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노숙인이 춤췄다, '저녁밥' 먹을 생각에..

남형도 기자 2021. 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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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하종 신부님 '안나의 집', 코로나19에도 매일 노숙인 700여명에 도시락.."대표 그만두는 게 꿈이에요"
빛처럼 웃는 사람, 하느님의 종이라 이름 지은 사람. 김하종 신부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지난해 9월3일, 폭우가 퍼붓던 날이었다. 몸이 앙상한 83세 할아버지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에 찾아왔다. 우산도 없이 온 터라 몸이 쫄딱 젖어 있었다.

김하종 신부(65)가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우산도 없이 어떻게 오셨어요?"

그는 지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신부님, 배가 너무 고파서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습니다. 다른 무료 급식소가 다 문을 닫아서요."

도시락을 주니 그는 허겁지겁 먹었다. 지저분한 옷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가족도, 집도 없어 지하철역에서 산다는 사람. 아내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사업은 부도 나서 자식마저 등졌다. 그리 노숙한 게 16년 됐다고 했다.

그가 밥을 다 먹자 김 신부는 우산을 들었다. 지하철역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노인은 더 해줄 게 없어 미안해하는 신부를 꼭 안아줬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없는 것 같아요. 꾸준히 밥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만난 '산타 신부님'
도시락을 받으러 온 노숙인들에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 외치며 다니는 김하종 신부./사진=남형도 기자
'푸른 눈의 산타', 김하종 신부(65)를 다들 그리 불렀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봄이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세상이 온통 멈춰 있을 때, 노숙인을 위한 도시락을 만드는 곳이 있다고 해 찾아갔다. 그날 하루 봉사하고 기사를 썼다.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 김 신부에게 전화가 왔다. 덕분에 정기후원자가 120명 늘었다고 했다. 무척 고단한 퇴근길임에도 기뻤었다.

오랜만에 그를 찾은 건 책을 냈다고 해서였다. 제목은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 코로나19에도 하루도 문을 닫지 않고 밥을 지은, 김 신부가 기록한 275일이 담겼다.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속마음이 그랬던 건 첫 만남에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있어요. 좋은 걸 보면 그걸 따라하고 싶어지지요." 그러니 알려지길 바랄 수밖에.

그리고 지난해 12월, 두 번째 만남. 하늘색 니트에 회색 곱슬머리, 여태껏 지은 죄(罪)를 다 고해성사해도 품어줄 것 같은 얼굴로 김 신부가 날 반겼다.

멀쩡한데 왜 밥 주냐, 그 얘기가 맘 아파
안나의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받기 위해 우산을 쓰고 휠체어를 탄 채 기다리는 노숙인./사진=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기자: 신부님, 요즘은 어떠신가요?
신부: 코로나19가 또 많이 올라갔어요. 도시락은 그대로 하고 있고요. 3~5월엔 노숙인들이 800명까지 왔는데 요즘은 600~650명 정도 와요. 그래도 닫았던 다른 급식소도 많이 열었어요.

기자: 봉사자 분들도 계속 오시고요?(그는 이걸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라 표현했었다)
신부: 매일 25~30명씩 오지요. 너무 아름다워요. 봉사자 중에 7살 때 미국에 입양됐다가 43년만에 한국에 온 분이 있어요. 셰프로 성공했는데, 양부모님은 돌아가셨대요. 이제야 여유가 좀 생겨서, 한국에 계신 친부모님 도와주고 싶다고요. 너무 멋있지요.

기자: 그리고 여전히 힘드실테고요.
신부: 마음이 아픈 건 이런 얘기에요. 그 사람 멀쩡한데 왜 밥 주냐고요. 안나의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옷을 주고 씻을 수 있고 이발할 수 있어 외모 괜찮아요. 그런데 한 시간씩 이야기 나눠보면 다 어려운 사람이지요.

기자: 그러게요, 사정이 괜찮으면 이 추운 날씨에 몇 시간씩 기다릴까 싶기도 하고요.
신부 : 어제 경기도 수원에서 한 80대 할아버지가 셔츠만 입고 오셨어요. 도시락 받겠다고 두 시간씩 추운데 기다리셨지요. 애들처럼 예쁘게 말 잘 듣고 서 계시더라고요. 좋은 잠바 하나 드렸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노숙인은 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한 끼 도시락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노숙인의 가방엔 눈이 쌓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없다고./사진=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기자: 아마 노숙인에 대한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신부: 일이 없어서 노숙하는 게 아니에요. 문제가 있어서에요. 심리, 사회성, 성격, 육체적, 경제적 문제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이랑 못 어울리는 문제가 제일 크지요. 그걸 잘 못해요.

