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가족 같은 펭귄들..온난화 피해, 다음은 인간"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코로나 시대’ 동물행동학자들의 고군분투기
‘연구 잠정중단 결정되다’. 2020년 3월26일 이세인씨(28)의 일기는 짧았다. 열 글자를 겨우 적고 수첩을 덮었다. 인도네시아의 덥고 습한 공기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자바섬 구눙할리문쌀락 국립공원 안의 작은 마을. 세인씨는 이곳 열대우림에서 자바 긴팔원숭이(오와·Owa)를 연구해 왔다.
12월까지 머물려던 계획이 코로나19로 어그러졌다. 하루 10~12시간을 보낸 숲이 닫혔다. 당분간은 연구진에게 열리지 않을 거라 했다. 70권 챙겨온 연구노트를 15권밖에 채우지 못했다. 도시 간 이동도 곧 막힐 거란 소식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9개월 이른 귀국이었다.
이원영씨(39)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겨울을 난다. 2014년부터 매년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남극의 여름’을 살며 극지동물을 연구했다. 이 시기엔 남극 기온이 영상까지 오른다. ‘나레브스키 포인트’에 펭귄 5000여쌍이 모여드는 번식기다. 이번 겨울 남극 현지 연구는 코로나19로 무산됐다. 자정에도 대낮처럼 환한 남극의 백야에 익숙한 터라, 오후 6시만 되면 까매지는 한국의 겨울밤이 낯설다. 인천 송도 연구실에 앉아있는 동안 “무엇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2021년 1월 남극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췄다’는 비유는 정확히 틀렸다. 인간 활동이 위축돼도 지구는 돈다. 인간이 바라보지 않아도 펭귄은 짝을 지어 새끼를 낳고, 오와는 비숲을 가로지른다. ‘관찰자’인 동물행동학자들은 여전한 자연의 움직임에 안도하면서도, 걱정이 많다. 현장연구는 중단됐고, 재개일은 알 수 없다. 불확실한 것을 배제해 나가는 게 연구자의 길인데, 코로나 이후로는 불확실한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마냥 멈춰있을 수는 없다. 펭귄도 오와도 멸종위기종이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야생동물에 대한 지식을 쌓는 연구가 올바른 공존의 방법을 찾는 길이라고 믿는다. 연구자들이 고민해 온 야생동물과의공존, 적정한 거리는 코로나 이후 전 지구적 질문이 됐다. 인간의 도시에 발이 묶인 1년여 동안 이들은 어떤 답을 찾았을까. 지난 14일과 15일 이화여대 영장류팀 연구원들과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각각 만났다.
남극 연구진 철수, 10년 만에 보는 한국의 겨울…
보내오는 데이터만으로 하는 연구 ‘한계’
‘펭귄박사’로 불리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39)은 겨울옷이 별로 없다. 지난 여섯 번의 겨울 동안 한국에서 강추위를 경험할 새가 없었다. 12월이면 남극 대륙으로 떠나 이듬해 2월쯤 돌아왔다. 그나마 두꺼운 옷들은 남극에 뒀고, 귀국하면 이미 겨울 끝자락이었다. 이번 겨울은 코로나19로 남극행이 무산됐다. 영하 10도 한파에도 두꺼운 외투 없이 버티는 중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0월31일 남극으로 출항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지 못했다. 극지로 가는 관문도시들은 문을 걸어 잠갔고, 하늘길은 막혔다. 배의 승선 인원은 제한됐다. 1년 단위로 교대해야 하는 월동대원과 지원인력 중심으로 명단이 꾸려졌다. 이 연구원처럼 ‘남극의 여름’을 머무는 하계대원 다수는 현장 연구 계획을 접었다. 지난해 1월 남극에서 귀국한 뒤로, 극지 현장연구를 가지 못했다. 한국의 여름엔 북극에서, 겨울엔 남극에서 극지동물을 연구하던 ‘루틴’이 깨졌다. 지난 15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에서 얇은 점퍼 차림으로 나온 이 연구원을 만났다.
-한국에서 보내는 겨울이 낯설겠네요.
