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압박에 흔들리는 공매도, 3월 재개 불투명

이남의 기자 2021. 1. 23.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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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뜨거운 증시에 찬물 '공매도']① 4·7 재·보궐선거 표심 겨냥.. 은성수, 소신 지키나

[편집자주]최근 정치권부터 주식투자자와 금융당국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슈는 ‘공매도’다. 1년간 금지했던 공매도가 오는 3월 재개를 앞두면서 각계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국내 증시는 ‘코스피 3000 시대’를 맞이하며 대호황을 누리는 형세지만 공매도 재개 시 기업주가 폭락해 개인투자자 피해 등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 이에 공매도 재개가 코스피 상승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공매도는 한국 주식시장에 꼭 필요한 존재일까. 아니면 불청객에 지나지 않을까.

/디자인=김영찬 기자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한 가운데 ‘공매도 금지’ 기간 연장이 정치권과 금융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공매도는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판다’는 의미로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기관 등에서 빌려 판 뒤 해당 주식을 다시 매수해 갚으면서 차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통상 정보 접근성과 자금력이 적은 개인투자자에게 불리하다.

금융당국은 예정대로 ‘3월15일 공매도 재개’를 주장하는 반면 정치권은 당·정협의를 거쳐 공매도 금지를 연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부 수장인 정세균 국무총리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연장론에 가세했다.

공매도 재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정치 이슈로 비화하면서 투자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700만 동학개미 표심’ 정치 쟁점화


현재 금융위는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시장 조성자 제도 개선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 높이기 등 공매도 제도를 손보고 있다. 공매도가 ‘적정 가격 형성’이란 순기능도 있는 만큼 공매도 재개를 무한정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700만 개인투자자를 위해 공매도를 재개하겠다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소신도 보인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주식시장의 긍정적 흐름을 지속·강화하기 위해 공매도를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업무계획 브리핑에선 공매도 재개를 두고 금융위의 ‘고유권한’을 강조했다.

금융위 정례회의는 수요일마다 격주로 열린다. 다만 수요일이 아닌 날에 임시회의를 열어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 금융위가 다음달 17일 정례회의가 아닌 임시회의를 열어 공매도 재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8월27일 발표된 공매도 금지 조치 6개월 연장도 정례회의가 아닌 서면으로 진행된 임시회의에서 결정됐다.

금융위 회의에는 은성수 위원장과 도규상 부위원장·최훈 상임위원·심영 비상임위원 등 4명의 당연직 위원을 포함해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윤석헌 금융감독원장·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참여한다. 이들은 관료나 대학교수 및 중앙은행 소속으로 특정 투자 주체의 이해관계보다는 전체 금융시스템 안정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성향을 가져 공매도 재개 자체를 반대할 위원은 없다는 평가다.

반면 정치권에선 정부와 여당이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당·정은 오는 3월 해제 예정인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해 제도 보완 후 6월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우상호 의원도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에 목소리를 냈다. 정치권에서 ‘민심 잡기’의 현장이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한 셈이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대주주 기준 강화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10월과 비슷한 양상이다. 앞서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은 ‘대주주 요건 유예’를 논의했으나 ‘‘동학개미’의 반발→여당의 간보기→정부의 원칙론→여당의 제동’으로 중단됐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사의 표명까지 하는 등 당·정 갈등이 극에 달한 바 있다.

야당은 공매도 재개를 두고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증권당국이 신중히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간사인 성일종 의원도 “정치권은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발 물러선 금융위, 정치권 개입 우려


정치권의 공매도 금지 연장 압박에 금융당국은 한발 물러선 분위기다. 최근 은 위원장은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바란다”고 밝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는 새해 업무계획에서도 ‘공매도 3월 재개’와 관련한 방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년 업무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대신 금융위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및 형사처벌 강화 ▲개인 공매도 접근성 확대▲시장조성자 공매도 축소 등 기존에 내놨던 제도개선 방안을 포함시켰다. 금융당국의 달라진 기조에 투자자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공매도를 둘러싼 당·정 간 불협화음에 당국의 기조마저 흔들려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전세계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공매도가 금지된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한국 단 2곳뿐이다.

미국·영국·독일·일본은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고 유럽의 그리스·오스트리아·스페인·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 등 EU(유럽연합) 6개국은 지난해 3월19일을 전후해 두달 간 모든 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를 시행했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선 정치권의 공매도 재개에 대한 반대 입장엔 긍정적이나 표를 의식해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해 12월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영원한 공매도 금지 청원합니다’에는 19일까지 15만6000여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원 마감일인 1월30일엔 정부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공매도 개입을 우려하는 청원도 적지 않다. 한 청원인은 “개선 없는 공매도 재개는 개인투자자를 죽인다”면서도 “법을 통해 시장에 규제를 가하거나 풀거나 할 수 있지만 표심을 노린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은 시장 참여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관계자는 “공매도 금지 이후 통계자료에 나타나듯 지수는 오르고 세수도 늘고 기업가치도 올라가고 있다”며 “13년 만에 주식시장에 꽃이 피려는데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한다면 전적으로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공매도 재개에 정치권이 입김을 불어넣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갈지(之)자 정책 방향에 투자자의 피로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매도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가 돼선 안 된다”며 “시장 상황을 고려해 시장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간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는 등의 보완과정을 거쳐 공매도를 도입하는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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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의 기자 namy8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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