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농민혁명가로 그린 이단아

한겨레 2021. 1. 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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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36)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1922~1975)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창작활동
문명, 도덕, 가족 등 기존 질서 비판
최하층 삶 소설로 좌우에서 공격받아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위키피디아

2020년에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아무튼 비행하지 않아 다행이다. 지난 세월 내가 했던 몇차례 비행도 기후변화나 코로나19 발생에 기여했으리라. 그럼에도 또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되살릴 수 없는 추억이 더욱 사무친다.

몇해 전 유럽 최초로 무료 대중교통을 실시한 ‘붉은 도시’ 볼로냐도 그중 하나다. 볼로냐 하면 움베르토 에코가 생각나고, 이 세상 어디보다 책이 있는 구석방이 최고라는 그의 말에 요즘 더욱 고개를 끄떡이지만, 그는 볼로냐대학 교수를 지냈지 볼로냐 출신은 아니다. 볼로냐 출신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평생 비슷한 회색의 정물화만 그린 절제의 화가 조르조 모란디,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로 폭력이나 성의 대명사 같은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있다. 소설가, 시인, 기자, 배우, 비평가, 시나리오 작가, 화가, 삽화가, 정치적 아웃사이더, 성소수자 등으로도 불리는(그 각각이 별개가 아니라 모두 통합된 르네상스적 인간 같은) 파솔리니는 평생 오로지 명상하는 은둔 화가로 산 모란디와 많이 다른 듯하지만, 자본주의 이전의 신비를 갈구한 점에서 서로 통한다.

기존 예수와 다른 영화 <마태복음>

1945년 이후 유럽 사회주의의 핵으로 떠오른 ‘붉은 도시’ 볼로냐도 그 전에는 파시스트 도시였다. 그 핵심에 파솔리니의 아버지와 같은 귀족 출신의 고위 파시스트 직업군인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농가 출신 여성이 낳은 파솔리니 아들로 여기지 않아 평생 아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그 죽음도 아들을 기쁘게 했다.

아버지 같은 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피해 어머니의 고향인 알프스 산골 마을로 이주하여 10년을 살면서, 자본주의와 무관하게 사는 농민에 대한 사랑을 그곳 방언으로 노래한 첫 시집 <카사르사의 노래>를 1942년에 내고, 농민들의 공유 정신과 같다는 이유에서 공산당에도 들어갔다. 그사이 1940년부터 3년간 볼로냐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1947년에는 공산당 지역 대표로도 활동했지만, 대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반란과 자신의 동성애자 혐의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한 뒤로는 평생 공산당과 대립했다.

그 뒤 몇해 동안 로마 빈민가에서 교사로 일하며 최하층 사람들을 그린 소설인 <삶의 아이들>과 <폭력적인 삶>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빈민가의 불량배가 권력에 저항하고 격렬한 파업을 직접 경험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소설에서 민중혁명을 꿈꿨지만, 그 후 민중의 힘이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혁명에 대한 기대는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의 삶을 사는 빈민에 대한 애정과 그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은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그가 만든 모든 작품에 대해 가톨릭과 우파는 그가 타락한 사람들을 다룬다고 비난했고, 좌파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위험하다는 오해를 사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좌우 어디와도 타협하지 않는 소수자 이단의 길을 계속 걸었다.

1950년대에는 잡지를 창간해안토니오 그람시의 사회주의와 반자본주의적 공동체 이념을 결합하여 당대 부르주아 중심의 정치와 문화를 비판하고, 그람시가 예찬한 프롤레타리아를 예정된 혁명적 전위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이전의 공유 의식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찬양했다.

1961년에는 앞서 발표한 두 편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여 빈민가 불량배들의 뿌리 뽑힌 삶을 바흐의 음악 및 중세 종교화 이미지와 결합하여 묘사한 첫 영화 <걸인>을 만들었다. 영화는 시적 예술, 즉 실재를 가지고 실재를 표현하는 ‘사실적 시’라고 하는 영화론을 전개한그각종 사회문제를 <걸인>처럼 신화 및 고전과 함께 묘사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위키피디아

후자 계열의 첫 작품인 1965년의 <마태복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그 어떤 예수 영화와도 다르게 한 치의 과장이나 생략도 없이 <마태복음>을 거의 그대로 진지하게 옮긴 이 영화는 예수의 혁명적인 가르침이 오늘의 기독교도들이 기독교라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남부의 헐벗은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연기와 무관한 농민들을 배우로 기용하고 보티첼리에서 루오까지의 다양한 종교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 구성과 바흐에서 모차르트까지의 종교음악 및 흑인영가를 삽입하여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배가한 이 영화는 그 훨씬 뒤에 만들어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비롯한 여타의 예수 영화들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 고초를 과장하여 눈물샘 자극만을 노린 것과는 반대로 예수를 불온한 농민혁명가로 묘사한다. 무신론자인 파솔리니 이상으로 예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

<살로, 소돔의 120일> 영화 만든 뒤 살해당해

1960~70년대에 파솔리니는 이탈리아가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소시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파시즘에 의해 다름, 특히 문화적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소비사회와 부르주아의 천박함을 경멸하고, 성적으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배척당하는 괴로움을 책과 영화와 음악으로 표현한 그에게는 좌우 모두가 적이었다.

파시스트들이 벌이는 가학과 자학이 뒤섞인 최후의 만찬을 그린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을 1975년에 만든 뒤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살로, 소돔의 120일>에 출연했던 당시 17살의 피노 펠로시가 범인으로 지목돼 처벌까지 받았으나, 그는 2005년 자신은 협박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사건 발생 때부터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이 많았지만, 결국 재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사드 후작의 소설 <소돔의 120일>을 1944년 이탈리아 배경으로 재현한 <살로, 소돔의 120일>은 사드 원작에 나오는 모든 종류의 성적 고문에다가 동성애, 불결 취미, 항문애 등까지 보여주고 희생자들은 어떤 저항도 없이 피학적 태도로 일관하게 하여, 죽기 직전의 파솔리니가 극단적인 허무주의, 즉 파시즘은 도저히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식의 뿌리깊은 절망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파시스트 음악인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흐르고, 파시즘을 지지한 에즈라 파운드의 시가 낭송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특히 그렇다. 최근 한국에서 그런 음악과 시가 유행하기에 더욱 몸서리쳐진다.

파솔리니는 문명, 도덕, 사회, 가족 등을 거부한 극소수 이단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예수나 오이디푸스를 비롯한 모든 주인공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층의 반역자로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모든 가치와 도덕을 부정한다. 게다가 그들의 저항은 이성이나 전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전의 농민이나 이후의 빈민이 갖고 있다는 순수한 의식에서 나온다.

반면 그의 영화에서 상류의 유산계급 인간들은 모두 탐욕이나 무기력 또는 위선적인 존재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는 부정적인 증오의 존재로, 사랑의 대상으로 표현되는 유일한 여성인 어머니와 대립한다.

“작가로서의 모든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활동은 아버지와의 투쟁에서 비롯된다”고 한 그에게 아버지는 모든 권력의 상징으로 투쟁의 대상이자 출발이다. 결국 그 투쟁에서 실패하고 죽임을 당하지만, “인간 조건에서 지성은 오직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진실 속에 있다는 확신을 의심하면서 번민할 때만 얻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러니 자네는 자네 자신에게 가차없이 엄격한 태도를 취해야 할 거야.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니 부디 자네가 잘되길 빌겠네”라고 그가 친구에게 했던 말은 지금 우리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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