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땅의 역사, 고고학으로 풀다

강구열 2021. 1.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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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 인근 댐 건설 중 발굴된 유적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와 유사
티베트 최초 고대국가는 하늘의 도시
히말라야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상웅국'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고대 마야문자
편견 떨친 30살 학자가 독학으로 해독
마야의 문자는 20세기 중반까지 해독되지 않아 고대의 미스터리로 여겨졌다. 유리 크노로조프는 마야 문자가 세상의 다른 글자처럼 수백 년간 발달했다는 단순한 진리를 바탕으로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창비 제공
테라 인코그니타/강인욱/창비/1만8000원

당신이 알고 있는 우리 역사를 지역을 기준으로 따져 지도에 표시해 보라. 고려, 조선의 수도 개성과 서울, 고구려·백제·신라의 근거지였던 평양과 공주·부여, 경주 정도가 아닐까. 그 외의 지역에도 물론 사람이 살았고, 그들이 이룬 이야기가 있겠으나 알려진 게 별로 없어 실상 미지의 땅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세계사로 시야를 넓히면 이런 경향은 더욱 또렷해진다. 특히 먼 과거일수록 그러한데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을 빼면 인류가 문명이란 걸 만들기 시작한 시절의 나머지 지역은 ‘야만’으로 기억될 뿐이다.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는 ‘미개척 영역’이라는 의미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가져온 책은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그 땅의 역사를 “고고학이라는 두레박으로 끌어올려” 소개하며 미지의 땅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을 되돌아 본다.

#‘이상향’ 아틀란티스, 기원은 시베리아의 아르카임(?)

서양의 오랜 이상향인 아틀란티스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처음 언급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크리타이스’에서 아틀란티스가 대서양 또는 지중해에 있던 이상적 도시였지만 과욕을 부려 아테네를 공격하는 바람에 제우스의 벌을 받아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소개했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착안해 이 대륙을 창조해냈을까.

유럽과 시베리아를 가르는 우랄산맥 인근에 첼랴빈스크라는 도시가 있다. 1980년대 소련은 이 지역 남부에 댐을 짓기로 하고 유적조사를 벌였는데, 뜻밖에 4000년 전에 사용된 최초의 전차가 발견됐다. 댐건설은 중단됐고, 그 일대를 조사한 결과 ‘아르카임의 도시 유적’이 발굴돼 세계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원형으로 지어진 아파트 같은 아르카임 유적에서 광장, 도로, 축사, 무덤이 있었다. 또 관개시설과 성벽을 둘렀고, 전차부대를 운영한 주민들은 발달된 청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도 확인됐다. 책은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의 특징, 즉 전사 집단, 성채, 무기, 전차 등의 기원을 아르카임에서 찾는다.

3800년 전쯤 기후변화에 따라 아르카임인들이 세계로 흩어지며 전차문화를 전파한 것은 세계사가 요동치는 계기가 됐다. 전차문화는 서기전 1274년 이집트, 히타이트가 벌인 최초의 대륙간 전쟁인 카데시 전투의 형태를 결정했다. 책은 동유럽에서 서쪽으로 빠르게 확산된 인도-유럽어의 기원도 전차가 유럽으로 확산하며 낳은 결과라는 견해도 전한다.
강인욱/창비/1만8000원
#‘하늘의 도시’, 티베트의 고대국가

티베트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 혹은 이미지를 한 번 들여다보라. 대개가 달라이라마로 대표되는 영성과 신비, 중국의 탄압, 험난한 자연 같은 것들이 아닐까. 관심은 제법 받지만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는 대표적인 문명이 티베트다.

티베트 신화는 2000년이나 이어온 오래된 문명에 대해 증언한다. 최초의 국가는 상웅국(象雄國). 기원 전 12세기부터 2000년가량 해발 3000∼4500m의 고지대에 존속했다고 한다. 히말라야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접근이 어렵고, 기록도 적으니 존재 자체를 선뜻 믿기 어려웠다.

상웅국의 실체는 고고학 조사로 밝혀졌다. 티베트의 가장 서쪽으로 인도와 맞댄 응가리의 랑첸장포 지역에서 거대한 성터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가루다강의 은빛 성채’라는 뜻의 ‘궁륭은성’이라 불리는 이 유적은 해발 4400m 산 정상의 약 10만㎡ 지역에 120여기의 대형건물을 세운, “글자 그대로 하늘에 지은 도시”를 증언하고 있다.

상응국의 존재를 전하는 실마리인 ‘상웅대장경’에는 고대 페르시아는 물론 인도, 유라시아 각 지역의 문화들이 녹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책은 “이 지역에서 3500년 전 최초로 유목경제가 등장했다”며 “상응국이 전설처럼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제국은 아니었고, 여러 부족들이 연합하다가 토번왕국이 침략하던 즈음에는 꽤 거대한 국가로 발전했던 것 같다”고 적었다.

#편견을 떨친 학자의 마야 문자 해독

지금의 멕시코 동남부와 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약 3000년간 발달했던 고대 마야문명은 16세기 초 스페인의 침략을 받으며 사라졌다. 특히 수천 권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과 책 등 문헌은 지금 단 3권이 전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래서 스페인 침략 후 200여 년이 지나 마야는 새롭게 관심을 받았으나 찬란했던 문명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힐 단서는 거의 없었다.

유리 크노로조프, 이 소련의 학자의 이름을 들어본 독자들이 많지는 않으리라. 30살이 되던 1952년 그는 세기의 미스터리로 간주되던 마야 문자를 해독해 일약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업적은 마야 유적에는 가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남아있는 마야의 책 3권과 스페인 침략 당시 잔혹한 파괴에 앞장섰던 디에고 데 란다 신부가 쓴 문서 하나만을 가지고 순전히 독학으로 이룬 것이어서 더욱 놀랍다.

크노로조프는 얼핏 보면 그림투성이인 마야 문자가 사실은 수백 년간 상형문자에서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로 바뀌어 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1952년 발표한 논문에 ‘중부 아메리카의 고대 문자’에 이런 사실을 담았다. 이때까지 서구에서는 마야는 국가가 아니었고, 문자는 없었다고 치부됐다. 마야 문자는 문법을 가진 글자가 아니라 지금으로 치면 ‘이모티콘’ 같은 것이어서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강했다.

1970년대 이후 마야 연구는 코노로조프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 덕분에 전체 마야 문자의 80% 정도를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책은 “크노로조프가 마야 문자 해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차별없이 보고, 인류의 보편성에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라며 “그의 천재성은 마야의 문자가 세상의 다른 글자와 마찬가지로 수백 년간 발달해왔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한 데 있었다”고 강조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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