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하이킥] "어느 워킹맘의 암 투병기, 질병이 나에게 알려준 것"

MBC라디오 2021. 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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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이 일했던 2019년, 암 통보에 하늘 무너져 내리는 느낌
- 암에 대한 고정관념이 더 위험, 완치 후 더 건강해진 사람도 많다
- "질병은 위험한 기회", 암 잘 겪어내기 위해 블로그에 과정 공유
- 사람들의 응원, 전문가들이 쓴 책, 걷기가 암 이기게 한 원동력
- 사회적 복귀와 심리지원 등 환자 위한 통합지원 프로그램 필요



■ 프로그램 :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 평일저녁 6시5분~8시)

■ 출연자 : 양선아 한겨레 기자

◎ 진행자 > 보건복지부가 최근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요, 우리나라에서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으로 201만 명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는 국민 25명당 1명이 암 유병자인 셈이니까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환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암이란 질병을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게 필요한데요. 암환우는 공감할 수 있고 암환우가 아닌 사람들에게 암과 암환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자는 목적으로 자신의 투병기를 블로그와 신문에 연재 중인 분이 있어서 만나보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 양선아 기자 어서오세요.

◎ 양선아 > 안녕하세요?

◎ 진행자 > 고맙습니다.

◎ 양선아 > 반갑습니다.

◎ 진행자 > 사실 저희 제작진이 회복과 투병치료에 지장을 드릴까봐 무척 조심스러워하고 미안해하더라고요, 연락을 드리면서. 거절 안 하시고 와 주셨습니다.

◎ 양선아 > 그럼요. 저도 살짝 고민은 했거든요. 제가 일단 요즘 코로나 상황이니까 이렇게 외부활동을 하는 건 괜찮을까 하는 그런 고민도 좀 있었고, 두 번째는 제가 유방암 환자인데요. 유방암 환자이고 제 경험을 블로그랑 신문연재 글에 공유하고 있는 건데 제가 암 전체를 다 아는 것은 아니고 또 그래서 제 경험이 일부인데 이렇게 경험을 얘기하는 게 괜찮을까 하는 고민은 있었지만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좀 암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어요.

제가 제 주변을 둘러보면 암에 걸리면 마치 거의 죽을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아니면 불쌍한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아니면 또 일을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너무 심해서 주변 분들이 자신이 암에 걸려서 주변에 도움을 받아야 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꽁꽁 숨기고 있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 진행자 > 밝히지 못하시고.

◎ 양선아 > 네, 그래서 제가 나와서 제 경험도 공유하고 암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 진행자 > 그래서 더욱 감사드리고요. 사실 제 부친도 암환자셨고요. 전립성암부터 시작해서 방광절제까지 하셨는데 결국 이겨내셨거든요. 그전보다 더 건강하게 활동하시다가 오히려 심근경색 때문에 암이 아니라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많은 암환우 여러분 또 가족여러분께서 양선아 기자님 말씀을 감사하게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고요.

◎ 양선아 > 네, 저도 응원하는 마음, 그리고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 진행자 > 고맙습니다. 유방암 걸리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시고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 양선아 > 어떻게 보이세요?

◎ 진행자 > 건강해 보이는데요. 저보다는 더.

◎ 양선아 > 저는 항암하고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다 마친 상황이고요. 표준치료라고 하죠. 3대 표준치료를 다 마치고 지금은 항호르몬제 약을 먹고 이제 매달 난소기능억제 주사를 맞으면서 수술로 관리하고 있는 중이고요. 보시다시피 좀 건강합니다.

◎ 진행자 > 그러니까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마치시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항호르몬 주사.

◎ 양선아 > 난소기능억제 주사를 맞고 있고요.

◎ 진행자 > 난소기능억제 주사를 맞으시는 거고, 그 다음에 6개월에 한 번씩인가 검사

◎ 양선아 > 어제 제가 항암 후 6개월 검진이 있었거든요.

◎ 진행자 >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 양선아 > 아직 안 나왔는데, 다음 주에 나오는데 좋은 결과 나올 거라고 저는 기대합니다.

