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 출신 김진일 교수 "韓 금융은 신흥시장..'포스트 코로나' 외화유출 걱정해야"

조은임 기자 2021. 1.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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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의 역습] 김진일 고려대 교수 인터뷰
"미국 경제 정상화로 인한 신흥국 자금유출 피해 우려"
"경제 기초체력 키워 테이퍼 텐트럼 대비해야"
"美 경제 인플레이션, 1년 이상은 지켜봐야 판단 가능"
"고통스럽지만 자영업 구조조정 필요…사회안전망 강화해야"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을 버릴까 말까 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시키고 전 세계의 교훈거리로 삼을 고민도 했다는 게 당시 국제금융시장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어디에서든 이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문제다. 코로나19 이후 정상화 과정에서 한국도 외화유출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통화정책 전문가인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테이퍼 텐트럼(긴축발작)의 재연 가능성을 묻자 자못 단호한 말투로 답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국제금융계에서는 한국을 선택적으로 구제해줬다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1996~1998년, 2003~2011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근무했던 그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글로벌 시장참여자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현장에서 체득했다. 10여년이 흘렀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지만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비기축통화국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GDP 기준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신흥국 금융시장이 겪는 외화유출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미 연준은 코로나19 국면에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코로나19 이전 4조달러에 불과했던 연준의 보유자산은 이달 7조달러대로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이전엔 1조달러에도 못 미쳤다. 금리 정상화 이전 유동성 회수가 시작될 시점이 다가온다면 세계 각국, 특히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취약한 나라는 충격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터키가 그랬듯이 말이다.

김 교수는 그 시기를 대비하기 위해선 정공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정건전성과 잠재성장력 등 경제 기초체력을 강화해 자금 회수가 일어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일부 국가들에서만 돈을 뺄 수밖에 없다. 어디서 돈을 빼갈까 생각해보면 경제가 얼마나 튼튼한가, 얼마나 빼가기 쉬운가를 보게 된다. 펀더멘탈 측면에서 한국경제가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 실물로 돈 가는 시기 금리조정과 맞물릴 것

-코로나19 발생 후 경기 방어를 위해 대거 풀렸던 유동성이 이제는 향후 몇년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가장 큰 숙제거리가 됐다.

"돈이 빠지는 순간 누군가는 피해볼 수밖에 없는게 금융시장의 생리다. 그걸 어떻게 사회적으로 다루냐의 문제가 남았다. 나이와 소득, 계층 별 차이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본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활동을 하지 못했던 계층은 정상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이 줄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신흥국에서 외화유동성 유출로 인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당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유동성 장세인 건 맞다. 전세계적으로 돈이 많이 풀렸는데 실물 경제활동으로는 돈이 흘러가지 않으니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넘쳐서 주식 등의 가격상승이 커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장세가 이어져서 경제가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은행에서는 주식 시장보다는 실물로 돈이 흘러가는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돈의 흐름을 바꾸려면 조세정책을 활용해 과세의 수단을 쓸 수 있겠지만,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금융으로 돈이 계속 흐르면 결국 넘쳐서 실물로 갈테지만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실물 경제가 살아나면 돈의 흐름도 바뀌게 될 것이고, 금리인상 시기도 이런 흐름과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미 연준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선회할 계기는 어떤 것이 될 것이라고 보나.

"코로나19 백신의 효과와 보급속도 일 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서구사회에서는 백신을 국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지가 중요하다. 서구사회에서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국민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이런 수용성 문제가 가장 불확실성이 크다.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고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단기간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기저효과로 인한 인플레 걱정할 필요 없어

-미국에서는 벌써 인플레이션 논쟁이 한창이다.

"최근에 물가상승률이 높게 나오고 있는데, 단순한 (작년 물가상승률이 낮기 때문에 지표가 반사적으로 상승하는) 기저효과일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1년 이상 물가지표 흐름을 봐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장의 우려를 줄이고자 작년 8월에 평균물가목표제(AIT)를 선언했다.기저효과 때문에 나타나는 물가 상승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플레이션 여부는 몇년 동안 지켜보겠다는 게 연준의 생각이다.

-인플레이션 논쟁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일단은 원자재, 특히 구리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격 상승이 일부 품목에 집중돼 있으면 걱정할 문제는 아닌데 이것이 전체 원자재 가격으로 확산되는 지가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은 가격 상승이 전체 경제로 번져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지가 주요 관건이다. 그게 진짜 중앙은행이 걱정할 문제고, 이런 문제가 표면화되면 금리 조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최근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1% 이상으로 올라온 것은 어떻게 보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반영되어 올라간 건데 그 정도는 반영될 만하다고 중앙은행은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수준에서 안정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 재정정책 방향성, 고령화·통일 위한 재정여력 고려해야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한국은 앞으로 미국과 다른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이전 호황기였던 미국 경제는 백신 접종 등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 2년간 경제성장률이 크게 낮아졌던 한국은 경제 회복이 예상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디플레이션 우려를 꼬리표처럼 달고 있었던 한국 경제는 올해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대 이하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한국 사이에 경제회복과 인플레이션에서의 비동조화를 예상하는 시각도 많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했던 한국경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회복은 어떨까.