기자: 맞아요, 저는 사실 노숙인이 뭘 하다가 망한 사람만 있는 줄 알았었어요.
신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생긴 문제에요. 부모에게 버림 받고, 학대 당하고요. 우리가 아기였을 때요. 엄마가 와서 밥 주고, 씻겨주고, 도와주면 '나도 괜찮구나, 소중한 사람이구나' 생각해요. 그럼 자신감이 생기지요.

기자: 노숙인 분들은 그 반대 상황이 많았겠군요?
신부: 그렇지요. 배고플 때 때리고, '가만히 있어라' 야단치고, 아빠는 술 마시고. 그러니 자신감이 없어요. 그럼 기초가 안 된 집 같아요. 사회 생활을 못하고, 생활이 흔들리고요.

기자: 안타깝네요, 사실 스스로 선택한 삶도 아닐텐데요.
신부: 맞아요, 그런 삶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제대로 살고 싶다'는 맘이 들어도 일어설 힘이 없어요. 그 때 손을 내밀고 '함께 가자', 그게 안나의 집 역할이에요.

안나의 집에선 자립을 돕는다. 학교라고 비유했다. 무료로 숙식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다. 좋을 것 같지만 의외로 자유 분방히 살던 노숙인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한 달 일하고 나갔다가 돌아오고, 두 세 달 일하다 그만뒀다 돌아오고, 그 다음엔 1년. 그렇게 차츰 나아진다. 3년 동안 안나의 집에서 빚을 다 갚고, 돈 1500만원을 모아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찾아간 노숙인이 있었다. 김 신부의 자랑이자 보람이랄까.

커피를 호로록, 천천히 마시는 그를 따라 나도 마셨다. 이 사람을 닮고 싶다, 그런 마음이랄까. 목을 잠시 축인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다이어트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하루 한 끼를 먹기 위해 안나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사진=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기자: 책은 어떻게 내신 건가요?
신부: 안나의 집이 코로나19에도 한 번도 문 닫지 않았어요. 봉사자도 부족하지 않았고요. 아름다워요. 그걸 매일 일기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희망을 주고 싶어서 책을 만들었어요.

기자: 저야 잘 알지요(웃음).좋았던 얘기 좀 들려주세요.
신부: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같이 안나의 집에 봉사 왔어요. 스무살이 돼서 취직한 거에요. 첫 번째 월급을 가지고 왔더라고요. 좋은 일에 써달라고, 기부하고 싶다고요.

기자: 그게 얼마나 귀한 마음일지요. 정말 좋네요.
신부: 60대 정도 되는 자매님 얘기도 기억납니다. 식당에서 설거지, 청소, 홀 서비스 등 궂은 일은 다 하고 살아왔다고요. 돈이 생기면 금을 샀었는데, 그걸 안나의 집에 가져왔어요. 금으로 된 열쇠였어요.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일에 써달라고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사진=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기자: 아마도 그런 좋은 기억들이, 더 많은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힘이 됐겠지요.
신부: 맞아요, 가장 힘들었던 건 코로나19가 의심되는 분이 왔을 때였어요. 열이 많아 119를 불렀고, 저도 몸이 안 좋았지요. 다음날 병원에 다녀왔는데 이틀 내내 너무 힘들었어요.

기자: 얼마나 걱정 되셨겠어요.
신부: 저야 병원 가고 치료하면 되는데, 600~700명 식사를 못하는데 어쩌나. 그게 너무 걱정되고 힘들었어요. 여기 오는 분들 하루 한 끼만 도시락 먹어요. 그걸 몇 번에 나눠 먹어요. 그마저 못 먹게 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안나의 집서 정성껏 만든 도시락을 손에 든 노숙인./사진=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그를 바라보는 수백여명의 노숙인들, 버겁고 힘든 책임감. 그걸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은 또 얼마나 컸을까.