◎ 진행자 > 네, 기원하겠습니다.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언제 암 판정이라고 하죠. 받으신 거예요?

◎ 양선아 > 2019년 12월 12일에 받았고요. 작년 그 이후에 쭉 치료를 받은 거죠.

◎ 진행자 > 1년 조금 지났네요. 2019년 양선아 기자가 한창 바쁠 때셨잖아요.

◎ 양선아 > 네, 제가 2019년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교육부 출입기자였는데 그때 굉장히 교육 관련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았어요. 아시겠지만 사립유치원 비리가 불거지고 유치원 3법 이슈가 굉장히 뜨거울 때였거든요. 제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보육 공공성 강화, 이런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해서 정말 전투적으로 일했어요. 밤도 많이 새고 그때 그 사립유치원 이슈뿐만 아니라 자사고 이슈도 있었고 대입정책 이슈도 있었고 그래서 굉장히 하루하루 바쁘게 생활할 때였거든요. 그때 갑자기 그런 통보를 받은 거죠.

◎ 진행자 > 암 통보를 받으셨다는 건 검진을 하셨다는 이야기고.

◎ 양선아 > 일단 제가 그때 좀 굉장히 어깨가 많이 아팠어요. 어깨가 많이 아프고 너무 피곤하고 그래서 집에 쉴 때 집 근처에 마사지숍을 갔었거든요. 마사지숍을 갔더니 마사지하시는 분이 어깨가 많이 뭉치면 가슴도 많이 뭉친다면서 가슴 마사지를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하시다가 몽우리가 만져진다, 빨리 병원에 가봐라,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그 마사지사 분께서.

◎ 진행자 > 그런데 가슴 통증은 없으셨고.

◎ 양선아 > 제가 통증이 있었을 텐데 그거 그냥 별 신호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자들이 생리주기에 따라서 가슴 뭉침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몽우리도 사실은 저도 느끼질 못했었거든요. 사실 제 몸을 지금 생각해보니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은 유방암도 자가검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제가 제 몸을 잘 살피고 관찰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 진행자 > 너무 바쁘셨으니까.

◎ 양선아 > 네, 정신없고 집에 가면 잠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기 바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마사지사 분께서 원래 자기도 본인이 젊었을 때 가슴에 혹을 제거하신 분이셨거든요.

◎ 진행자 > 그런 경험이 있으셨구나.

◎ 양선아 > 그래서 별 것 아닐 거다, 빨리 가봐라. 요즘에는 양성 종양도 많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갔는데 이제 모양이 좋지 않다. 조직검사 해보자라고 했고 조직검사 결과에서 암 진단이 나온 거죠.

◎ 진행자 > 암 진단을 의사로부터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어떤 마음이셨어요?

◎ 양선아 >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 진행자 > 눈이 깜깜해지고 이런 거.

◎ 양선아 > 네, 정말 아니 왜 나한테? 이런 진짜 제가 사실 열심히 사는 편인데 약간 왜 열심히 산 나한테 하늘이 왜 이런 벌을 내리지 하는 억울한 마음도 들고

◎ 진행자 > 내가 뭘 잘못했다고.

◎ 양선아 > 내가 뭘 잘못했지 그러면서 엄청 힘들었어요. 그리고 또 과거에 제가 했던 행동들 그런 것들을 계속 반추하면서 과거에 제 삶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 진행자 >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데.

◎ 양선아 >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신의학자라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분이 있거든요. 그분이 어떤 죽음이나 죽음의 상황에 이르는 아주 절망적 상황에 닥쳤을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그 단계가 5단계가 있대요. 그 단계를 보면 처음에는 부정,

◎ 진행자 > 아니야. 아닐 거야.

◎ 양선아 > 네, 아닐 거야 이렇게 하고, 그 다음에 분노, 그 다음에 협상, 어떻게 하면 해주실 거야, 이런 식의 협상. 우울, 수용 그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서 수용을 한다고 하는데 제가 처음에 딱 진단 받고 나서는 앞에 네 단계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달 정도 정말 힘들었어요.

