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 노총각 브람스를 설레게 한 여인은 누구였을까 [꿀잠뮤직]

오수현 2021. 1. 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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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24살 연하 성악가 슈피스 향한 열정 담겨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직감한 것일까..브람스 곡서 찾기 힘든 애수젖은 선율

※꿀잠뮤직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듣기에 좋은 음악을 추천해 드리는 코너입니다. 매주 한 곡씩 꿀잠을 부르는 음악을 골라드리겠습니다.

[꿀잠뮤직] 브람스(1833~1897)를 가리켜 흔히 고전주의 진영의 마지막 기수라고 한다. 브람스의 위 세대인 베토벤(1770~1827)이 낭만주의 음악의 문을 열었고 이후 19세기는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쇼팽 등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풍미했던 시대다.

하지만 브람스는 베토벤이 사실상 확립하고 매듭지은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과 작법을 고찰하고 탐구하며 꿋꿋이 밀고 나아갔다. 이미 석유가 바닥이 난 유전을 한번 더 파내려가는 모습이랄까. 그런데 브람스는 기어이 남아 있던 원유를 찾아내 모조리 시추해내는 것 같은 삶을 살았다. 동시대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이런 브람스를 두고 "고전주의에서도 여전히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라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실제 동시대 작곡가이자 신음악파의 기수였던 바그너(1813~1883)는 브람스가 직접 연주하는 자작곡을 듣고선 "옛날 형식이라도 그걸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손을 거치면 무엇인가 성취되는 게 있군요"라는 감상평을 했다. 1864년 자신을 찾아온 31세 청년 브람스가 피아노에 앉아 연주한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듣고 나서다. 화려함과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진보주의자 바그너가 (그가 생각하기엔) 낡은 음악을 하고 있는 브람스에 대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을 것이다.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 평가는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많은 사람이 그의 주도면밀하고 치밀하게 주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과 촘촘한 곡의 텍스처에 큰 감명을 받지만, 클래식 음악을 깊이 알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선 다소 지루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브람스가 멜로딕(melodic)한 작곡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작곡가인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음악은 그야말로 로맨틱한 멜로디의 향연이다. 때론 너무 직설적이어서 영화음악처럼 들릴 정도다.

베토벤도 사람들의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낸다. 다만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노래로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의 성악적인 요소가 있다면, 베토벤은 매우 기악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쉽게 말하면 노래로 따라부르기엔 어려운 멜로디이지만, 악기로 노래하기엔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교향곡 5번 '운명'1악장의 그 유명한 주제가 기악적 멜로디의 최고봉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 1악장의 선율을 아름다운 (성악적 선율이 아닌) 기악적 선율의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의 기악곡에는 오페라적인 요소가 많다. 많은 사람이 이들 작곡가의 작품을 쉽게 기억하고 떠올리는 배경에는 멜로디의 힘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브람스는 선율을 동력삼아 자신의 음악을 끌고 가지 않는다. 구조적인 미학을 추구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브람스의 작품!", 하면 머리 속에 곧바로 떠오르는 선율이 많지 않다.

브람스에겐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나는 브람스가 굉장한 선율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의 미학적 목표가 음악의 구조적 완성을 지향하다보니, 선율을 내세우길 왠지 꺼렸던 것 같다. 브람스의 완벽주의적이고 진중한 성향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실제 브람스의 음악적 모토는 '픽스 오더 닉스(Fix oder Nix)', 즉 '표준에 이를 때까지,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자'였다.

하지만 그의 몇몇 작품에선 숨길 수 없는 선율적 감성이 드러난다. 여러 작품이 있지만 교향곡 3번 3악장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엄청난 흥행을 거뒀던 작품이다. 바그너, 리스트를 지지하던 신음악파 진영에서 이 작품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1883년 12월 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이후 넉 달간 베를린, 쾰른, 비스바덴, 암스테르담, 부다페스트 등 12개 도시에서 연주됐다. 베를린에선 세 번이나 연주됐고, 마이닝 연주에선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같은 콘서트에서 두 번이나 연주되기도 했다.

4개의 악장 모두 서정적이고 우아한 기품이 넘치지만 특히 3악장에선 브람스 작품에서 찾기 힘든 애수에 젖은 듯한 멜로디가 귀에 감긴다. 첼로에서 시작한 주제 선율은 매끄러운 브리지(연결구·bridge)를 지나 오케스트라 전체를 휘감으며 발전하다 이내 독백과 같은 노래로 잦아들길 반복한다.

이 작품에서 브람스답지 않은 서정성이 강렬하게 발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학자들은 브람스의 애틋한 연애감정이 이 작품에 투영됐다고 말한다. 이 작품을 쓸 당시 브람스는 26세의 콘트랄토(알토) 가수 헤르미네 슈피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슈피스는 자신보다 나이가 2배나 많은 쉰 살의 브람스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슈피스가 브람스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브람스의 기질과 사랑에 관한 관념을 잘 알고 있던 슈피스는 브람스가 결혼에 어울리는 남자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브람스의 사랑은 인류애적인 요소가 있었다. 모호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남녀 간 일대일 관계에서의 지고지순한 사랑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헤르미네 슈피스
아무튼 브람스는 1883년 여름 휴가지인 독일 비스바덴에 머물며 슈피스를 향한 열정을 가슴 가득 품고 작품을 써내려갔다. 브람스는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산책하길 즐겼다고 한다. 이런 쾌적한 환경도 브람스의 감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슬픔을 머금고 있는 매혹적인 선율을 듣다보면 브람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직감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슈피스는 이 작품이 발표된 지 10년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 직후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3악장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유튜브에서 'brahms symphony no.3 3rd movement'로 검색해 보자. 'movement'는 악장이라는 의미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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