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울리는 현대차그룹 합병 공식 '회장님 중심으로'

김찬호 기자 2021. 1. 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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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에서 엠엔소프트, 오트론과의 합병 소식을 알리고 있다./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차그룹 계열사 간 합병이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현대오토에버가 엠엔소프트, 오트론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엠엔소프트의 가치가 부당하게 평가절하됐다는 것이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엠엔소프트 지분을 가졌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역시 합병과 관련해 2020년 12월 30일, 지난 1월 19일 오토에버 측에 두차례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다.

■합병비율은 공정했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11일 그룹 내 분산된 소프트웨어 역량을 통합하겠다며 상장회사인 오토에버가 비상장회사인 엠엔소프트, 오트론을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상장 후 10만원에 미치지 못했던 오토에버 주가는 합병 발표 후 최고 16만1500원까지 상승했다. 반면 엠엔소프트 주가는 장외시장에서 40% 가까이 급락했다. 시장은 이 합병이 오토에버에 호재라고 본 것이다.

실제 합병 과정도 오토에버에 유리하게 진행됐다. 주식회사 간 합병은 각 회사 주식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합병비율’이 중요하다. 합병으로 소멸되는 회사의 주식을 존속하는 회사의 주식으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존속하는 A기업과 소멸되는 B기업 합병비율이 1 : 0.5라면 A기업 주식 1주는 B기업 주식 2주와 교환된다는 의미다. 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의 합병비율은 1 : 0.9581894로 책정됐다. 오토에버의 주식 가치가 엠엔소프트보다 높게 평가 받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주당 매출액, 주당 영업이익, 주당 당기순이익은 모두 엠엔소프트가 오토에버보다 높았다. 2020년 3분기까지 엠엔소프트는 오토에버보다 주당 영업이익은 약 1.7배, 주당 당기순이익은 약 2.17배 높다. 이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2020년 4분기 손익계산서는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2019년, 2020년 엠엔소프트와 오토에버 손익계산서 비교표


주가가 폭락한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합병비율에 반발하며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카페장 C씨는 “기업가치를 비정상적으로 평가절하한 불공정 합병”이라며 “소액주주 100여명이 모여 금감원에 이의제기 및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비상장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에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합병비율 산정방식은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 세칙’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가격을 토대로 책정된다. 이에 따라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문제는 비상장회사가 합병에 포함된 경우다. 비상장회사의 가치는 재무제표를 토대로 한 ‘자산가치’와 미래 수익창출 능력인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해 구한다. 이를 본질가치라고 한다.

문제는 이 가치 평가를 회계법인과 함께 해당 기업이 직접 맡는다는 점이다. 만약 별개의 두 기업이 합병한다면 몸값을 높게 받기 위해 수익가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 그룹의 계열사 간 합병이라면 이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소멸되는 회사 스스로 ‘수익가치’를 낮게 책정해 합병 후 존속하는 회사에 이익을 몰아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합병회사들의 지배주주가 같다면 사실상 지배주주 혼자 회사를 사고파는 거래를 진행하는 셈이다. 실제로 오토에버, 엠엔소프트, 오트론 3개 기업의 지배주주는 모두 현대차그룹이다.

엠엔소프트는 수익가치 평가에서 스스로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먼저 매출액 성장률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엠엔소프트 매출액의 연평균 성장률은 12.2%다. 하지만 수익가치 산정에는 향후 5년간 매출액 성장률을 5.2%로 낮춰 잡았다. 또 자율주행의 핵심기술인 정밀지도 기술을 가졌음에도 2025년부터 사실상 성장이 멈춘다고 전망했다. 2025년부터 영구 성장률을 1%로 적용한 것이다.

엠엔소프트의 독특함은 또 다른 합병회사인 오트론과 비교해도 드러난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를 대리하는 김종식 변호사는 “오트론은 향후 5년간 매출액 성장률을 23%로 잡았다”며 “현대모비스에 양도한 반도체 사업을 빼면 오트론의 연평균 성장률은 -8%다”고 말했다. 오트론은 소액주주 없이 현대차와 그 계열사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또 있다. 금감원은 회사 가치가 일방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부평가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는 회계법인이 준수해야 할 절차다. 이에 따르면 최근 2년간 거래가격, 과거 평가 실적 등이 존재하고 입수 가능한 경우 이를 본질가치와 비교해야 한다.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 조정할 수 있고, 이를 하지 않을 경우 사유를 밝혀야 한다.

엠엔소프트의 경우 최근 2년간 비상장주식 거래사이트 여러곳에서 거래가 됐다. 특히 증권플러스비상장 거래앱에서 확인 가능한 거래는 274건, 2만6766주 정도다. 하지만 회계법인은 증권플러스비상장 거래앱을 제외한 다른 거래사이트 두 군데만 참고해 적정가격을 도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각각의 비상장주식 거래사이트에서 거래된 가격을 바탕으로 적정가격을 추산해 보면 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의 합병비율은 1 : 1.45~1.46이 된다.

비상장주식 거래사이트의 거래가격을 토대로 계산해 본 합병비율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소액주주들은 지난해 12월 22일 금감원에 이의제기를 했다. 금감원은 이를 인용해 오토에버 측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 11일 엠엔소프트의 본질가치는 2664원 상승한 9만1045원으로 재공시됐다. 두 회사 간 합병비율로 따지면 1 : 0.9870764로 소폭 상승이다. 소액주주들은 이날 다시 금감원에 이의제기를 했다. 금감원은 지난 19일 이를 또 인용하며 합병에 여전히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오토에버 측 관계자는 “법에 따라 문제없이 기업가치를 산정했다”며 “합병 시 가치 평가 관련해서 금감원의 지적을 받는 것은 대부분 겪는 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정정요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신고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현대차그룹의 불공정 합병 논란

그렇다면 합병으로 돈을 버는 것은 누구일까. 오토에버의 지배구조를 보면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순서로 지분율이 높다. 이들 그룹 계열사 외에 4번째로 높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다. 오토에버 지분 9.57%를 소유했다. 지난 11일 공시된 합병비율로 계산해 보면 정 회장은 합병 후 오토에버 지분율이 7.35%로 하락한다. 하지만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가치는 27.53% 증가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136억원 증가하는 셈이다.

합병 전후 정의선 회장과 소액주주들의 자산 증감 비교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현대차그룹 내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며 “오토에버 주식 가치가 오르면 정 회장은 종잣돈을 마련해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내의 합병에서 불공정 논란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도 모비스의 일부 사업부를 글로비스와 합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모비스 지분을 갖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비율이 글로비스에 유리한 점을 이유로 반대해 무산됐다. 정 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23.29%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번 합병 시도도 2018년과 닮았지만 차이점은 있다. 주주 구성에 엘리엇과 같은 거대 기관 없이 이른바 ‘개미’들만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토에버를 중심으로 한 합병시도가 무산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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