◎ 진행자 > 수용이 힘드셨군요. 결과적으로 수용하시기까지가. 본인도 그렇게 힘드셨는데 그걸 혼자만 알고 계실 수가 없잖아요. 어차피 주변 가족과 회사 등에서 아실 수밖에 없고 아셔야 되고 알리셨을 텐데 반응이 어땠습니까?

◎ 양선아 > 일단 친정어머니랑 남편이랑 같이 그날 진단결과 나오는 날 같이 갔는데, 같이 갔어요. 저는 혼자 뭐 좋든지 안 좋든지 혼자 들을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 진행자 > 그래서 같이 갔는데 친정어머니는 휘청하셨죠. 휘청하셨고 남편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그렇게 가족들도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고, 지인들도 다들 회사에 저는 바로 연락을 했는데 제가 그때 사회정책팀장이었거든요. 팀장자리를 오랫동안 할 수 없으니까 바로 연락드렸더니 선배한테 지금도 제가 그때 전화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지금 생각이 나는데 선배 죄송해요 하면서 걱정시켜드려서 죄송해요 이렇게 했더니 선배께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 진행자 > 양 기자 잘못이 아니잖아.

◎ 양선아 > 니 걱정 먼저 하고 절대 회사 걱정하지 말고 일단 니 몸을 추스르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회사에 모든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저는 되게 복을 받은 것 같아요.

◎ 진행자 > 행복한 암환자.

◎ 양선아 > 네.

◎ 진행자 >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 모르겠네. 어쨌든 지금 양선아 기자 말씀을 들어보면 양선아 기자도 그렇고 가족 분들도 그렇고 암에 대해서 이거 큰일이구나, 암 발병하면 정말로 뭔가 정말 큰일이구나, 이렇게 느끼시는 고정관념에 빠져계셨구나 하는 게 느껴지네요.

◎ 양선아 > 사실 제가 암진단을 받기 전에 제가 생각했던 암환자들은 저도 그런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위험하고 물론 위험하죠. 암이란 게 위험한데 그래도 요즘에는 암 생존자라고 하는데 암 경험자들이 굉장히 많고 극복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리고 항암치료 기술도 굉장히 많이 발달돼서 의학기술도 잘 본인이 의지를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더 어떻게 보면 더 건강하게 이전 삶보다 더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제가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때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던 것 같고 그랬죠.

◎ 진행자 > 우리가 듣기로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조기 발견만 되면 충분히 얼마든지 완치하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더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 고정관념에 빠지게 되면 겁이 나서 진단도 안 받으려고 하고 미루고 알리지도 않고 이러면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이게 맞는 건가요?

◎ 양선아 > 그렇죠. 그리고 제가 요양병원에서도 한 번 있어 봤는데 요양병원에서 만난 분들 중에 너무 항암치료에 대한 겁이 너무 많이 나서 나이 드신 분이셨는데 자연치유를 하시겠다고 좀 다른 외지에 가서 치료도 안 받으신 케이스도 있는데 더 나빠지셔서 결국에는 항암치료 하러 오신 경우도 봤거든요.

사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본인이 잘 선택을 해야 되는데, 항암치료에 대한 너무 부담을 가져서 그걸 피하거나 아니면 그냥 안 하신다거나 하는 것보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 잘 보시고 선택을 하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진행자 > 이런 것들을 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글 쓰시고 기사 쓰시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 양선아 > 예, 제가 항암 전에 진단받고 나서 저희 회사에 아는 후배가 갑상선암을 앓은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자기가 가장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았던 책이다 라고 하면서 ‘아픈 몸을 살다’라는 아서 프랭크라는 의료사회학자거든요. 의료사회학자가 쓴 책을 선물해주셨어요.