“10년 만에 한국의 겨울을 봅니다. 2014년부터 매년 겨울 남극에 갔고, 그전에도 이맘때는 미국에서 연구를 했거든요. 모처럼 가족과 연말연시를 맞았어요. 12월부터 2월은 남극의 여름이라 기온은 영상으로 오르고, 해빙이 녹아 바다가 드러나요. 펭귄 수천 쌍이 남극특별보호구역 나레브스키 포인트에 모여 번식하고 새끼를 기르는 때로 현장 연구의 적기죠. 저도 지난여름 쌍둥이 아빠가 됐거든요. 이번 겨울은 ‘남극에서 자녀 잘 키우고 있어라. 나도 한국에서 잘 키우고 있을게’라는 마음으로 육아 중입니다.”
-동물행동학자들에게 현장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현장에서 동물을 관찰하는 건 재현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에요. 미생물은 실험하다가 잘못되면 다시 키울 수 있어요. 그런데 2021년 1월의 펭귄은 지금 이 순간밖에 없어요. ‘지금’을 놓치면 안 되니까 남극에 가면 아침부터 밤 10~11시까지 일하게 됩니다. 절대 ‘메꿀 수 없는 자료’이니까요.”
-그럼 연구 자체가 불가능해진 건가요.
“할 수는 있어요. 다른 사람이 보내준 데이터와 기계 데이터를 보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숫자만으론 영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이유를 어떻게 알아낼까’ 현장에서 보면서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좋은 질문을 던지기 어려워지죠. 또 워낙 동물과 현장을 좋아해서 동물행동학을 택했기 때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저는 극지에서 펭귄연구를 하면서 과학자의 마음과 ‘펭귄 덕후’로서의 마음이 싸울 때가 있거든요. 연구윤리를 지켜 최대한 침범하지 않으려 하지만 마음은 감추기 어렵죠. 두고 온 가족 생각하듯이 보고 싶을 때가 많아요.”
이 연구원의 올해 연구대상은 웨델물범이다. 펭귄의 천적인 표범물범과 달리 성격이 온순한 편이다.
다행히 남극 월동대에 그와 함께 극지동물을 연구해 온 대원이 포함됐다. 두 달 넘은 항해 끝에 이달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도착해, 연구에 착수했다. 수온염분수심기록계(CTD)를 이용해 염도와 수온, 깊이까지 물범이 지나는 바닷길을 확인하려 한다.
“기록계에 잡히는 정보를 위성신호로 쏴주면 컴퓨터로 확인하는 겁니다. 남극은 지구온난화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에 빙하가 얼마나 녹고, 수온이 얼마나 올랐는지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웨델물범이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깊은 바닷속 환경을 대신 보여주도록 하는 거죠. 남극 기지와 소통하면서 저는 한국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물범이 가는 길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더운 남극, 코로나 해법도 지구온난화에
지구를 다 덮은 인간의 서식지,
야생동물과의 마찰 더 커지기 전에
공존과 보호를 위한 ‘지식’ 필요
남극의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이 연구원이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머문 지난해 1월엔 영상 10도까지 올랐다. 2018년 12월~2019년 1월 관찰일지에 적힌 최고기온이 영상 1~3도였던 데 비춰보면 이상고온이다.
아르헨티나 기지에선 영상 23도까지 기록됐다고 그는 전했다. 세종과학기지 근처 마리아소만 빙벽은 매해 30m씩 뒤로 물러난다. 천둥 소리를 내며 바다로 무너져 내리는 빙벽을 보는 일도 익숙해졌다. 아직까지는 나레브스키 포인트에 번식하러 오는 펭귄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
-극지연구자들은 펭귄을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합니다. 어떤 뜻인가요.
“펭귄은 남극 생태계에서 온난화 영향을 알려주는 지시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하죠. 펭귄의 생태 변화를 보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온난화 가스를 만들고 환경을 파괴했는지 미리 알 수 있어요. 극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온난화 속도가 빨라요. 산업혁명 이후 전체적으로 1도가 올랐다면, 극지는 4~5도가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2100년까지 지금 속도로 지구 온도가 증가하면 극지동물들의 어려움을 인간이 겪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매년 연속성 있는 연구가 필요할 텐데, 코로나로 위축이 불가피하겠네요.
