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멀어져야 보이는 곁

김정수 시인 2021. 1.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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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신은숙 시인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2013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은숙(1970~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는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이라는 존재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흩어”(‘시인의 말’)지는 것이 자연법칙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태어나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기쁨과 고통, 슬픔을 겪으며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쓸쓸”함과 “내 속에 절벽”(‘일어나라 보풀’)을 수시로 마주한다.

“뿌리가 습한 유전자”(이하 ‘울기 좋은 나무’)을 지니고 있는 시인은 “꼭 혼자”인 해질녘에 울음이 터진다. 그렇게 시인은 한바탕 울면서 고단한 “생을 버”틴다. 꽃이 피고 지는 것, “달무리들이 쫓아오기 전에 달아나”(‘만삭’)는 것, “하루가 닫히고/ 또 하루가 열리는 시간”(‘00시 30분’)과 같은 섭리와 순환을 통해 내 안의 슬픔은 농밀해진다. 물기 가득 머금은 시 한편 한편은 “한 생을 복기”(‘시인의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꽃이 벽지(僻地)에서 피는 것은 벽지(壁紙)거나 벽화(壁畫)이고 싶어서, 벽은 꽃이 있어 세상이 되고 천지를 메운다 초록 꽃을 본 적 있는가 꽃은 살아남기 위해 완벽 대비를 꿈꾼다 신음하는 벽 불타오르는 벽 마침내 오르가슴에 도달한 벽 어디선가 딸꾹질하는 새가 볕뉘 사이로 엇박자를 세다 튕겨 나가는 오후 저곳에 소(沼)가 있을까 발목으로 건너다 가슴부터 빠져 버리는 붉은 늪, 벽은 칠하기 좋은 유혹을 가져서 나는 한 손으로 심장을 꺼내 던져버린다 심장을 바른 벽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앓다 가는.

꽃이 벽지(僻地)에서 지는 것은 벽지(壁紙)거나 벽화(壁畫)이고 싶지 않아서, 환상통은 이미 만발하고 귀는 존재의 가려움을 참을 수 없다 아파트 계약서에 인감 대신 지장을 꾹 눌러 찍을 때 벽지(擘指)엔 붉은 꽃물이 들었다 늪으로 걸어가는 여름 내내 꽃은 지지 않고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벽지(壁紙)를 새로 바르면서 꽃은 비로소 마음의 골방을 벗어났다 그 여름 내내 붉었던 울음 숭어리들.

- ‘그 여름 능소화’ 전문

먼저 여는 시 ‘그 여름 능소화’를 들여다보자. “그 여름 내내” 벽지(僻地)에서 피고 지는 꽃은 “울음 숭어리들”이다. 숭어리는 열매나 꽃 따위가 굵게 모여 달린 덩어리를 말한다. 많은 눈물을 쏟았다는 뜻이다. 벽지(僻地)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으슥하고 한적한 곳이라기보다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에 더 가깝다. 그 거리를 유지하는 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앓”는다.

벽은 꽃이 있어야 존재하고, 꽃은 살아남기 위해 “완벽 대비를 꿈꾼다”. 만약 꽃이 ‘나’이고 벽이 ‘가족’이라면, 벽지나 벽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인위적인 게 된다. 즉 서로 노력은 하지만 더 이상 화합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고통을 주는 대상인 셈이다. 결국 신음하고 불타오르다가 튕겨 나가 울음의 소(沼)에 “가슴부터 빠져 버”린다.

벽지에서 꽃이 피는 것과 지는 것의 차이는 유혹에 있다. 벽을 비어 있는 상태로 두기보다 자꾸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그 귀 얇은 유혹은 아파트를 소유하려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 잘못된 계약을 하는 순간 삶은 “늪으로 걸어”들어간다. 여름 내내 고통을 당하고서야 겨우 “마음의 골방”에서 벗어난다. 자연의 벽지(僻地)에 벽지(壁紙)나 벽화(壁畫)와 같은 인위를 가미해 생긴 불행이다.

나무는 그늘 속에 블랙홀을 숨기고 있지

수백 겹 나이테를 걸친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
육중한 그늘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갉아먹고 있다

흰 눈 쌓인 히말라야 갈망이라도 하듯 거대한 화살표
세월 지날수록 짙어가는 초록은 시간을 삼킨 블랙홀의 아가리다

빨아들이는 건 순식간인지도 모르지, 그 속으로

구름다리 건너던 갈래머리 아이도 사라지고
수다 떨던 소녀들도 치마 주름 속으로 사라지고
유모차 끌던 아기엄마도 사라지고
반짝이던 날들의 만국기,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도 사라지고

