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로 그린다고 성착취·불평등이 없는 일 될까

한겨레 2021. 1. 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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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3) 성매매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사창가 특급 단골 툴루즈로트레크
성매매 여성을 '노동자'로 그렸지만
육체를 상품화해야 하는 현실 가리고
성 구매자, 포주의 '폭력성' 정당화
여성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은 드가
가난한 '어린 발레리나' 찾는 남성과
딸의 '가격 흥정' 나선 어머니 통해
오히려 여성의 처지 핍진하게 묘사
에드가르 드가, <무용수들, 분홍과 초록>, 1890년께, 캔버스에 유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되고 처음 시행됐을 때가 생각난다. 여성운동 진영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 제정 운동을 가열차게 해왔는데, 막상 시행하니 어안이 벙벙한 일들이 벌어졌다.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길거리에 나와 이 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것이다. 이들은 성매매 방지법이 자신들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침해한다고 항의했다. 개인적으로도 이 광경을 보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성매매도 노동’이며 성매매 여성들은 ‘쾌락 생산 노동자’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왔다. 성매매 여성이 착취당한다는 주장은 그들의 ‘직업 선택’에 대한 권리 침해이고, 성 보수주의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성매매를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 <페이드 포>를 쓴 레이철 모랜은 이렇게 못박는다. “성매매라는 것은 ‘성적 학대의 상품화’이며 보상이 있는 성적 학대”라고. 그녀는 자신이 했던 일이 ‘노동’이 아니라 몸 자체가 ‘상품’이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의 장부에서 나는 수요가 가장 많은 스트리퍼였다. 춤을 잘 춰서가 아니라(못 췄다) 젊음과 신체 때문이었다.” 즉 성매매업계는 처녀이거나 성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 판단되는 어린 여성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얘기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상품은 새것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매매를 노동으로 긍정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일한 효과는 돈만 내면 언제든지 성적으로 학대할 수 있는 ‘상품화된 육체’가 준비된다는 사실뿐이며, ‘성 노동론’은 이런 폭력을 가리는 낭만화라는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향한 이 같은 두 가지 시선은 은연중에 그림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동시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1864~1901)와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똑같이 19세기 파리에 만연하던 성매매 현장을 그렸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을 보는 관점은 극적으로 달랐다. 한쪽은 성매매 여성을 일종의 직업인으로 보았다. 회사에 나가 상사의 지시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고 정해진 임금을 받는 사람 말이다. 다른 한쪽은 성매매 여성을 계급 차이와 기울어진 젠더 권력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착취당하는 존재로 보았다.

툴루즈로트레크,성매매 여성의 친구?

툴루즈로트레크는 그중 전자였다. 그는 파리 뒷골목 밑바닥에서 살았던 성매매 여성을 즐겨 그렸다. 그림 중개인 폴 뒤랑뤼엘이 툴루즈로트레크에게 아틀리에로 안내해달라고 하자 그를 성매매 집결지로 데려갔다고 하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툴루즈로트레크의 그림은 성매매 여성을 ‘타락의 증거’로 묘사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미화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성매매 여성들도 툴루즈로트레크를 믿을 만한 친구라고 여겼다는 식으로 곧잘 소개된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물랭가의 살롱에서>, 1894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알비 툴루즈로트레크 박물관.

툴루즈로트레크가 1894년에 그린 <물랭가의 살롱에서>도 그런 시선이 감지된다. 이곳은 프랑스 파리의 사창가 살롱. 성매매 여성들이 둘러앉거나 서서, 손님이 찾아올 때까지 무료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몇몇은 몸을 긁거나 긴장을 푼 채 앉아 있는데, 이는 손님이 없을 때라야 겨우 허락되는 모습이었다. 오른쪽에 일부만 그려진 여성은 치마를 들어 올리고 있어 그녀가 파는 것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소파에 앉은 이들 중 등을 펴고 단정히 앉아 있는 사람은 오로지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뿐인데, 이 사람은 다름 아닌 포주이다. 포주는 여성들이 일할 순서를 결정하고 몸치장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툴루즈로트레크는 이렇게 성매매 여성의 일상 및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즉, 성 판매 여성들을 ‘파리의 도시노동자’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툴루즈로트레크가 성매매 여성의 일상을 자세히 그릴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이야말로 성매매 장부 최상단에 올라가 있는 ‘특급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창가에 한 번 가면 몇 주일씩 머물 만큼 돈이 많은, 백작 가문 도련님이었다. <물랭가의 살롱에서> 작품 속 검은 스타킹을 드러내고 비스듬히 앉은 이는 미레유라는 여성인데, 바로 툴루즈로트레크가 미레유의 단골손님이었다. 어디 미레유뿐이랴. 툴루즈로트레크의 친구이자 화상인 모리스 주아양에 따르면 “그는 반라의 여자들 엉덩이에 손을 얹고 자동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춤을 추어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그들의 자태를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들곤” 했던 사창가의 귀빈이었다.

