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파국 치닫나..日 외무상 "위안부 판결 시정하라"(종합)

외부기자 기자 입력 2021. 1. 23. 09:08 수정 2021. 1. 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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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배상판결 확정, 한일 관계 주요 현안 부상 속 강창일 주일 대사 "사안 별로 대응해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AP연합뉴스
[서울경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23일 일본 정부를 피고로 한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이 확정된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 주도의 시정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이 담화에서 “이 판결은 국제법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즉각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판결이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의 한일 외교장관 간 ‘위안부 합의’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강창일 신임 주일본한국대사가 22일 오후 일본 지바(千葉)현 나리타(成田)시 소재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일본 정부는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의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이 소송의 각하를 주장하면서 재판에 처음부터 불응했다.그러나 재판부는 위안부 사안이 국가 차원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라는 점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판결을 강행했다.

재판 자체를 거부해온 일본 정부는 항소 시한인 22일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아 23일 0시를 기해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원고들은 배상금 확보 수단으로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매각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정부는 원고 측과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2018년 10월의 첫 징용 피해자 배상 확정판결을 계기로 악화 일로를 걸어온 양국 관계가 한층 파탄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왼쪽)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운데), 아소 다로 부총리겸 재무상(오른쪽)과 함께 22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각의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외무성은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나온 직후에도 남관표 당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집권 자민당 내 조직인 외교부회는 지난 19일 모테기 외무상에게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일본 국내의 한국 자산 동결, 금융제재 등을 포함한 “강력한 (대응) 조치”를 검토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 강창일 일본 주재 한국 대사는 한일 양국 우호 협력 증진·강화와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2일 오후 일본 나리타국제공항으로 일본에 부임한 강 대사는 공항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대사로 임명한 것이 한일 우호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이임하는 남관표 전 대사와 면담도 하지 않는 등 최근 양국 관계가 악화한 것에 대해 “사안별로 토론할 것은 토론하고, 협상할 것은 협상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사안별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는 뜻을 표명했다.

강 대사는 또한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약 106억 원)을 내는 것 외에 한일 양국이 협력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는 사업을 한다는 조건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한일 양국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사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출연금이 투입된 화해·치유 재단 해산 후 기금이 남은 것을 거론하며 “양국 정부가 그 돈도 합해서 기금을 만드는 문제에 관해서 얘기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았으며 재단이 해산한 것은 이사장이나 이사들이 자진 사퇴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일본 정부의 방역 기준에 따라 2주 동안 대사관저에서 격리한 후 신임장 제정(제출), 스가 총리 및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의 만남 등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그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잡혀 있지는 않지만, 대사관 측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각 당 지도부 등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일본의 일부 우익 언론이 강 대사가 과거에 ‘일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문제 삼은 가운데 그는 이날 일왕이 아닌 ‘천황폐하’라고 말했다. 앞서 강 대사는 이날 부임을 위해 출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고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며 “그런 메시지를 일본 측에 잘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 대사는 “지금 워낙 한일관계가 꼬여있어서 마음이 좀 무겁다”며 “하나하나씩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강 신임 주일 대사의 일본 부임 이후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 이슈가 한일 외교 의제에서 가장 주요한 현안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하지만 주한 일본대사관 등의 자산은 외국 공관에 대한 불가침을 정한 빈 협약의 보호를 받아 압류가 어렵다. 이 때문에 원고 측은 압류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경우 배상금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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