"충격이 크지 않았던 만큼 경제가 올라오는 부분도 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크게 내려갔다가 크게 올라갈 걸로 본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경제활동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완벽하게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일례로 미국은 9.11테러 직후 여행 부문이 큰 충격을 받았다. 9.11 이전 미국에선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게 한국에서 고속버스 타는 것보다 쉬웠지만, 테러 이후에는 탑승 절차가 복잡해지고, 사람들도 그런 점에 익숙해졌다. 경제적 행태는 한번 바뀌면 얼만큼 되돌아갈지 알 수 없다. 백신 접종 등으로 코로나19가 잦아들어도 아마 마스크는 당분간 계속 쓰고, 특히 겨울에는 대부분이 찾게 되지 않을까."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2018, 2019년 큰 폭의 성장률 하락을 겪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상처가 적지 않을 것 같다.

"2018~2019년 경기부진이 반도체 침체 때문인지,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인지 코로나19가 일어나지 않고 그 추세가 더 이어졌다면 원인을 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점이 바뀌어서 지난 2년간 경기부진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게 됐다. 일시적 충격으로 인한 경기부진이었다면 코로나19 정상화로 인한 경기반등이 저성장을 극복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당시의 경기침체 이유가 내재적인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면 경기반등을 상당히 제약할 것이다."

-만약 구조적·내재적 문제라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인구 감소 등 구조적 문제는 재정정책을 통해 극복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다.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얼마나 늘릴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충격이 크기 때문에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이 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것 같다. 코로나19 위기가 빨리 끝날 일이라면, 한꺼번에 많이 써서 극복하면 된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자체가 길게 갈 일이라면 한꺼번에 많이 쓰자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재정지출을 늘릴 때 우리나라가 고민해야할 요인들은 무엇인가.

"중기적인 고려 사항으로는 고령화, 장기적으로는 통일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통일 비용이 얼마나 들지, 고령화로 인한 재정소요가 얼마만큼 늘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IMF 등에서 재정지출 확대를 한국 정부에 요구하지만,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령화에 통일 대비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얼마나 비축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현재 정부 지출 추세를 보면 2024년쯤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을 것 같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나.

"국가채무비율이 60%까지 올라가고 내려온다면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금융시장은 여전히 신흥국 시장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 유출입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외국인이 자금을 빼려고 할 때 가장 유심히 살피는 요소가 경제 펀더멘탈이다. 성장률과 재정건전성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한국의 재정건전성 지표가 빠르게 악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을 도입하자, MMT(현대통화이론)에 입각해 재정을 마구 지출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 국채를 찍고 중앙은행이 그것을 인수해 돈을 풀면서도 대한민국의 재정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유지된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과연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이 그렇게 했을때, 시장이 경제펀더멘탈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이론적으로야 둘 다 가능하지만 이론 만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

◇ 코로나로 드러난 자영업 민낯, 구조조정 불가피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3%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수출이 경기회복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 고용 등 내수 경기를 끌어가는 부문은 정반대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영업'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일자리 문제와 고령화가 맞물려 몸집을 부풀린 자영업 문제가 코로나19로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도직입적으로 한국경제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부는 코로나19로 알게 된 것이 많을 것이다. 물이 빠지면 바닥이 보이지 않나. 개인의 이자부담 완화시켜주고 금융지원을 하면서 어디가 취약한지 알게됐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선택의 시기가 올수도 있다. 아마 자영업자에 대한 문제이지 않을까 한다. 자영업 문제는 해방 이후 한번도 고민 안해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번 코로나19 시기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은 자영업종으로 쉽게 가지 않을 것 같다.

어디까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줘야 할지 여러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 얼마전 폭설이 왔을 때 배달 문제가 있지 않았나. 눈이 와도 배달을 해야 하는 건지, 원한다면 배달비를 더 내고 시키는 것이 가능할지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령 미국의 우버(Uber)는 시시각각 가격이 변한다. 비나 눈이 오면 가격이 오른다. 큰 규모와 작은 규모로 사회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경제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할 지 조언을 해달라.

"최근 2년간 카카오뱅크 사외이사를 하면서 보니 기업의 의사결정은 굉장히 빠르고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뀐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정부의 의사결정 속도는 너무 느리다. 기업과 스타트업 등 새로운 경제 활동을 주도하는 젊은층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정부 정책이 어떤 측면에서 영향을 주는 지 빠르게 피드백을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최근 디지털화를 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제시하는데. 50~60대가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최근 주식시장이 과열되면서 공매도 금지를 유지할 지가 정치이슈화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외국자본도 들어와서 안 나가면 제일 좋듯이 증시에도 들어온 자금이 계속 있을수 있도록 유지되는게 최선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주식 시장에 투자 대상인 기업의 실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어야 한다. 실물경제의 건강함이 주가 상승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 정책은 실물 경제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데 방향이 맞춰져야지, 단순히 주가 상승이 지속되는 것에 방향성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공매도 논의도 이 연장선상에서 논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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