툴루즈로트레크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였던 에두아르 뷔야르는 그와 성매매 여성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애인이었던) 툴루즈로트레크는 귀족적인 정신을 갖추었지만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고, 매춘부들은 신체는 멀쩡했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묘한 동질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툴루즈로트레크와 성매매 여성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9세기 말 가부장적 성차별 정서 및 사회경제적 신분 차이를 고려할 때 과연 툴루즈로트레크와 성매매 여성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서로 동질감을 느꼈다는 식의 발언은 성매매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데 툴루즈로트레크도 기여했으며, 성매매 여성들이 보통 감당할 수 없는 가난 때문에 성매매로 들어섰다는 불편한 현실을 감춘다. 어쨌든 툴루즈로트레크는 이런 성구매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엄숙한 성도덕으로부터 ‘해방된’ 예술가로 포장했고, 19세기 프랑스를 지배하던 성보수주의 규범에 반항한 화가로 평가받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툴루즈로트레크가 그린 ‘노동으로서의 성매매’는 성 구매자를 ‘서비스 이용자’로, 포주를 ‘사업가’ 혹은 ‘관리자’로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결과적으로 툴루즈로트레크의 그림이 성매매 현장의 폭력성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드가, 여성혐오자?

반면 드가는 성매매가 돈을 매개로 한 ‘일방적 권력 남용’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그림에서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가 1890년에 그린 작품 <무용수들, 분홍과 초록>도 그중 하나다. 이곳은 무대 뒤. 무용수들이 마치 사탕 포장지 같은 튀튀를 입은 채 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심호흡을 하고,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듬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에 몰려오는 긴장을 다스리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남성의 실루엣 일부가 보인다. 실크해트를 쓰고, 배가 조금 나온 것으로 보아 정장을 입은 나이 든 신사. 그는 누구일까? 발레를 지도하는 스승일까, 극장 관계자일까? 답은 성 구매자다.

19세기 파리에서는 돈 많은 남성들이 발레 공연을 많이 찾았다. 유독 발레라는 예술을 애정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 발레리나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당시 발레리나는 주로 노동계층에서 선발되었다. 여성의 복사뼈가 드러나기만 해도 단정치 못하다고 여겼던 그 시절에, 선정적인 차림에 다리를 내놓고 춤을 추는 발레리나가 가난한 집 딸인 것은 필연이었다. 상류층 남성 눈에 비친 발레리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노동계급 출신의 소녀일 따름이었으니, 고로 만만한 성적 사냥감이었으리라. 발레 문화의 주도권을 러시아에 내어주고 인기가 쇠하여 가던 프랑스 발레 공연업계는 신사들의 발걸음을 반색하며 환영했다. 이들은 거액의 찬조금을 내는 돈줄이었기 때문이다. 신사들은 그 대가로 무대 뒤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어린 무희들의 몸을 이리저리 각을 재며 탐색한 뒤 ‘후원을 해주겠다’며 은밀한 제안을 하곤 했다.

에드가르 드가, <기다림>, 1882년께, 종이에 파스텔,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

비극은 발레리나의 어머니들도 딸들의 성매매를 적극 부추겼다는 데에 있다. 드가의 다른 그림 <기다림>을 보자.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일까. 어린 발레리나가 긴장과 초조함 때문인지 발목을 문지르며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 옆자리 검은 옷의 중년 부인은 발레리나의 어머니. 그녀는 딸 곁에 늘 붙어 하루 대부분을 함께했다. 공연장을 찾는 남성과 딸의 접촉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기 위해서인데, 그렇다면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까? 천만에! 놀랍게도 성매매 ‘가격 흥정’을 위해서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딸의 몸에 더 비싼 값을 부르는 후원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참담한 현실은 “극장은 상류계급 남성들을 위한 창녀촌”이라는 당시 비평가의 일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이런 일이 흔했는지 한 전직 무용수는 이렇게 탄식했다. “일단 오페라에 들어오고 나면 창녀로서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곳에서 고급 창녀로 길러지는 것이다.” 과연 성매매 여성의 현실을 핍진하게 그린 이는 툴루즈로트레크일까, 드가일까.

흔히 드가를 ‘여성혐오자’라고 말하곤 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여성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화가 장프랑수아 라파엘리도 “드가는 여성의 모습을 품위 없이 그리는 일에 주력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는 여자를 싫어할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는 앞서 보았듯 얼굴이 뭉개져 있거나 땀 흘리거나 푸념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등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을 현실 속의 인간으로 대한 증거가 아닐까. 무엇보다 드가는 누드모델 출신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비롯해 메리 커샛, 마리 브라크몽 같은 여성 화가들을 발탁하고 작업을 격려한 화가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성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기에, 성매매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처지를 툴루즈로트레크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매매 여성의 삶 역시 드가가 묘사한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성구매 남성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고, 성매매 여성만이 사회적으로 낙인찍히고 비난받는다. 성매매 여성들이 대체로 가난한 점도 동일하다. 이러한 상황은 설사 성매매를 노동으로 합법화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운동가 신박진영의 책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에 따르면,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의 경우 성매매 업소가 늘어나면서 주변국의 가난한 여성들이 ‘이주노동자’란 이름으로 인신매매 등을 통해 대거 유입됐고, 그 결과 성매매 가격은 하락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포주들은 더욱 노골적인 서비스를 강요했고, 성매매 여성들은 과도한 업무에 경제적 보상마저 줄어들어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합법화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저렴한 가격에 죄책감 없이 성구매를 원하는 남성들의 욕망이 실현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드가의 그림을 툴르주로트레크의 그림보다 더 유심히 봐야 할 이유가 아닐까.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뤄보려고 한다. 3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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