◎ 진행자 >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 양선아 > 아서 프랭크라는 의료사회학자인데 그분이 그 책에서 어떻게 말하냐하면 질병을 위험한 기회라고 정의해요. 그러니까 질병에 걸리면 보통 사람들이 막 일단 고통이다, 고통이고 내가 어떻게 많은 기회를 상실했다 라고 생각하잖아요.

◎ 진행자 > 무조건 나쁜 거다.

◎ 양선아 > 나쁜 거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질병에 걸림으로서 본인이 이전 삶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되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 아무래도 어떻게 보면 죽음의 문턱에 잠깐 왔다 갔다 온 느낌이거든요. 그러면 정말 삶에서 중요한 게 뭔가 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도 있고 그래서 그런 위험한 기회라고 정의하는데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세요.

위험한 기회를 잘 누리려면 질병을 잘 겪어내야 한다, 잘 겪어내야 하고 자기의 경험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해주셨거든요. 그 책에서.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도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배울 기회를 얻어야 된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암에 대한 관점, 질병에 대한 관점이 확 바뀌었어요.

그래서 저는 또 기자잖아요. 기자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제가 경험한 것들이 그냥 저 혼자로 그칠 게 아니라 다른 분들하고 공유하면서 이렇게 하면 다른 분들도 좀 더 저보다 더 빨리 또 암치료 과정에 대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블로그를 열어서 차근차근 항암치료 과정부터 쭉 써내려갔거든요.

◎ 진행자 > 너무 고마운 결심이신 것 같고요. 그런데 블로그 글 중에 보니까 너무 가슴 아픈 게 항암치료 받으실 때 머리가 빠지셨고 이걸 본 아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막 울었다면서요.

◎ 양선아 > 네, 맞아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장면이 지금도 또 그려지는데 제가 원래 유방암은 환자들이 2주 뒷면 머리가 한 번 딱 항암하면 우수수 이렇게 머리카락이 빠지거든요. 저는 안 빠지는 것 같은 거예요. 처음에 집안 식구 모두 다 혹시 엄마는 예외적 상황 아니야 이러면서 그랬어요.

그런데 정말정말 무섭게도 딱 2주가 지나니까 14일이 지나니까 머리가 자고 일어났는데 뭉텅이로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친정엄마한테 나도 머리 빠지려나봐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그 얘기를 아들이 들었나 봐요. 아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데 그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제 머리카락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 진행자 > 엄마 머리카락을.

◎ 양선아 > 예,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잠을 자고 그랬었는데 본인이 슬펐나 봐요. 그래서

◎ 진행자 > 아들이 몇 살이죠?

◎ 양선아 > 이제 5학년 올라가는데 그런데도 한창 컸는데도 그래도 아들한테는 이제 엄마가 머리카락이 빠지고 뭔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서 뭔가 그랬던 것 같아요.

◎ 진행자 > 한참 그걸 뭐랄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뭔가 어렴풋이 이해도 하고 엄마한테 큰일이 생겼고 머리가 빠지는 눈에 딱 보이는 이 현상에 겁이 덜컥 나고 이랬던 것 같아요.

◎ 양선아 > 지금은 씩씩해요.

◎ 진행자 >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극복하셨으니까.

◎ 양선아 > 네.

◎ 진행자 > 암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수술, 항암과정 이 전 과정이 힘들지 않은 과정이 어디 있으셨겠어요. 다 힘드셨겠죠. 그래도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를 꼽으시겠어요.

◎ 양선아 > 1년을 지나고 딱 돌이키면서 연재글을 쭉 써보고 있는데 저한테 가장 힘들었던 기간은 진단받고 검사를 쭉쭉 하잖아요. MRI 찍고 CT 찍고 뼈 스캔도 하고 하는데 치료과정이 수립하기 전, 모든 게 불명확하고 내 암이 도대체 몇 cm고 어떤 치료과정이 있고 이런 걸 전혀 모를 때 그때가 저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항암이나 수술이나 방사선이나 각각 힘든 것들이 있었지만

◎ 진행자 >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 양선아 > 예, 정말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그거라서 제가 연재글을 쓰고 났더니 진단 막 받은 분들이 정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저한테 메일을 보내신 분도 있고 댓글을 다신 분들도 있어요. 저는 그분들의 심정을 너무나 공감하고 이해하거든요. 그래서 같이 이겨낼 수 있고 정말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이렇게 용기를 드리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하는데 저는 가장 힘들었던 게 그때.