대표이면서 고작 월급 60만원만 받고, 봉사자들에겐 "신부님, 제발 좀 쉬세요"란 말을 들으며 안나의 집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사람. 오늘은 괜찮을까 싶어 매일 가슴 졸이며 수백 개의 도시락을 또 만들고, 그걸 나눠주기 전 노숙인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다니며 외치는 사람. 그의 소박하고도 대단한 꿈은 이랬다.

안나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라고 믿는 사람. 그래서 예수님의 상처를 모시며 살기에 행복하다고 기도하는 사람이 김하종 신부다./사진=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꿈이 하나 있어요. 대표로 책임지지 않고 그냥 봉사자를 하고 싶어요. 친구인 노숙인들과 이야기 나누고, 글로 쓰고, 알려주고요. 대표를 세 번 그만두려 했는데 실패했어요(웃음)."

그 얘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를 찾는 전화가 왔다. 그저 존경하고 닮고 싶은 귀한 사람이라 여겼었는데, 이젠 너무 무거울 그의 어깨가 홀가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노숙인 봉사를 처음 시작한 게 1990년, 30년 가까이 그 무게를 견디게 한 힘은 대체 뭘까. 마지막으로 김 신부는 성경 구절 하나를 들려줬다.

"믿음이에요. 베드로(예수님 제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데, '여기가 어디야'하고 바다를 보니 빠지는 거죠. 저도 그래요. 예수님 바라보며 '아, 오늘도 괜찮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요. 그것 뿐이에요."

그리고, 김하종 신부의 책 속 귀한 이야기들
좋은 걸 보면 좋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 곁에 두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사진=기사 마감하느라 커피가 필요한 남형도 기자
2020년 2월 23일 일요일
휴일 저녁이었지만 여기저기에서 식당을 폐쇄하란 메시지를 받았다. 시청 담당자에게 연락해 안나의 집 상황을 전달했다. 가난한 거리의 550명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문을 닫는다면, 이 중 70%는 안나의 집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하루의 한끼인데 문을 닫아버린다면…….

2월 24일 월요일
하루에 유일하게 한 끼 식사만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등을 돌려선 안 된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직원들과 함께 논의한 결과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했다. 사실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낀다. 이곳에 오는 자원봉사자들도 걱정된다.

두 어깨에 큰 책임감이 느껴진다. 매일 새벽 3시면 잠에서 깨어난다. 잠잘 때도 악몽으로 가득한 꿈을 구어서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가 많다.

3월 3일 화요일
아름다운 인생. 마음 안에서 깊은 행복을 느낀다. 나의 오늘은 멋졌다. 껍질을 벗긴 감자 20kg, 얇게 썬 양파 10kg, 자른 당근이 8kg. 내가 한 일의 결과물이다. 가슴에 가득 찬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전해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라 믿는다.

3월 11일 수요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길을 건널 때였다. 어떤 사람들이 크게 소리치며 화를 내었다. "당장 이 사람들한테 음식 나눠주는 거 멈추세요! 당신이 이 동네에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어요." 이 말이 비수가 되어 마음을 찔렀다. 많이 아팠다.

4월 25일 토요일
노숙인 친구들을 위해 761개의 도시락이 준비되었을 때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커다란 행복과 끝없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오늘도 이들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신부님, 식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월 8일 금요일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한국의 풍습대로 카네이션 한 송이씩 나누어드리는 건 어떨까요?" 제안대로 노숙인 친구들에게 도시락과 함께 빨간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드렸다. 카네이션은 그들에게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고, 사랑받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없이 전한 또 하나의 사랑이었다.

5월 18일 월요일
몇몇 노숙인 사이에 심한 싸움이 일어났다. 이를 바라보는데 어찌나 슬프던지. 날마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친구들을 환영했다. 그런데 이들의 잔인함과 폭력을 접할 때면 너그럽게 섬기는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

7월 2일 목요일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을 맞은 하미애(가명) 자매님이 식사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노숙인 친구 중 한 분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하모니카로 생일 축하 노래를 연주해주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노숙인 친구들 모두는 자연스레 큰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보탰다.

7월 31일 금요일
저녁 식사를 기다리면서 행복하게 춤추는 노숙인을 보곤 한다. 그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식사를 기다리면서 춤을 추는 것, 노숙해도 강아지를 키우는 것, 맛있고 사랑 가득한 도시락을 받는 것 등등. 안나의 집 가족들은 가난하지만 참 행복한 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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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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