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딸기농사로 수출탑 20만불 달성..32세 청년 양태영씨

한송학 기자 2021. 1.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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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부친 사망에 귀농..3년만에 수출 20만불 달성
농업인대학서 공부..과학적 신농법 배워 농사에 접목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양태영씨. © 뉴스1

(경남=뉴스1) 한송학 기자 = "옛날 방식만으로는 농사를 잘 지을 수 없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새로운 농법을 교육받아 정확하게 접목했을 때 성과는 배가 됐습니다"

올해 나이 32세로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양태영씨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쳐났다. '농사나 제대로 알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앳된 얼굴의 양씨는 농사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만큼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열정에 차 있었다.

양씨는 지난해 20만불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지역에서는 농사 잘 짓는 '딸기 농사꾼'으로 소문나 있다.

양씨는 진주시 농업인대학 딸기반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함께 대학을 다닌 동기들은 양씨를 '무슨 일이든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씨의 딸기 농사 시작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딸기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물려받아야 했다. 양씨는 기반을 잡아가던 자기 일도 포기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진주시 대곡면으로 귀농했다. 당시 나이 30세 때이다.

그는 "2018년 2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농삿일을 물려받아야 했다. 하우스 25동의 딸기 수확 중 갑자기 사고가 나 급하게 정리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농사일을 정리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아내를 설득해 퇴직하고 귀농을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고 농사에 대한 지식도 없었던 터라 어려움도 많았다.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딸기 농사를 봐왔고, 힘쓰는 일을 조금씩 도와준 경험이 다였다. 부친 지인들과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그해 수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다음 해 농사였다. 딸기 모종을 키우는 방법도, 심는 방법도 몰랐다. 어렵게 모종을 심어 놓으니 이제는 태풍에 하우스가 침수됐다. 피해액은 1억원에 달했다.

양씨는 "하우스 25동의 모종이 태풍에 침수됐는데 앞이 캄캄했다. 모종을 구할 때도 없어 올해 농사는 망쳤다고 생각했다. 살릴 수 있는 모종을 살려보기 위해 침수된 모종 중 괜찮은 모종은 옮겨 심었고, 15동의 하우스로 농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딸기를 잘 키워내야 하는 일이 남았지만, 딸기 농사 지식이 전혀 없었다.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충은 가르쳐 주었지만, 진짜 정보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진주시 농업인대학이었다.

양씨는 "아는 분 소개로 농업인대학에 들어갔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농사 방식도 기존과 많이 다른 것들을 배웠다. 대부분 딸기 농가는 전통적 방식을 고집해 농사를 짓는데 저는 대학에서 배운 신농법을 적용해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농업인대학에서 양씨는 궁금한 것은 주변 동기들과 담당 교수들에게 물어보는 등 공부에 대한 집요함을 보이기도 했다. 2개월짜리 컨설팅부터 심화 과정 등 공부를 했고, 딸기반 회장까지 맡았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것을 전통 방식에 접목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딸기 농사 방식을 습득했다.

양태영 씨가 재배한 딸기 '매향' 품종. © 뉴스1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해 농사는 성공적이었다. 하우스 규모와 주변 농장들과 비교하면 큰 성과는 아니었지만 10만불 수출탑을 달성했다. 태풍이 휩쓸고 간 하우스에서 모종을 건져내 농사를 시작하면서 남들보다 출하가 2개월 정도 늦었지만, 수확량과 작황이 좋다고 평가받았다.

그는 "공부를 해보니 많이 달랐다. 기존 농법 중 솔직히 말도 안 되는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도 있다. 물, 온도, 비료 사용법 등 과학적인 자료가 있는데도 전통을 고집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운 데로 실천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접목하고, 해외 선진 사례도 배우는 등 정성을 다해 딸기를 키워냈다"고 말했다.

다음 해 농사도 태풍을 피할 수 없었다. 11동이 침수됐지만, 대비한 터라 모종 여유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태풍 등 자연재해 피해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나아가 수해에 취약한 논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우스 부지를 높이고 수로를 낮추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수해의 원천적인 요소를 차단했다.

당연히 성과도 좋았다. 이때도 태풍 영향으로 남들보다 수확이 1개월가량 늦어졌지만 20만불 수출탑을 달성하는 결과를 얻었다. 3년차 농업인 치고는 성공적인 성적표다. 투자 비용을 아끼고, 퇴비를 안 쓰고 농사를 짓는 방식과 상토 재배도 딸기 농사 성공 견인의 노하우라고 그는 자평했다.

양씨는 "투자 비용을 아낀 것은 퇴비를 쓰지 않은 것이다. 토양검사를 시에서 무료로 해주는데 토양검사를 토대로 한 간비 처방을 받아 퇴비를 대신했다. 딸기 재배는 배드를 고설 시설로 변경해 상토 재배를 했다. 이런 방식은 교육에서 얻은 것이다. 정확한 처방으로 부족한 것만 보충한 것"이라며 농사 노하우를 풀어놨다.

양씨의 딸기는 매향 품종으로 현재 동남아,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으로 전량 수출된다.

귀농 3년 만에 성공한 농사꾼이 된 양씨는 무작정 귀농보다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딸기 농사를 비롯한 모든 농사는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대출 등 남의 돈으로 무작정 농사를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다. 수익이 그만큼 나야 하는데 첫 농사에서 수익을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교육을 받아라. 농업인대학 등 무료 교육도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뛰는 교육도 추천한다. 현재 농촌에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직접 농가에 가서 일을 배우는 것도 진짜 교육"이라고 조언했다.

양씨는 앞으로의 계획은 농사 면적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매출을 늘리려면 면적을 넓히는 게 일반 상식인데, 양씨는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인력에서 최대의 효율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올해는 25동에서 16동으로 규모를 줄였다. 면적이 넓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관리가 가능한 인력을 써 농사를 지어야 최대 효율이 나온다. 혼자서 관리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양태영씨가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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