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넘치는 탑과 초승달 궁궐.. 황금기 사비백제의 영광 꿈틀
정림사지오층석탑의 풍수
능산리고분군의 사찰 터
지형 안배한 궁궐 터
역사가 흐르는 백마강
○백제 왕기 솟아나는 정림사지오층석탑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사비백제 당시 도성 한복판에 건립된 정림사(고려 때 불린 사찰 이름) 경내에서도 가장 핵심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왕실 또는 나라의 상징적 존재였던 이곳은 백제의 융성을 비는 기도터로 활용됐다.
실제로 백제인의 꿈을 담은 이 석탑 주변을 탑돌이 하거나 탑 한쪽에 가만히 서 있다 보면 강렬한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다. 명당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기운 현상이다. 이 탑의 왕기(旺氣)는 탑 뒤의 북쪽 강당 터와 탑 앞의 남쪽 연못(연지)으로도 이어진다. 3곳의 명당 혈(穴)에 중요 건물을 배치한 백제인들의 뛰어난 풍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강당 터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을 안치한 전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시대를 초월한 불교 미술을 덤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있다. 사비백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538년 백제 성왕은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새로운 백제를 표방했다. 국호는 ‘남부여’. 대륙에 있던 고조선의 적장자 부여를 계승한 유일한 나라임을 선포했다. 한반도에서 ‘부여’라는 단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후 사비백제는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지인 부여 능산리고분군으로 발길을 옮긴다. 1300여 년간 이 향로를 원형 그대로 간직해 온 터 역시 예사로운 땅이 아닐 것이다. 향로는 왕릉급 무덤인 능산리고분군의 왼편 사찰 터(능산리사지)에서 1993년 발견됐다. 능산리사지에는 향로가 출토된 곳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지도 간판이 설치돼 있다.
능산리사지 또한 전체적으로 빼어난 기운을 간직한 터다. 정림사지처럼 백제 고유의 가람 배치 양식인 1탑1금당(탑 하나에 금당 하나) 구도를 하고 있는데, 금당지가 정확히 명당 혈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왕들의 명복을 비는 의례에 사용됐을 향로 또한 원래는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부소산의 궁궐터가 초승달 모양인 이유는?
중국의 역사서 ‘북사’는 당시 백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1만 가구가 운집한 도읍지는 신라, 고구려, 왜, 중국 등 외국 사람들도 섞여 사는 국제도시였다. 백제인들은 문(文)과 무(武)를 고루 중시했고 의약, 상술(相術), 풍수 등 음양오행법에도 능했다. 나라에서는 그해의 수확 사정에 따라 세금을 걷으면서 민심을 얻었다. 이웃 나라와 전쟁만 없다면 태평성대의 시대나 다름없었다.
부소산 자락 아래의 궁궐 터 또한 이채롭다. 부여의 주산인 금성산에 올라 바라보면 부소산 아랫자락이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다. 실제로 부여여고를 중심으로 왼편의 관북리유적지와 오른편의 쌍북리유적지를 연결 지으면 초승달 지형을 이룬다. 관북리는 일찌감치 궁궐지로 추정돼 ‘관북리유적’으로 지정됐다. 최근 쌍북리에서도 궁궐지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쌍북리유적의 경우 이대현 부여군의회 부의장, 임병고 백제사적연구회장 등 지역 인사들이 적극 나서 발굴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풍수적 시각에서 볼 때 성왕은 처음부터 초승달형 궁궐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궁궐지 경주 월성이 초승달 지형에 위치한 것처럼 새로 출범하는 남부여국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보름달은 장차 저물어 가는 일만 남았지만 초승달은 앞으로 커 나가는 기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초승달형 지형에서 가장 핵심적인 터 기운은 부여여고 주변에 집중돼 있다. 백제 궁궐 기운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꿈꾸는 백마강에서
망국의 군주 의자왕은 승자에 의해 방탕과 무능한 지도자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의자왕은 ‘해동증자’로 불릴 정도로 효와 예를 갖춘 인물이었고, 중국 사서에는 지혜로운 군주로 묘사됐다. 휘하 장수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의자왕은 백마강 나루터에서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배를 타고 당나라로 끌려갔다.
부여군은 구드래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띄워 백마강 뱃길 관광 상품을 만들어 놓았다. 백마강의 물길이 백제의 슬픈 역사가 아니라 동북아 해상강국의 주 무대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다. 겨울 매서운 추위로 강이 얼어붙어 황포돛배를 타보지 못한 것이 사비백제 여행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글·사진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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