삭은 거미줄 어스름 골목 지나올 때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부싯돌 꺼내듯 히말라야시다 그 이름 나직이 불러 본다
멀어도 가깝고 으스러져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이 바람 막는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해마다 굵어지고 짙어지는 저 아가리들
쿡쿡 찌르고 찌르면 외계서 온 모스부호처럼 떠돌다 가는 것들
멍든 하늘을 떠받들고 선 나무의 들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삼켜지지 않는 그늘 속엔 되새 떼 무리들
그림자 하나씩 물고 석양 저편으로 날아오른다

- ‘히말라야시다’ 전문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문득 고향이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이다. 고향 초등학교에 들어서자 운동장 한 귀퉁이에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구름다리나 철봉, 시소 등은 그 자리에 있지만 작아졌다. 아니 내가 그만큼 컸다. 반면 히말라야시다는 운동장에 “육중한 그늘”을 드리울 만큼 자랐다. 나도 컸지만 나무는 더 크게 자랐다.

사라진 것들은 더 많다. “구름다리 건너던 갈래머리 아이”, “수다 떨던 소녀들”, “유모차 끌던 아기엄마”, “반짝이던 날들의 만국기,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 그들이 소멸된 자리에 내가 서 있다.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나무 앞에서 “히말라야시다”를 “나직이 불러 본다”. 나무는 흘러간 세월을 다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 그늘 속에는 “멀어도 가깝고 으스러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다 저장되어 있다. 추억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가슴을 “쿡쿡 찌르”거나 “삼켜지지 않는” 안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교정에서 나는 히말라야시다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한다. 둘 다 변했지만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소멸된다. “세월 지날수록 짙어가는” 나뭇잎이나 “석양 저편으로 날아오”르는 되새 떼, 블랙홀도 마찬가지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존재론적 접근이 이 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설악 바다에 와서
서랍을 떠올리네
좋았던 시절은 다 서랍에 있네
칸칸이 꽃피고 살림하느라
반짝이는 서랍들

풍랑 이는 바다를 보지 못했네
밀치고 당기다가
튕겨 나간 못과 생채기들
서랍째 바다에 버렸더니
도로 떠올랐네

섬이라는 혹
너라는 참혹

바다도 서랍과 같아서
밀고 당기는 일이 숙제와 같아서
한 생이 지나가면 다른 생이 오듯
가만히 등을 쓰다듬는 파도라는 큰 손

설악 바다에 와서
나를 열어 보네
칸칸 서랍마다 부릅뜬 눈알들
왜 바다를 보면 작아지는지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리는지

- 서랍 바다‘ 전문

살다 보면 좋았던 때도, 안 좋았던 때도 있다. 삶의 들고남에 가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먼저 간/ 아기의 얼굴이 점점 부풀어 오르”(‘만삭’)고, 아버지는 “폐에 꽃피는 암”(‘약국과 꽃밭’)이 있는 줄도 모르고, “엄마는 아팠고 할머니는 굿”(‘소리들’)을 하는 등 “내 속의 절벽”(‘일어나라 보풀’)을 수시로 마주한다. “살아진다는 말은 사라진다는 말”(‘사라짐에 대하여’)과 동의어다.

내가 “영동과 영서/ 이름을 가르는 고개들”(이하 ‘울지 않는 동쪽’)을 넘어 동해를 찾는 이유는 울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서쪽에서만 울”고 이상하게 “고개를 넘으면 거짓말처럼 울음이 멎”는다. “멀어져야 보이는 곁”(‘곁’)과 같다. “살아가는 건 파랑을 마주하는 일”(이하 ‘파랑’)이다. “파랑은 신호등이고 우울의 명랑 버전”이다. “파랑이 여울져 밀려”드는 “설악 바다에 와서”야 “좋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마음이 참혹할 때마다 설악 바다를 보며 마음을 추스른다.

고향 초등학교의 히말라야시다와 같이 “설악 바다”는 삶에 흔들릴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아니 어쩌면 “좋았던 시절”만 남기고 “생채기들”을 바다의 서랍에 넣고 돌아간다. 그 힘으로 살다가 힘들면 다시 찾아오기를 반복한다. 드넓은 바다는 마음을 정화해주고,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 준다.

“한 생이 지나가면 다른 생이 오듯” 깨우침도 찾아온다. 풍랑이 일 때면 바다도 아파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파도라는 큰 손”으로 나를 위무해준다는 것을. 그 순간 바다의 서랍을 열어 쟁여둔 고통을 마주한다. 거기에 또 다른 나, 엄마가 있다. 지금 내가 겪는 참혹은 앞서 엄마가 겪은 삶이다. 모란 같은 엄마, 작약 같은 나. 겸허히 받아들이며 “올봄엔 작약을 심어야지”(이하 ‘작약을 심었다’) 결심한다. 마음속에 작약이 “이미 활짝” 폈다.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신은숙 지음. 파란 펴냄. 120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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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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