일자리를 경험할 기회도 준다.

귀농형과 귀촌형 중 선택할 수 있으며 참가자는 △청년 구직자 △40대 이직 희망자 △5060 은퇴 예정자로 나뉜다. 3월부터 참가를 접수할 계획이다.

◆자금계획 철저히 세워야… 허황된 ‘대박’ 꿈 금물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귀농이나 할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농촌에서 살기만 하면 여유롭고 편안할 거라 생각하는 듯이. 하지만 농촌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준비 없는 귀농은 스트레스만 더할 뿐이다. 귀농·귀촌 교육 담당자들이 지적하는 공통적인 실패 요인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공부 없이 가는 것이다. 귀농하려면 영농기술 외에도 되도록 많은 정보를 수집해 준비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작목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며 주택과 농지 확보 방법을 확인해 3∼4군데를 비교한 뒤 선택해야 한다. 농업인 등록, 경영체 등록 등 법률 절차도 알아둬야 한다. 귀촌도 마찬가지다. 지역 농업기술센터나 귀농·귀촌 센터를 통해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현지답사를 통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준비가 미흡하다면 이주 후 생각지 못한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거나 사기당하기에 십상이다.
또 다른 실패 요인 중 하나는 자금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농촌에만 가면 적은 돈으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2019년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에 ‘불만족’한다는 응답 중 ‘자금이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27.8%, 43.3%로 매우 높았다.
한 지자체 귀농·귀촌 담당자는 “귀농·귀촌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자금이 있어야 한다”며 “초기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2억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부분 정착 초기엔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 준비단계에서 일자리, 사업계획 등을 고려한 자금계획을 세우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을 부분이 있는지 꼼꼼하게 알아봐야 한다.
성공 사례만 보고 ‘대박’을 노리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겨울이면 스키를 타고 나머지 계절엔 농사를 지으며 편히 살겠다며 강원도 횡성으로 이주한 강성원(51)씨 가족의 정착 초기는 ‘실패담’에 가깝다. 강씨는 농사를 짓고, 아내는 농가에서 나오는 작물을 활용해 카페를 창업하고 수익을 낸다는 멋진 구상에 빠져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귀농한 것이다. 하지만 집 짓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리면서 시작부터 우울한 귀농생활을 경험했다. 농사도 쉽지 않았다. 이후 지역 센터의 도움을 받아 착실히 일하며 노하우를 쌓고 ‘귀농 실패담’을 공유하면서 회복해가는 중이다.

강씨는 “우리는 귀농생활을 통해 대박을 추구했는데 막상 귀농하니 철저한 준비 없이 내려온 것이 화근이었다”며 귀농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대박을 좇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 하나하나 성실히 이뤄가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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