◎ 진행자 > 심리학에서도 미지의 공포가 가장 크다,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알지 못할 때의 불안감, 정확하게 그 순간을 경험하셨군요. 마지막으로 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내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가장 큰 힘이었습니까?

◎ 양선아 > 제가 딱 세 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일단 사람, 가장 힘들 때 응원 해주고 실질적으로 병원을 함께 가주고 그리고 항상 응원의 메시지를 넣어주고 이런 가족과 회사 선후배들, 그리고 저희 친구들, 이런 사람들의 어떤 응원들이 굉장히 큰 힘이 됐고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책,

◎ 진행자 > 정확한 정보.

◎ 양선아 > 전문가들의 의사들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암이거든요. 그래서 전문가들이 쓴 그런 구체적인 투병기나 아니면 암에 대한 관련된 책, 이런 거였고요. 저한테 세 번째는 걷기입니다. 걷기. 걸을 힘만 있으면 항암하면서 굉장히 체력이 많이 달리고 먹는 것도 힘들고 그렇거든요. 저는 걸을 힘만 있으면 걸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그런 꾸준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 그게 어떻게 보면 삶의 에너지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 세 가지가 원동력이 됐던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사람 가족사랑, 그리고 책과 걷기, 세 가지가 암을 이기게 해줬다는 말씀 인상 깊습니다. 많은 분이 문자 주셨는데요. 9***님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양선아 기자님들의 글들에 세상을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반갑습니다. 응원합니다’ 이렇게 주셨고요. 한겨레신문 ’암&앎’ 읽으시는 독자 분이신 것 같아요.

그리고 7***님 ‘2019년 12월 31일 제 동생도 유방암이란 결과를 들었어요. 2020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럽고 분주하게 지났어요. 그 상황에서도 초등 2, 3학년인 조카들에 대한 걱정이 먼저였죠. 지금은 수술도 치료도 잘하고 있습니다. 기자님도 힘내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득아 사랑해’ 이렇게 주셨고요. 3***님 ‘너무 공감되는 말씀이네요. 저는 65살인데요. 42살에 유방암 3기 진단 받았습니다. 치료 잘 받고 지금은 너무나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6***님 ‘아까 말씀하신 책 이름이 뭔가요?’

◎ 양선아 >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이고요.

◎ 진행자 >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들어야겠고요. 무엇보다도 건강하시기 바라고 계속해서 암에 대한 정확한 정보 공유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양선아 > 사실 제가 여기 온다고 하니까 많은 암 환우 분들이 이런 게 고쳐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게 있어서 간단하게 몇 개만 말씀드리고 가면 안 되나요.

◎ 진행자 > 아주 짧게요. 시간이 다 돼서.

◎ 양선아 > 암 환자가 되면 중증 환자 등록이 돼 치료비의 5%만 내는 건 정말 잘 돼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진료비 부담 덜어주는 것 외에 다른 보살핌은 전무한 것이 현실입니다.

환자가 된 이후 회복과정, 사회적 복귀 프로그램, 5년 완치 판정 이후 프로그램 등 좀 더 세밀한 프로그램들이 지원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암으로 사망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편안하게 임종을 준비할 수 있는 호스피스 병동 확대, 암 환자 가족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단기 맞춤 가족치료 프로그램, 직업 잃은 환자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암 치료를 받으면서 병상이 부족해 입원을 못하고 통원으로 항암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충분한 병상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국내 제약사들이 효과 좋은 항암제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 진행자 > 암을 위한 통합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또 있을 테니까요. 나머지 오늘 못 다하신 말씀 또 여쭤볼게요.

◎ 양선아 > 알겠습니다.

◎ 진행자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양선아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한겨레신문의 양선아 기자를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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