“안타깝게도 유일한 ‘코로나 청정대륙’이었던 남극에서도 최근 확진자가 나왔어요. 칠레 기지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세종과학기지도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남극은 의료진 투입과 치료, 환자 이송 모두 어렵습니다. 물리적 공간 자체도 좁지만, 안전 문제로 대원들이 단독행동을 할 수 없게 돼 있어 ‘거리 두기’도 쉽지 않아 조심해야 하는 환경이고요. 통상 1년 전부터 극지 연구계획을 잡는데, 당분간 계획을 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극지 바다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바다 상황은 더 안 좋아졌습니다. 물류가 바다로 집중되고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의료폐기물과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와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극지를 동떨어진 곳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위도상 65도 넘어가면 다 극지이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지구의 3분의 1은 극지인 셈이죠. 중위도에서 만들어진 오염물질은 굉장히 쉽게 극지방으로 넘어가요. 환경 규제들은 코로나를 이유로 뒤로 밀리고, 배달량이 늘어 포장쓰레기양은 늘어났죠. 염려가 많이 됩니다.”
-코로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수십 년간 인간 서식지가 전 세계를 다 덮어버리다 보니 야생동물과의 마찰이 생깁니다. 야생동물에 대한 기본 지식 자체가 많아져야 해요. 그래야 어떤 식으로 공존해야 할지, 어떤 보호정책을 펼쳐야 할지 정할 수 있어요. 인간 활동이 경제논리로 ‘확장’ ‘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이뤄지는 이상, 인수공통감염병 문제는 계속될 거라고 봐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얘기되지 못했지만, 올해 조류인플루엔자와 돼지열병도 심했습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계속 나올 것이고, 코로나에 버금가는 것들이 아마도 몇 년 주기로 계속될 거라고 예측하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인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기구’(IPBES)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 대유행이 더 자주, 더 치명적 규모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간의 환경파괴와 지속 불가능한 소비 행태가 팬데믹을 키운다고도 짚었다. 극지연구자들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살아난 고대 바이러스가 신종 전염병으로 이어질 위험에도 주목한다.
“이미 진행 중이에요. 많은 바이러스들이 새로 관찰되고, 실제 동토층이 녹으면서 되살아나기도 했어요. ‘피토바이러스’가 대표적이죠. 2016년엔 탄저균으로 사망한 순록 사체들이 시베리아 동토층에 묻혀있다가 녹으면서 다시 균이 퍼졌어요. 순록들이 또 떼죽음당했고요. 동토층의 바이러스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련 연구를 해야 하는데 현장에 가는 것조차 못하고 있어서 답답하죠. 동토층이 많이 녹을수록 위험이 커질 겁니다.”
■낙관 멀지만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엔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향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재설정이 이뤄져야
펭귄과 물범을 말하다가도, 코로나와 고대 바이러스를 말하다가도, 이야기는 자주 기후문제로 돌아갔다. 기후위기는 “해는 공공이 같이 끼치고 피해는 빈곤층이 집중적으로 보는” 구조다. 그만큼 공동대응이 어렵다. 이 연구원은 그럼에도 코로나 이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재설정이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극지연구자들은 30~40년 전부터 기후변화를 주요하게 연구하고, 과학적 보고를 해왔어요. 그럼에도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흐름도 있었죠. 그나마 몇 년 사이 ‘널뛰기 기후’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기후 문제가 좀 더 인식되고 있다고 봐요. 한국도 작년 최장 장마, 이번 겨울 이상한파를 겪었죠. 온난화의 핵심은 열에너지가 높아지면서 태풍이 늘고 이상기후가 많아지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비, 눈, 가뭄이 빈번해지는 것이죠. 인간이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 존재인지 깨달아야 해요.”
기후위기의 ‘목격자’이자 극지연구자로서 상황을 낙관하진 않는다. ‘기후슬픔(climate grief)’ ‘생태슬픔(ecological grief)’이라는 말도 남 일 같지 않다.
이 연구원은 “얘기하다 보면 자꾸 우울해지는데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느끼는 우울과 슬픔이 너무 커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미 상황이 비관적인 것 같고, 할 수 있는 건 너무 없고, 얘기해도 알아주지 않고요. 낙관할 수는 없지만,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해법처럼 배달음식과 택배를 장려할 게 아니라, 소비패턴과 경제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게 극지의 펭귄과 물범, 인간이 공존하는 길이에요.”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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