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알몸으로 베란다 감금.. 살인으로 끝난 '잔혹한 동거'
청각 장애인, 함께 살던 장애인 살해
친형제처럼 지낸다더니 합숙 4개월만에
지난 13일 청각·언어 장애인 A(23)씨가 수의(囚衣)를 입고 법정에 섰다. 재판장이 “국민 참여 재판을 원하느냐”고 묻자, A씨는 수어(手語)로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 지적 능력으론 국민 참여 재판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데다 지적 능력까지 떨어지는 A씨가 법정에 선 이유는 같은 청각·언어 장애인 B(사망 당시 19세)씨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A씨와 B씨가 함께 살던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회생활 잘 배우라”고 보냈는데…
A씨와 B씨는 농아 학교를 함께 다녔다. 졸업한 뒤 진로는 갈렸다. A씨는 지난해부터 전북 정읍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B씨는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에 진학했다. B씨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학 수업이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자 부모가 살고 있는 경남으로 내려와 생활했다.
그러던 중 A씨와 B씨는 지인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A씨가 B씨 부모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 인사하고 갈 정도였다.
당시 A씨는 B씨 부모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B씨 부모는 “청각과 언어 중복 장애인인데 취업에 성공해 사회 생활을 하는 게 장하다”며 A씨를 격려했다. 이들은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부를 도와주고, 사회 생활 잘 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달라”며 자신의 아들을 A씨에게 맡겼다.
◇수시로 폭행, 집안에는 감시용 CCTV 설치
A씨와 B씨의 ‘동거’는 지난해 7월 시작됐다. 두 사람은 A씨가 살던 전북 정읍시 한 원룸에서 함께 생활했다. ‘거짓말 안 하기’ ‘행동을 똑바로 하기’ ‘밥을 아껴서 먹기’ ‘과제와 공부 성실히 하기’ 등 35개 항목으로 이뤄진 생활 규칙도 만들었다. 대부분 B씨가 지켜야 할 내용이었다.
동거 초기만 해도 B씨가 35개 항목을 지키지 못하면, A씨는 수어를 통해 B씨를 타일렀다. B씨가 생활 규칙을 어기는 일이 반복되자 A씨는 불만이 쌓여갔다. 동거 생활 두 달여 만인 지난해 9월 중순, 결국 불만이 폭발했다. B씨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전혀 다른 것을 사오자 A씨는 화가 치솟아 손찌검을 했다.
처음엔 주먹으로 B씨 얼굴과 머리를 때렸지만, 갈수록 폭력 강도가 높아졌다. 온몸을 발로 밟았고, 시도 때도 없이 폭행했다. B씨에게 옷을 벗도록 지시한 뒤 베란다로 내몰기도 했다. 방에 들어오지 못한 B씨가 베란다에서 잠을 잔 날도 많았다고 한다.
A씨는 집 안에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설치해 B씨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생활 수칙을 어기면 먹을 것을 주지 않기도 했다. 이런 가혹 행위는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B씨는 얼굴을 포함, 온 몸에 멍이 들었다.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 건강 상태가 크게 나빠졌지만, A씨는 B씨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폭행 강도를 점점 높였다.
◇베란다 방치해 숨지자 “나는 모르는 일”
B씨가 숨지기 3일 전인 지난해 11월 12일, A씨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B씨를 알몸 상태로 베란다로 쫓아냈다. “대학 과제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주먹과 발, 둔기까지 동원해 B씨를 마구 때렸다. ‘베란다 감금’은 11월 14일 새벽 4시 20분까지 29시간 계속됐다. 당시 정읍 지역은 아침 최저 기온이 영상 3도에 그치는 추운 날씨였다.
A씨는 그날 저녁 7시쯤 다시 B씨를 알몸 상태로 베란다로 내몰았다. 다음날인 11월 15일 새벽 3시 10분까지 둔기로 B씨 머리와 온몸을 여러 차례 때렸다. B씨가 바닥에 쓰러지자, A씨는 정신 차리라며 코와 입에 호스를 대고 물을 뿌리기도 했다. B씨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A씨는 B씨가 숨을 쉬지 않자 ‘급해요. 후배가 안 좋아서요. 갑자기 안 일어났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119에 보냈다. A씨는 119 대원과 함께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다.
A씨는 범행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자신이 집 안에 설치한 CCTV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 경찰이 촬영된 영상을 증거로 제시하자 고개를 떨구며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B씨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가 저지른 살인에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고, 살인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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