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세상은 성적 순이 아니랍니다"..제자들 시 260편으로 시집 펴낸 최하나 교사

김준호 기자 2021. 1.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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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시인 프로젝트로 8년째 제자들과 시집을 펴내고 있는 국어 교사 최하나(42)씨가 제자들과 함께 그동안 펴낸 시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최하나씨 제공

“시집 속에선 우등생도, 문제아도 없어요. 순수하면서 나름의 생각을 가진 ‘사춘기 시인(詩人)’만 있죠.”

경남 하동중앙중학교 국어 교사 최하나(42)씨는 최근 제자들과 함께 시집 ‘다시 너와 마주칠 수 있다면’을 냈다고 23일 밝혔다. 전교생 135명에게서 자작시 총 600편을 받아 그중 260여편을 골라 담았다. 학교의 관심과 도움도 있었지만, 시집 제목부터 표지와 감수까지 최씨와 중학생 초보 시인들이 힘 모아 만든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하동중학교 아이들’, 엮은이는 아이들의 선생님인 최씨다.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 하동군에서는 시(詩) 쓰는 시골 학생들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최씨가 지난 2013년부터 부임하는 학교마다 ‘전교생을 시인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매해 벌이면서다. 이번 하동중앙중에서 만든 시집은 제자들과 함께한 8번째 시집이다.

전교생 시집 만들기는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워주고, 학창 시절 색다른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최씨의 생각에서 시작했다. “인생 본보기고, 교사 선배이기도 한 어머니와 유년시절 시를 쓰며 소통한 추억과 경험이 좋았어요. 감수성 짙은 사춘기 제자들과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죠.”

처음엔 시를 쓰는 것이 어색하던 제자들도 조금씩 자신들의 속마음을 시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강물이 노래를 부르듯이/ 출렁출렁 내려오니/ 지켜보던 산이 옆에서/ 강의 노래를 도와주네….’ 이자현 학생은 ‘하동’이란 제목의 시에서 자신이 사는 하동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경남 하동중앙중학교는 최근 전교생이 참여해 만든 시집 '다시 너와 마주칠 수 있다면'을 펴냈다. /하동중앙중학교

오화랑 학생은 시집 제목과 같은 ‘다시 너와 마주칠 수 있다면’이란 시에서 ‘다시 너와 마주쳐/ 한마디 할 수 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두 마디 할 수 있다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세 마디 할 수 있다면/ 보고싶다고 말하고 싶다’고 썼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히 표현했다.

우울한 현대인의 속내를 ‘가면’에 비유한 시도 있다. ‘내 가면은 행복해요/ 말이 끊이지 않네요/ 모두 내 가면을 보고 웃어주네요/ 폭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할 때/ 가면을 슬그머니 벗어요/ 내 가면은 행복해도/ 내 얼굴은 그렇지 못해요…’(홍연수 학생 ‘행복한 가면’ 중).

이세민 학생은 학업과 장래에 대한 고민을 ‘돛’이라는 제목의 시로 풀어냈다. ‘나의 배는 바다를 떠돌고 있다/ 움직이고 있긴 한지 모르겠다/ 식량이 다 떨어져간다/ 구멍 난 곳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역질이 나고 현기증이 난다/ 방향감이 없고 거리감이 없다/ 나의 돛은 찢어졌다.’

최씨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교감을 통해 느낀 점이 많아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말썽 피우거나 고민 많은 친구들 모두 시에선 평등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보이죠. 전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공간을 만들어준 것일 뿐이에요.”

시집 발간은 제자들에게도 변화를 줬다. 전국 문예대회에 참가해 입상하는 아이들이 나왔다. 아예 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제자도 있었다. 시인으로 등단한 제자도 생겼다. 최씨는 “아이들이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길 바랐는데, 위로받는 건 저 같은 어른들이었다”고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는 “막 어른이 되어가는 첫발을 힘겹게 내딛고 있을 아이들이 아름다우면서도 힘겨웠던 지금의 유년을 잊지 않도록 전교생 시인 프로젝트는 계속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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