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사용후 핵연료의 '역습'이 곧 시작된다
(시사저널=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경주 월성원전이 '가동 중단'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문제는 시간이다. 월성원전은 13개월 후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원전을 돌릴 수 없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시설인 '맥스터(Maxtor)'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노선인 2022년 상반기를 넘기면 월성 2~4호기는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맥스터 증설을 위한 '골든타임' 초침이 빨라지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스스로 다른 물질로 바뀌기 전에 인간이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없다. 방사성 물질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종류에 따라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 걸린다. 사용후 핵연료는 매우 뜨겁다. 그래서 원자로에서 꺼내 습식저장조에서 5~6년간 냉각한다. 이후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물인 '캐니스터', 직육면체 구조물인 '맥스터' 같은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열을 식힌다.
끝이 안 보이는 맥스터 증설 갈등
월성원전 캐니스터 300기는 이미 2010년에 꽉 차 밀봉 상태다. 맥스터 7기도 한계에 이르렀다. 사용후 핵연료 한 다발의 길이는 50cm, 직경은 10cm다. 무게는 약 23.8kg이다. 매달 발전소별로 하루 14~15다발씩, 연간 750톤의 사용후 핵연료가 나온다. 한수원에 따르면 월성원전 맥스터 용량 16만8000다발 중 97.6%(2020년 12월 기준)가 사용후 핵연료로 채워져 있다. 7기 중 6기는 이미 가득 찼다. 나머지 1기도 4분의 1만 비어 있다. 2022년 3월에는 이마저도 완전 포화상태에 이른다. 맥스터가 꽉 차면 사용후 핵연료가 갈 곳이 없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앞서 한수원은 2016년 4월, 월성원전의 기존 맥스터 부지 옆에 16만8000다발을 더 보관할 수 있는 맥스터 증설 계획안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기본계획'에 국민적 합의가 빠졌다며 2019년 재검토위원회(재검토위)를 출범시켰다. 원안위는 지난해 1월 회의를 열어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안'을 표결에 부쳤다. 김호철 위원은 "사고관리계획서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심사 중인데, 결과를 보지도 않고 증설 허가를 내주는 건 심의에 흠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병령 위원은 "먼저 허가를 하고 사고관리계획서는 나중에 봐도 된다"고 맞섰다. 표결 결과는 찬성 6표, 반대 2표. 맥스터 증설을 위한 운영변경 신청서를 낸 지 4년여 만에 허가가 났다. 한수원은 지난해 8월 공사에 들어갔고, 2022년 3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맥스터 증설 결정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정은 가시밭길이다. 재검토위는 지난해 7월 경주 시민 참여단 145명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81.4%가 맥스터 추가 증설에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조작설이 제기됐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공론조사에 한수원 협력업체 직원 21명이 동원됐다며 이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게다가 울산탈핵단체들은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울산이 공론화 과정에서 '패싱'됐다며 반발했다. 송철호 울산시장도 "원전 인근의 울산이 의견 수렴 대상에서 배제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재검토위가 결정한 원칙에 따라 시민참여단 구성과 숙의 절차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의견 수렴 절차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에너지교수협회도 "시민참여단이 신뢰하는 집단조사에서 원자력 전문가와 과학자 집단에 대한 신뢰도가 83%로 가장 높았다"며 당위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환경·시민단체들은 의혹투성이라며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서울행정법원에 맥스터 건설 무효 확인 소송을 내 결과가 주목된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2005년 정부가 방폐장을 유치하면서 경주에 사용후 핵연료 관련 시설을 짓지 않는다는 특별법을 어겼다.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키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에 제동이 걸리면 발전을 멈춰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사용후 핵연료 '폭탄 돌리기' 한계 도달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는 월성원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영 중인 한빛원전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은 2029년, 한울원전 2030년, 고리원전 2031년, 신월성원전 2042년, 새울원전 2065년으로 각각 예상되고 있다. 이들도 저장시설이 포화되면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월성원전에서 보듯 맥스터 증설도 쉽지 않다. 그리고 맥스터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해결은 영구처분시설을 짓는 것이다.
맥스터에 들어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40년 후에는 중간저장을 거쳐 영구처분시설로 옮겨야 한다. 또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쌓아놓은 폐기물들도 언젠가는 영구처분장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영구처분장 설치는 정권마다 논의만 무성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에 따르면 방사성폐기물 부지 확보에만 12년이 걸린다. 부지가 확보돼도 중간저장시설 건설,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 건설, 영구처분시설 건설 등에 30여 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용후 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한다고 밝힌 후 아직 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부터 20개월 동안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2016년 5월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법안을 수립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이 표류하고 있다. 정권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이러다간 원전 도시인 울산·경주·부산기장 전체가 핵폐기물 보관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검토위는 중장기 관리 방안 권고안을 지난해 말까지 내놓으려고 했지만, 올해 초로 일정을 미뤘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원전 해체 이전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 부지 선정도 못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핀란드는 2023년 운영을 목표로 영구처분시설을 짓고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 등도 부지를 확정하고 후속 조처를 진행 중이다. 이들 나라는 철저한 지질조사를 거쳐 주민을 안심시켰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며 30년 넘게 진행했다. 도중에 굴곡이 있었지만, 일관성 있는 태도로 설득했기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스위스 고준위방폐물 전문가인 잉고 블래슈미트 박사는 "부지 선정은 지질학적 안전성이 최우선이며, 정치·사회적 이유는 고려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은 외면한 채 '뜨거운 감자'에 손도 대지 않으려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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