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의 시간, 게임 속 종말 세계에 씨앗을 심었다

한겨레 2021. 1. 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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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토요판] 이런 홀로
재택에 지친 '겜알못'의 플스·피시 게임 입문기
코로나19 백신을 맞는다 해도
예전 일상 돌아갈 수 없을 것
그렇다면 세상은 이미 '끝' 아닐까
플레이스테이션·피시 게임을 하며
문명의 폐허를 차지한 대자연에서
평화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고
도시의 폐기물을 정원으로 가꾼다
'시대의 종말'을 명상하는 기분이다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 누리집 갈무리

벌써 몇달째 재택근무인지 모르겠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누군가는 돈을 내면서까지 리추얼(규칙적인 습관) 관련 앱을 깔고 애써 매일의 습관을 만들어낸다고 하지만 내 경우 생활은 엉망으로 단순화되었다. 눈을 뜨면 일한다. 먹는다. 잔다. 다시 눈을 뜨면 일한다. 먹는다. 또 잔다. 운동도 하지 않고, 누굴 만나지도 않았다. 샤워나 머리 감기를 거르는 날도 많아졌다. 출퇴근이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대신해 주어진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내 의지로 시간을 쪼개 무슨 행위인가를 해야 하는데, 한번 눌어 붙은 떡처럼 퍼진 바이오리듬은 좀처럼 바꾸기가 어려웠다. 무기력은 더 큰 무기력을 낳고, 떨어진 근육량 수치는 더 떨어진 근육량 수치를 낳을 뿐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중고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연말 나에게 주는 선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 여차하면 다시 팔 생각으로 당근마켓에서, 구버전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내적인 동기는 정말로 그랬다. 악수든 호수든 좋으니 무슨 수라도 두자는 마음이었다.

연말에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지난해 초 처음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를 돌아봤을 때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나 길어졌다는 것 자체에 대한 놀라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일시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삶의 수많은 변화들이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것에 대해 이제는 특별한 자각이 없다는 데 대한 놀라움에 더 가까웠다.

물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고통받는 다른 많은 업종 종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운 좋게도 거기서 비켜서 있었다. 코로나19로 일어난 생활의 변화는 첫 충격파가 가시자 이내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것도, 마스크를 쓴 얼굴을 보는 것도, 식당에서 신원 정보 체크를 위해 아무런 저항 없이 큐아르(QR)코드를 찍는 것도, 외출 뒤 돌아오면 손 씻기 순서에 따라 손을 씻는 것도, 배달로 모든 생필품을 조달하는 것도, 영화를 집에서 보는 것도, 해외여행을 꿈꾸지 못하는 것도, 화상 회의와 화상 생일파티와 화상 결혼식도 완전한 일상이 되었다.

불과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그중 어느 것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식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언제 다시 출근을 할 수 있을까를 가늠하지도 않는다. 이제 재택근무로 처리하지 못할 일들은 하나도 없다. 물리적인 회사 사무실은 점차 사라질 것이고, 나는 이동 시 개인 공간의 확보와 편의를 위해 조만간 자차 구입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땅을 밟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새벽녘 나는 종종 창밖의 텅 빈 도로와 점점이 불빛이 밝혀진 집들을 바라보며, 이미 인류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 상황에 대해 내린 진단을 몸으로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글로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코로나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절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이곳이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이고, 이것이 내가 향후 적어도 십수년간 내 인생의 중반기를 보내야 할 상수의 조건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공간은 제약되고 시간이 확장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넓히는 일이었다. 나는 뭐라도 걸려라 하는 생각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중고 게임들을 잔뜩 사들였다. 4케이(K) 고화질 모니터 안에 펼쳐진 놀랍도록 생생한 그래픽의 게임 속 세계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는 유튜브로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실제로 진동이 오는 듀얼쇼크(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조작기)를 들고 내 뇌와 연결된 손가락으로 그것을 미세하게 조종하며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정교한 이미지를 마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신세계였다.

아름다운 폐허의 세계로 떠났다

나는 ‘라스트 오브 어스’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거쳐 ‘호라이즌 제로 던’에 정착했다. (그렇다. 명작만 샀다.) 연말 작정하고 내놓았던 긴 휴가는 에일로이로 시작해 에일로이로 끝났다. 호라이즌 제로 던의 주인공 에일로이는 부족의 추방자이자 기계 동물을 사냥하는 법을 습득한 여전사다. 이곳은 3040년 멸망한 인류 문명의 폐허를 대자연이 차지한 세계다. 인류는 멸망 뒤 기술력을 잃고 원시 부족사회로 회귀했고, 이 세계에는 인류에 적대적인 고도로 진화한 기계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에일로이는 비밀에 휩싸인 위험으로부터 세계를 구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상당한 시간을 그냥 그 세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보냈다. 기계 동물의 약점을 공략해 해치우고, 무기를 구입해 개조하고, 적대적인 기계 동물들을 강제 전환해 타고 다니고, 도적단과 전투하고, 점차 전투 능력이 강해지며 메인 퀘스트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주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이상한 평화로움이 있었다.

여우와 멧돼지를 잡고 약초를 캐며 다양한 식생의 들판과 깎아지른 절벽, 무성한 식물들이 차지한 폐허의 유적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게임 속에선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비가 오다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다시 눈부신 태양이 비치는 아침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강에서 수영을 했고 물고기를 잡았다. 그러면 강에서 빠져나온 에일로이는 물방울을 털어내며 윤기 나는 젖은 얼굴로 “음, 상쾌하군”이라거나 “쓸 만한 고기야”라고 말을 했다.

그곳은 분명 폐허였지만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오래전 그곳에 살던 ‘미래’ 인류는 스스로 붕괴해 어디론가 사라졌고, 무한히 뻗어나간 식물들로 뒤덮인 광막한 공간만이 남아 있다. 혼자 그 아름답고 광막한 공간 여기저기를 누비는 것은 상당히 고독한 일임이 분명했지만 오직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자유와 해방감이 있었다.

이제 나는 멸망 후 세계에서 폐허의 정원을 꾸미는 피시(PC) 게임 ‘클라우드 가든스’로 시간을 보낸다. 게임과 인터랙티브 토이의 경계에 있는 이 이상한 게임은 멸망한 세계에 씨앗을 심고 식물들을 자라게 해서 그럴듯한 배경을 만들어내는 게 전부다. 오랫동안 방치된 주차장, 폐건물, 버려진 기차 같은 배경에 씨앗을 심고, 빈 맥주병이나 녹슨 양철통, 고철 하수도관 같은 것들을 배치하면 초목이 점차 자라나 쓰레기 가든을 만들어낸다. 식물은 흥미롭게도 도시의 폐기물인 인공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자라난다.

이 과정은 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는데, 이것들을 한 폴더에 모아놓고 하나씩 플레이해보는 일이 내가 요즘 매일 하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폐허의 주차장이 정적 속에 점차 자라나는 식물로 뒤덮이는 모습, 이 비장한 소형 디오라마를 볼 때마다 나는 시대의 종말을 명상하는 기분에 빠진다. 무엇보다 그것들은 내가 만들었다는 효능감을 주면서도 꽤 아름답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코로나로 집에 처박히게 된 ‘겜알못’의 플스 입문기에 불과하다. 늘어난 시간을 보낼 공간은 넓혔어도 근육량 수치는 0을 향해 수렴하고 있을 것이다. 다이나믹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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