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또 자살.. '허쉬', 언제까지 기자들 신세한탄만 다룰 건가
[엔터미디어=정덕현] 또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언론의 여론몰이 앞에 건물 옥상 끝에 섰다. JTBC 금토드라마 <허쉬>에서 자살은 무한 반복되는 코드 같다. 매일한국에 기자로 들어온 이지수(임윤아)의 아버지는 방송국 노조에서 활동하다 날조된 기사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한준혁(황정민) 기자가 쓴 기사를 나성원(손병호) 국장이 날조했고, 이로서 쏟아진 비난 여론을 버티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이지수와 함께 인턴으로 매일한국에 들어왔던 오수연(경수진) 역시 그 건물 창에서 몸을 던졌다. 스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러 언론사의 인턴을 전전하다 쫓겨나길 반복했던 그가 매일한국에서도 결국 밀려날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다. "그런 애는 잘라버리라"는 나성원 국장이 한 이야기를 마침 옆방에서 식사를 하던 인턴들이 모두 듣게 되었다. 물론 오수연도.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또 반복된다. 분식집 사장과 아르바이트생 사이에 벌어진 '칼부림 사건'을 이지수와 최경우(정준원)가 공동취재해 각각 쓰라고 한 나성원 국장이, 팩트대로 사장님의 입장에서 쓴 이지수의 기사 대신 그 사건을 사업주의 갑질 프레임으로 쓴 최경우의 기사를 내보낸 게 계기가 됐다. 작은 기사인 줄 알았지만 여기저기서 어뷰징되며 일파만파 커진 갑질 논란의 여론몰이에 의해 결국 그 사장은 매일한국 건물이 보이는 맞은편 건물 옥상 끝에 서게 됐다.
애초 그 사건을 던져주고 그런 기사를 '기획한' 안지윤(양조아) 대표의 의중은 다른 곳에 있었다. '노 게인 노 페인'으로 갑질을 당한 약자들의 연대가 생겨나는 걸 막기 위해, 억울한 사업주의 사례로 여론을 바꿔놓으려는 기획기사였던 것. 결국 이런 언론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장난질에 무고한 시민을 희생자로 세운 것이었다.
물론 이 사업주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는지 아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억울한 약자들이 마치 진실인 양 펜대를 굴린 언론의 갑질을 당하고 죽음의 경계 위에 서게 되어 희생되는 이야기는 <허쉬>에서 계속 반복된다. 이런 기사들에 의해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계속 봐온 한준혁은 언제까지 이럴 거냐며 나성원 국장에게 대들지만, 단단한 현실은 그런 토로에 변화하기는커녕 공고함을 드러낸다.
한준혁을 주축으로 양윤경(유선), 정세준(김원해), 김기하(이승준), 최경우 그리고 이지수가 이른바 'H.U.S.H' 팀을 비밀리에 만들어 저들과 대적하려 하지만, 그 언론사의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샐러리맨으로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취재를 통해 기사를 내도 그걸 꺾어버리거나 이용하는 데스크들이 있는 한 어찌 변화가 가능할까.
<허쉬>는 언론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이 그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야기는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조작으로 계속 해서 죽어나가는 이들을 마주하고, 그 앞에서 분노하지만 결국 이들이 하는 것이라곤 술자리에 모여 성토하고 기자지만 기자 역할을 못하고 있는 자신들을 한탄하는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한준혁이 갑자기 나성원 국장과 거래를 하고 기획조정실의 팀장으로 올라가는 갑작스런 배신을 하게 된 건 다소 튀는 설정이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면 이 이야기 구조의 답답한 반복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직 한준혁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 파격적인 행보는 아마도 안으로부터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그 깊숙이 들어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어야 겨우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은 아닐까.
한준혁의 꿍꿍이가 결국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만들지만, 지금껏 드라마가 많은 소시민들의 희생을 내세우고 그 앞에서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뭐 하나 바꾸지 못하는 기자들의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던 건, <허쉬>가 과연 언론의 문제를 고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기레기에도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그 처지를 변호하려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어찌 보면 기자들의 변명을 위해 소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정작 그 소시민들의 억울한 사정이나 아픔을 깊게 들여다보기보다는 기자들의 처지에 더 집중하는 것 역시 이런 의심을 가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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